격자로운 시공간…딴짓의 세상

김윤우·지다율

세로운 시간: 2018년 2월 13일, 4월 8일, 9일, 21일, 22일, 23일, 27일, 28일
가로운 공간: 피자와 맥주를 파는 곳, 각자의 집, 카페, WRM
교차한 우리들: 딴짓의 세상(오세범), 편않의 지다율, 편않의 김윤우

김윤우 안녕하세요. 대면인터뷰는 서면인터뷰를 바탕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우선 왜 독립출판을 시작하셨는지 여쭸을 때 두 책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OTL』이랑 『꿈꾸는 아이들』은 어떤 책일까요?1

오세범 제가 워크숍 같은 데도 가져가기도 하는 책인데요. 『OTL』은 (저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편집디자인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퇴사한 일 년 동안의 기록을 그대로 담은 책이에요. 온갖 일정이 적힌 탁상 달력이나 일기에 썼던 것, 말도 안 되는 회사의 계약 조항까지 다 스캔해서 들어가 있어요. 심지어 월급 내역까지 다요. 이런 부분이 재밌었어요. 사실 전 이 책이 요즘 끊임없이 말하는, 일 혹은 퇴사에 대한 고민에 다룬 거의 원형인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이 그냥 한 사람의 온전한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일이라는 것의 사회 정의 같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언급되거든요.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사람이 갈려 들어가면서 일을 하잖아요. 그 일이라는 것이 어느새 일 때문에 일을 하게 되는 것처럼 되어 버리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떤 입장까지를 얘기하는 책이어서 신선하고 재밌었죠. 진짜 손으로 쓴 필기나 달력 같은 걸 활용한 구성 자체도 너무 재밌어서 ‘아, 책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했던 책이고요.
『꿈꾸는 아이들』은 손바닥만 하고 중철로 된 열 몇 쪽짜리 책이에요. 채유수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림을 그렸고 지금도 그리시는 분인데요. 고등학생 때 수업 시간에 한 사람 분량의 책상에서 막 몸을 구겨서 온갖 자세로 자는 친구들을 그렸던 거를 몇십 년… 십 년? (웃음) 제가 사실 채유수 작가의 나이를 몰라서. 한참 지나서 발굴해 엮은 얇은 책이에요. 책을 펼치면 한쪽에는 자고 있는 친구를 연필로 드로잉한 게 있고, 한쪽에는 ‘저렇게 자면 팔이 저릴 텐데…’ 이런 식의 문구가 있어요. 되게 귀엽죠. 맨 마지막에는 ‘유년 시절에 힘들었던 그 시절에 보내는 안부인사 같다’는 이야기가 아주 짧은 글로 들어가 있고요. 이 책도 그분의 예전 그림 작업을 한 권으로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에서 학생들이 말도 안 되게 자기 생활을 강제받는 것에 대한, 누구나 약간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걸 좀 자극하는 책이기도 했죠. 사적이면서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건드리는 책이라고 느껴서 처음 가가린에 갔을 때 샀던 책이에요. 너무 좋아서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책 뭐냐고 물어보면 답하는 책이에요.

1 왜 독립출판을 시작하셨나요?
학교 동기(산업디자인학과)들과 만든 ‘사소한 스튜디오’가 클라이언트 미팅차 서촌을 방문했다가, 지금은 사라진 ‘가가린’이라는 서점에서 독립출판물을 처음 만났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온전히 혼자서 전달하는 출판물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때 만난 두 책, 『OTL: Office Tragic Life』(mutansan, 이하 『OTL』), 『꿈꾸는 아이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15가지 창의적인 방법들』(채유수, 이하 『꿈꾸는 아이들』)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독립출판물로 꼽곤 합니다.
더해서 그래픽, 편집 디자인의 비중이 낮은 학과 특성상 인쇄 매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던지라 마침 스튜디오 지원금이 생겨 아이슬란드 여행의 기록을 독립 출판했습니다.

 ‘사소한 스튜디오’는 주변 친구들이랑 같이 무언가를 했던 거잖아요. 그리고 ‘딴짓의 세상’은 개인 작업 중에서 독립출판 프로젝트를 위한 이름으로 시작했다고 답변해 주셨는데요. 그러면 ‘딴짓의 세상’을 항상 전부터 염두에 두고 계셨던 건가요?2

 아뇨, 사실 전혀. 디자인과긴 하지만 공대 안에 있는 디자인과고 학생들도 디자인 공부를 하고 온 학생들이 아니었어요. 정말 입시에 치중해서 면접을 보고 들어온 친구들 중에서 그 학과를 선택한 경우였거든요. 학과 방향도 일반적인 산업디자인과에 비해 디자인 방법론과 연구에 기반하고 있고요. 그래서 뭔가를 작업해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교육은 아주 최소화되어 있고, 저도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졸업할 때가 되면 갑자기 졸업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근데 그 졸업 작품도 학교에서 배웠던 리서치에 기반을 둬야 하거든요. 어떤 배경에, 어떤 명확한 타깃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오브제로서의 작품을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졸업 작품을 위해서 일 년 내내 작업했는데, 초반에는 온갖 이상한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근데 졸업 작품의 기준이 있어서, 작품 내에 적절한 사회적 맥락이 있어야 되고 다루는 문제가 무거워야 되고, 이런 조건들 때문에 탈락당한 아이디어들이 있었어요. 저를 포함한 친구들이 탈락한 아이디어들이 오히려 아깝다고 느꼈고, 그런 걸 만드는 재미를 뒤늦게 안 거죠. 그래서 좀 허무맹랑한 작업들을 해 보자고 했던 게 ‘사소한 스튜디오’였고요.
그때는 ‘딴짓의 세상’이나 개인 작업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사소한 스튜디오’는 다섯 명이 함께한 프로젝트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다섯 명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건 아니었어요. 내가 어떤 걸 하고 싶을 때 도와줄 수 있거나 관심 있으면 같이 참여하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두 명이 진행한 프로젝트도 있었고, 한 사람이 주도하고 다른 사람은 관람객이 되는 프로젝트도 있었죠. 완전히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였으니까. 그러다가 가가린에 방문해서 독립출판을 알게 되었고, 마침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았어요. 친구들끼리 나눠서 쓸 수 있는 돈이 생긴 거죠.

2 ‘사소한 스튜디오’는 이제 세상에 없나요? 이게 지금 ‘딴짓의 세상’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라면 본인이 생각하시는 ‘딴짓의 세상’의 발아는 언제 어떻게였을까요?
‘사소한 스튜디오’는 함께 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활발히 활동했고, 이후에는 각자의 진로(취업, 박사과정 진학)에 따라 지역적으로 멀어지고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친목 모임이 되었습니다. 물론 친구들과는 여전히 가깝고, 서로의 작업에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주는 과제가 아닌 내가 주도하는 작업의 재미를 처음 느끼게 해준 활동이 ‘사소한 스튜디오’였습니다. ‘딴짓의 세상’은 ‘사소한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개인 작업 중에 하나인 독립출판 프로젝트를 위한 이름으로 시작했으니 (원형이라고 말하기엔 ‘그룹’-‘개인’으로 형태 자체가 다르지만) 시작점이 분명합니다.

 역시. 돈이 좀 있어야.

지다율 뭔가 할 수 있다.

 마침 독립출판을 알게 되었고, 그 돈으로 책을 내고 싶었죠. 책에 담을 내용은 이미 있었어요.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담았거든요. 이 책에는 제 이름을 안 넣었어요. (여행을) 간 게 중요하지 오세범이라는 이름이 중요하진 않고, 유명한 작가가 아니니까 작가 소개가 아예 소용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그냥 뺐어요. 무명의 누가 갔다 온 이야기로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러면 대신 어떤 작업명, 혹은 활동명, 작가명으로서의 이름이 필요했어요. 제가 학교에서 들었던 수업의 초반에 몸 풀기식으로 했었던, 자신을 브랜딩하는 과제에서 ‘딴짓의 세상’이라는 말을 썼거든요. 그걸 그냥 작업명으로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그 당시에는 개인 작업, 디자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게 아니고요. 사소한 스튜디오는 ‘아, 이런 작업을 할 수 있구나’를 인식했던 계기였죠.

 그때부터 점점 구체화되는 과정이었군요.

 네. 정말 (구체적인) 그림이 책으로 나왔고, 다음 작업 때도 (그 이름을) 계속 쓰면서 ‘이게 내 프로젝트명이 되어 버렸네?’ 약간 이렇게 된 거죠.

 그럼 이제 ‘딴짓의 세상’으로 활동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얘기를 좀 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막막하신가요.

 ….

 (김윤우) 본인이 고민이 더 많은 것 같은….

 껄껄. 이게 어렵네요.

 편하게 하세요. 친절하게 답변할게요.

 ‘팬진 「더 썸머」 1호를 보았습니다’ 이 질문에서 ‘그럼에도 책을 만들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3 이 문장이 어떻게 보면 애매하게 표현하신 걸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이 표현을 읽자마자 뭔지 알 것 같은데 설명을 제대로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오 글이나 저자를 탄탄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출판사로서의 역량이 없으니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그래도 ‘내 작업을 통해서 이 글이 소개될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더 썸머」 1호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글을 받아서 책을 완성해 본 게 첫 경험이었고 그래서 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조차 명확하지 않았어요. 32페이지짜리 책이 되려면 대여섯 명의 원고가 한 권으로 엮일 만큼이 되어야 되는데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근데 처음으로 받았던 글이 너무 좋아서 이 글의 에너지를 받아서 책으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책으로 안 나와도 그냥 이 글만이라도 엮어서 얇은 책자로 만들자는 생각도 조금 들었던 것 같아요. 약간 그렇게 나한테 동력이 되는 어떤 글이나, 글이 아니라도 어떤 작업들이 항상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사실 저는 디자인, 출판이 (지금은 애매해졌지만) 업이 아니니까 그냥 퀄리티가 아니다 싶으면 안 만들면 되거든요. 근데 항상 만들 만한 가치를 발견하는 어떤 지점들을 만나는 것 같아요. 「더 썸머」의 경우에는 그 원고였고. 『녹색 광선』 같은 경우 사실 이미 검증된 작가의 글이잖아요. 거기에 작업을 도와주신 분들과의 경험 속에서 ‘아, 이게 이런 면에서 내가 예측하지도 못했던 의미가 더해졌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냥 계속 나아가는 게 맞구나 싶고요. 그런 지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요.

3 팬진 「더 썸머」 1호를 보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엄마가 영준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 있는 작업물입니다. 그렇게 작업의 고통을 상쇄할 만한 값어치 있는 결과물이 또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모든 책에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있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책을 만들게 만드는 … 것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글은 제가 누군가에게 의뢰해 받은 첫 글인데 독자로서 너무 좋았던지라 종종 이야기하지만 다른 많은 책의 원고들도 그랬어요.

 되게 책들이 다 예뻐요.

 감사합니다.

 『구니스와 함께한 3주』(이하 『구니스』)는 래핑이 되어 있어서 그 위에 스티커도 되게 많이 붙어 있고.

 너무 좋아서 제 노트에 붙여 놨어요.

 아, 비닐에서 떼서요?

 너무 웃겨요. 이 자잘한 거 다 읽어 봤는데….

 네이버 옛날 신문….

 아, 거기서 따신 거예요?

 네.

 ‘강하고 배짱 있는 아이로 키워라!’ (웃음) 계속하세요. (정색)

 「더 썸머」 1호에도 그 엽서 같은 게 끼워져 있잖아요. 그런 걸 봤을 때 종이를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더 바깥 혹은 더 큰 것을 담고 싶어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물리적인 책을 만들 때 염두에 두거나 공을 들이는 점이 있다면요?

 지금까진 「더 썸머」를 제외하곤 (이미) 있는 책을 옮긴 작업이었으니까 디자인으로서의 기획을 거의 동시에, 어쩌면 더 주가 되어서 하는 거 같기도 해요. 제 베이스가 디자인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하나하나가 디자인 작업으로서 제가 좀 재밌어할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책마다 포맷이나 형식이 달라지는데요. 처음에 『녹색 광선』 내고서 이런 식으로 고전이 계속 나오는 거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어떤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한 권 한 권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거든요. 책이나 내용에 맞춰서 디자인을 새롭게 해보는 재미가 있어서. 그게 제 베이스로서 기획으로서 초반에 같이 들어가는 거 같고요.
디자인을 계속 바꾸는 이유에는 (제 작업이) 독립출판으로 시작한 배경도 있는 것 같아요. 종이, 판형, 디자인, 이런 요소들을 되게 강조하는 신이기도 하고, 그런 책을 보고 그런 책을 만들다 보니까 기성출판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 안 하거나 놔 버려도 되는 게 있죠. 작가명을 아예 뺀다든지, 책날개에 다른 책 소개가 없고 그냥 한 권의 책으로서 있다든지. 독립출판물을 보면서 제가 그런 식으로 독립출판을 역으로 학습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고정된 판형, 조판, 표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더 재밌을까, 디자인적으로 흥미가 있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게 독립출판 신의 특징인 거 같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첫 책부터 만들기 시작하게 된 거죠. 앞에 말씀드렸던 제가 좋아한다는 책들도, 물론 디자인이 잘 된 책이지만, 엄청 뛰어난 게 아니라 책의 콘셉트를 잘 살린 디자인이어서 되게 멋있었던 거고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배경도 있고.

 『구니스』 … 테이프, 지금 안 쓰잖아요. 영화 「구니스」도 오래된 작품이라 비디오테이프 디자인을 선택하신 거 같은데. 이게 세로로 길어서 너무 읽기가 뻑뻑하고 힘들어요. 노리신 거예요, 아니면….

 아뇨, 아뇨. 알았는데 강행한 거죠. 원래는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비디오케이스로 만들려고 했어요. 이걸 한 번 더 넣는 케이스가 있잖아요. 그건 좀 더 넓고 크고요. 사실 이건 단행본으론 좀 작고 좁잖아요. 근데 비디오케이스로 만들려면 케이스에 있는 포스터랑 영화스틸이 책 표지로 쓰이게 되거든요. 그래서 SK와 워너브라더스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데, SK에서는 허락을 해줬는데 워너브라더스에서는 허락을 안 해줬어요. 저는 처음에 비디오테이프를 구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겉(표지)은 케이스고 열었을 때 첫 번째 면지나 1페이지가 비디오테이프였어요. 그런데 그게 저작권 문제로 안 되면서 비디오테이프로 전환한 거죠.
그럼 이 비디오테이프의 아이콘만 가져가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판형으로 옮기느냐를 고민했을 때, 그건 제 취향이 아니어서 가능한 한 똑같은 비디오테이프 포맷으로 만들었고, 폭이 좁으니까 안 읽히는 점은 분명히 있었죠. 근데 그냥,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디자인과 책의 가독성 중에서 디자인이 비중이 더 있었던 거죠. 그게 가치가 있었다고 해야 되는 건지 아니면 제가 시각이 좁아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디자인을 택한 거죠. 읽기 편하고 친절한 책은 아니죠. 사진 양쪽에 여백을 두었지만 여백 없이 양끝맞춤으로 꽉 채운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폭이 좁은 책이기도 하고요.

 그럼 디자인적 요소랑 가독성 요소가 있을 때, 항상 전자에 비중을 두시나요?

 아뇨, 책마다 다른 거 같아요. 『녹색 광선』 같은 경우에는 아주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소설의 형태를 살린 책이니까 내지도 달라지는 거 없이 아주 평범하게 조판을 하고 삽화 들어가는 방식도 익숙한 방식으로 한 거죠. 본문에서 디자인적인 아이디어를 막 적용할 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녹색 광선』, 그 책 좋았는데요. 면지의 사진은 뭐예요?

 이거는 계획에 없었던 건데요. 표지를 프로파간다 최지웅 디자이너가 해주셨는데 제가 전권을 드렸어요. 돈을 얼마 못 드리는 대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시라고 했죠. 표지에 출판사나 한글 제목 다 빼고, 책등이나 뒤에도 (그런 거) 없고. 표지를 천으로 선택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냥 다 결정하셨고요. 그게 결국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졌지만 다 따르겠다고 했어요. 그랬을 때 더 완성도 있는 책이 나올 것 같아서요.
그때 최지웅 디자이너님이 이 안에 까는 면지로 사진을 넣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그분과 표기식 작가가 친분이 있으셔서 영화 포스터 작업 등도 (같이)하셨는데 그분이 찍으시는 사진을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당연히 너무 좋죠. 작가님의 영화 관련 사진작업을 좋아했었고 사실 저에게 비싼 사진이기도 할 테니까요. 근데 디자이너님의 친분 덕에 소정의 비용만 드리고 그분(표기식 작가)의 사진을 넣을 수 있었어요.

 마음에 드세요?

 네, 네. 너무너무 좋았어요.

 저는 뭐랄까. 개인적인 트라우마라고 해야 하나. 제가 다녔던 회사 사주가 자연을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아무 책에다 나무, 꽃 사진을 면지에 넣는 거예요. 『녹색 광선』 보고 표지 너무 예쁘다, 했는데 딱 펼치자마자 자연친화적인 면지가 나오니까 저는 너무….

 놀라웠다?

 놀라면서 충격도 받았거든요. 약간 갸우뚱했었는데. 저는 그 (별책부록에서 이뤄진 오세범 님의) 워크숍을 들어서 (최지웅) 실장님한테 (디자인) 전권을 주셨다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사진 하나는, 약간 개인적인 거지만, 갸우뚱했어요. 그래서 여쭤봤어요.

 저도 왜 이 사진이 앞에, 이 사진은 뒤에 들어가는지 여쭤보기도 했어요. 디자이너님은 제가 드린 설명을 듣고 그걸 토대로 사진을 셀렉하신 거였고, 의도를 들으니 바로 공감할 수 있어서 그대로 따랐어요. 어떤 분은 되게 뜬금없는 사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되게 만족스러웠습니다.

 작가(믹 올더먼) 홈페이지 맨 밑에 『구니스』 한국어판 사진이 있어요.

 네, 넣어 주셨어요.

 (믹 올더먼의) 의견은 어땠어요? (한국판의) 디자인이나 콘셉트 뭐 이런.

 제가 처음에 계약할 때부터 책 디자인을 비디오테이프로 하고 싶다고 했고요. 그쪽에서 오케이 하셨어요. 이것도 독립출판이고 그분도 출판사가 아니라 개인이어서 가능했던 거 같은데 시안을 미리 보내드리거나 컨펌받는 건 없었거든요. 작가명이 스티커여서 떼어지는 것까지는 몰랐을 거예요. (웃음) 근데 그거에 대해서 항의라거나 그런 얘기는 전혀 없으셨고. 그냥 영화를 좋아하고, 이게 한국의 비디오테이프라는 걸 설명했으니까 그분도 어느 정도 덕후로서의 기질이 있어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해요.

 재밌게 여겼을 거 같아요.

 한국어판이 홈페이지에 올라가기도 했고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했거든요. 이 책 초반에 작가가 지역신문에서 (영화) 「구니스」를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찍는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근데 그 신문이 지금도 발행되고 있거든요? 그 신문에 표지 사진과 함께 한국어판 발행 소식이 나왔어요. 되게 재밌었거든요, 그 기사 보면서. 그런 걸 보면 좋아하셨나 보다 하고 짐작하는 정도. 약간 좀 기성출판과 달랐던 게 그런 면에서 융통성이랄까.

 기성(출판)이라면 작가 자신도 그렇고, 출판사든 뭐든 이해득실이 많이 얽혀 있을 테니까요.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네, 컨펌도 다 받아야 되고. 기성출판에서 외서 번역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이 많이 생략됐죠.

 보내 주신 답변들 읽다 보니 독립출판과 기성출판이 어느 정도 세범 님한테는 구분 혹은 정리된 듯했어요. 이런 건 독립출판, 이런 건 기성출판. 답변해 주신 거 보면 ‘독립출판과 그렇지 않은 출판의 경우에 따라 다른데요’라고 하시기도 하고.4

 아, 제가 이 답변에서는 『녹색 광선』과 『구니스』가 기성출판이라고 여기고 설명해 드린 게 맞아요. 근데 이게 정확히 기성출판이냐고 하면은 또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독립출판이나 기성출판을 정확히 나눠서 인식하는 게 아니라 기성출판인 걸 알고, 그 나머지가 있는 거고요. 그 나머지는 기성에서 독립까지의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는 거죠. 최근엔 약간 애매한 영역의 책들, 독립출판과 기성출판 사이에 걸쳐 있는 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거 같아요. 이거를 이제 서점이 어떻게 바라보고 분류할 것인가가 문제겠죠. 사실 만드는 입장에선 자유롭게 만드는 거겠지만, 앞으로 대형서점도 약간 애매한 타이밍이 오긴 오겠죠?

4 기획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독립출판과 그렇지 않은 출판의) 경우에 따라 많이 다른데요. ‘frame/page’에서 출간되는 단행본의 경우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찾아보다가 어떤 책에 다다른 경우입니다. 『녹색 광선』의 경우 영화에서 소설이 언급되고, 『구니스』는 영화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쓴 에세이인 것처럼 한쪽 방향으로 찾아 나간 결과가 아닙니다. 저는 일반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는 주기로 기획, 편집하지 않기 때문에(ISBN을 받은 단행본은 일 년에 한 권 꼴로 나왔습니다. 독립출판물과 디자인 작업이 그사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좋았던 영화와 그 영화로 인한 우연에 기대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같이 고민해 봐도 재밌겠네요.

 네, 근데 사실 만드는 사람은 그냥 만드는 걸 테고요. 그걸 상업적으로 어느 카테고리에 넣을지를 고민하는 건 서점이나 도서관 쪽이겠죠? 저도 독립출판이 뭐다, 라고 말하긴 어렵고요. 반면, 이건 기성출판이다, 라는 건 확실한데, 그게 아닌 게 다 독립출판인가 했을 때 좀 애매해지는 거죠.

 독립출판물, 그리고 제작자가 양적으로도 굉장히 많아졌는데요. 책을 전(全) 과정으로 만들다 보면 편집 과정도 염두에 둘 수 있잖아요. 혹시 오세범 님께서는 편집자라는 직업, 혹은 편집이라는 활동 영역을 어느 정도 의식하시는지요.

 『녹색 광선』 때부터 ‘편집자’보다는 ‘기획자’라고 말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한 권의 책을 옮기는 작업이었으니까요. 「더 썸머」 같은 경우에는 다른 분들의 글을 받는다는 개념에서 이런 포맷을 기획하고 편집하게 된 셈이더라고요. 근데 그게 또 정확한 편집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던 지점은…. 제가 받은 글들이 대체로 좋아서 수정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실었거든요. 맞춤법상의 오류만 잡고 아주 말도 안 되는 문장은 고쳤지만, 대체로 문체를 살려서 실었어요. 그러니까 편집이나 기획이 엄청 소극적으로 들어가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고요.
사실 지금 만들고 있는 책 중의 하나를 국내 저자와 진행 중이에요. 근데 이분도 책을 처음 써 보는 분이고 저도 처음부터 기획해서 책을 내보는 건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가이드를 드려야 이분이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시행착오를 겪어 나가면서 하는 중이에요. 그 경험을 요즘에 하다 보니까, 사실 두 분이 물어보시는 편집은 아직 안 해봤다는 게 맞을 거 같아요. 그냥 기획을 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고요. 신마다 너무 달라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림이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분이라든지 시나 에세이를 쓰시는 분은 작가라는 생각을 더 분명히 하실 거고요. 그걸 책으로 엮을 때 어떤 식으로 디자인할지 결정하거나 마케팅적 입장에서의 기획이 조금 들어가기도 하겠죠.
기획도 하고 편집도 하면서 글도 쓰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죠. 제가 나중에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으로 추천해 드리려고 했는데, ‘하우위아’(HOW WE ARE)5라고 혹시 아세요? 「거울 너머」 시리즈 에세이도 쓰셨는데 작년 일 년 동안 여섯 권의 책을 두 달에 한 번씩 내는 프로젝트였어요. ‘6699’6 같은 분들도 자기가 기획하고 책을 쓰시기도 하고요. 작가, 디자이너, 편집자의 포지션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드시기도 해요. 근데 편집자는 잡지에서 더 분명할 것 같아요, 독립출판 신에서는. 기획팀이 있어서 글을 받고 디자인을 받고 편집 방향을 정하실 테니까. 개인 제작자라면 사실 케이스마다 다를 거고요.
근데 이 질문에 제가 역으로 질문드렸는데요.7 편집을 통해서 그런 게(날것의 목소리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일단 용어 자체에 대한 생각이 저랑 좀 다르셨던 거 같고요. 말씀하신 편집이 기성출판의 편집에 가깝다면, 그렇게 나온 책도 여전히 독립출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 저는 좀 ‘이게 말이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5 http://howweare.co.kr.
6 http://6699press.kr.
7 독립출판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전에 합정에서 함께 식사했을 때, 날것 그대로의 출판이 독립출판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편않은 그 날것이 편집을 통해 더 싱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날것 그대로의 독립출판이 있다, 고 전제한다면 그걸 (제3자의 편집자가, 혹은 출판사가) 편집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까 세범 님이 말씀하신 게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요. 영화가 너무 좋으면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다가 이렇게 시작하게 되는, 넘어가게 되는 지점이 있다고요. 또 (제작 등을) 하다가 고민되는 때도 있지만, 뭔가 계속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도 하셨고요. 근데 저는, 누구나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텐데, 그 지점을 조금씩 당기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도와주는 게 편집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당긴다는 게?

 누구라도 어떤 영화가 너무 좋으면, 나도 뭐 해 볼까? 거기에 관련해서 글을 써 볼까? 뭔가 만들어 볼까? 이런 욕심이 찰나에라도 있겠지만, 그다음으로 넘어가는 지점이 대부분 없을 거 아니에요.

 생각으로 그치는.

 네. 그런 것들을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그런 계기, 지점을 만들어 주는 게 저희 잡지, 혹은 편않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편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애초에 드렸었고요.

 제 생각에는, 결국 (독립출판이) 기성출판과 달라지는 부분이 ‘검증되지 않은 무명의 저자’라는 문제랑 연결될 텐데요. 어떤 개인이 어떤 영화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면 그 표현도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이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혹은 하는지 모르니까 편집자로서 다가갈 수가 없잖아요. 그게 검증된 저자와의 차이인 거고요. 이 사람을 제가 어떻게 도와서 편집을 이끌어 내겠어요. 사실 그것도 결국 이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독립출판은 개인이 해야 하는 거 같고요.
근데 말씀하신 관점은 그게 아니라, 예를 들어서 「편않」이라는 잡지라면 거기에 누구나 하나의 글로 참여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것도 글에 한해서는 편집 없이 들어간다고 이해했거든요. 그럼 그게 편집이 된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저는 별로 안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잡지의 기획과 편집은 있지만, 글에 대해서는 편집 안 하고 받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결국 그건 편집 안 한 것 아닐까요? 저는 그러니까 편집이 애초에 개입될 수 없거나 개입이 되는 순간 이 사람을 기성출판의 편집·기획 과정(flow)에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데, 그 글은 (결과적으로) 성공하든 망하든 애초에 독립출판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죠.
독립출판인데(독립서점 등에서 유통되는데) 정말 똑같은 내용으로 표지랑 디자인만 다르게 해서 기성출판사에서 나오기도 하고, 이 사람을 필진으로만 발굴해서 새 책을 만들어 내기도 하잖아요. 후자는 완전히 기획을 새로 한, 독립출판의 저자를 검증해서 만든 기성출판의 책인데, 전자는…. 사실 저는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걸 왜 사람들이 사서 읽을까 하는 회의 같은 게 좀 있긴 한데요. 그게 그럼 편집일까요?

 어디부터 어디까지 혹은 무엇이 편집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다들 다르죠.

 그래서 제가 답변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던 거고요. 꼭 이 질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관점에서든 편집은, 제가 더 모르기도 해요. 출판사 분이라면 편집이라고 했을 때 ‘이런 것이다’ 하는 이해가 대충 있을 텐데, 저는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 이 말을 막 오남용 하고 있는 걸 수도 있죠.

 편않 안에서도 편집….

지 생각이 다 달라요.

 …에 대해서 생각이 다르겠죠.

 근데 기성출판에서 편집에 대한 생각(개념)은 같되, 이 잡지에 얼마큼 편집을 할 것인가가 다르겠죠. 그 전제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의사소통의 베이스가 마련될 텐데, 이 질문과 답변은 사실 제가 편집의 영역 자체를 약간 다르게 옮겨서 답변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긴 해요. 기성출판과 독립출판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저는 계속 이렇게 말놀이를 하고 싶은데요. 저희 내에서도 자꾸 니은 받침에 히읗을 붙이거든요. 그래서 편집도 발음은 ‘편집’이지만 전 혼자 속으로 ‘편-니은히읗’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발음은 똑같은 거죠?

 그렇죠.

 지금 알았네요.

 저희도 과연 (편집이) 뭘까 같이 고민하는 중이에요. 출판사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다 합의된 것도 아닌 것 같고. 회사 사정마다 기획을 진짜 하는 사람도 있고, 교정·교열만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저희도 한번 실험을 해 보려는 거죠. 이 질문은 약간 합의되지 않은 개념에 기반을 두었다고 봅니다.

 저는 이 질문에서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으니까 반문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질문을 드렸어요. 편집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러니까 편집이 교열·교정을 얘기하는 건가요?

 이번 호 준비하는 과정을 예로 들어서 말씀드리면 0호에서는 저희 구성원이 콘텐츠를 직접 다 쓰고 만들었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외부 기고가, 한 10명 정도 되죠, 그분들과 두세 달 동안 계속해서 뭘 싣고 싶은지 같이 기획부터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어떤 통로를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랑 뭔가를 만드는 수많은 과정이 편집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지금 말씀해 주신 과정들이 그냥 기성출판에서 하는 편집 같았어요. 독립출판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않나)…. 그분들은 어떻게 선정되신 분들이에요?

 선정됐다기보다는….

 먼저 연락 온 사람도 있고.

 그냥 개인? 출판사에 종사한 사람도 아닌?

 네, 아니에요.

 근데 계속 연락하면서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가고, 이런 과정을 다 거치신 거예요?

 한번 참여해 보고 싶다고 메일을 주신 분도 있고, 이미 글이 완성되신 분도 있고…. 시작점이 각각 다르죠. 이미 글이 완성된 경우라면 글을 먼저 보고,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맞는지부터 시작해서 표현을 이렇게 정리하는 건 어떨지 얘기를 한다거나.

 그럼 좀 되게… 어, 세밀해지는 거죠. 어디까지 가이드를 줄 것이냐에 따라, 그 사람이 독립출판의 개념으로 자유롭게 글을 쓰되 그걸 좀 명확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끝날지, 아니면 기획을 만들고 글의 세부적인 흐름을 결정하는 부분까지 편않이 관여할지?

 좀 전에 제가 설명해 드린 부분이 어떻게 보면 기성에서 말하는 편집인 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부분은 앞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알면서도 안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이라는 게 다양한 이유로 생략되고 왜곡되고 그렇잖아요. 가령 완성된 원고만 받는다거나 혹은 저자, 사주 입장에서 돈이 되니까 대필하는 원고를 받아서 그냥 교정·교열만 한다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왜곡되는 게 있을 텐데 좀 쳐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기성이라는 말이 앞에 붙으니까 약간 좀….

 기성이라는 건 독립출판의 입장에서 말한 거죠. 사실 기성이 그냥 출판이고 저쪽이 독립출판인 거죠. 저는 말씀 들으면서 만약에 사람들을 편않으로 끌어들여서 같이 준비하는 거라면, 그런 식으로 공동체를 이루어서 같이 책을 만드는 ‘동인’ 개념은 많잖아요. 책이 ISBN을 받아서 출판사 이름으로 나오느냐에 따라서 기성출판일 수도 있고 독립출판일 수도 있는 거겠죠. 동인은 사실 되게 오래된 형태잖아요. 근데 편않은 동인으로서 끌어들이는 건 아니면서 정말 저자 대 편집자로 얘기를 하되, 이 사람에게 독립출판의 자유를 주는 선을 찾겠다고 하는 거니까, 유사한 게 떠오르진 않네요. 제가 생각 못했던 영역이긴 해요. 근데 그게 되게 아름답게 들리는데, 정말 할 수 있을까? 이런…(생각도 들고요).

 저희도 계속 의심하고.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럽고.

 계속 회의하고.

 그런 점에서 전 요즘에 ‘편집자는 편집하지 않는다’라는 모임명이나 잡지명이 정말 잘 지어졌구나 해요.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보는 게. 일단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럼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더라고요.

 근데 이 과정을 호마다 반복하려면 엄청난… 노동일 것 같아요.

 저희 이미 지쳤어요.

 그만할까 고민 중이에요. 농담입니다.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거나 원고가 완성되었으면 그걸 토대로 얘기하겠지만, 단순히 관심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탐색하고 서로 얘기해야 하는데. 와. 그렇게 하기가 진짜 어려우니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전공(전문성)이 있거나 검증된 저작이 있는 사람을 (저자로) 찾는 거잖아요. 매호 반복한다는 게, 그것도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꼭지로 수십 명을…. 진짜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발행 주기를 6개월로 정해 봤는데 긴 건지 짧은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1년에 2권이라는 셈인데 그럼 너무 적고.

 적죠.

 그렇게 따지면 적은데 일로 따지면 많죠. 6개월마다 발행 과정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거의 1년 단위로 중첩하셔야 될 텐데요. 두 호를 같이 준비하듯이요. 업도 있는데….

 그 주기를 당길 생각을 감히 못하겠어요.

 (주기를 당긴다면) 글을 받아서 그대로 싣는, 지금 많은 독립 문학잡지 같은 형식을 택할 수밖에 없겠죠.

 ‘하우위아’랑 ‘6699’ 설명을 더 해 주신다면요?

 ‘6699’는 출판사도 있지만 디자이너로 더 활발하세요. 개인이 제작자이기도 하고 출판사이기도 한데 디자이너에 더 가까운 분이시고요. ‘하우위아’는 기성출판으로 책이 나오기도 했어요. 작가로서 기성출판사랑 계약해서 책을 쓸지, (독립출판으로) 자기가 낼지 이제는 둘 다 해보신 거죠. 제가 자세한 사정과 상황은 모르지만 어떤 방향을 잡으신 것 같아요. 빨리 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다, 팬으로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입장이에요. 저는 사실 작가도 아니고 디자이너라고 하기엔 디자인 교육을 정확히 받은 사람도 아니어서, 저랑 비슷한 위치면서 어떤 업의 사이클을 만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 두 분은 1인 제작자로서 지지하고 어떻게 되실까 계속 응원하는 분들이에요.

 ‘6699’가 66재영99인가요?

 ‘6699’는 프레스고요. (이름이) 재영이어서 인스타그램이나 그런 데는 그 이름을 쓰시는 것 같아요. 그분 작업물을 보면서 이런 게 전통적이고 교육받은 편집디자인이구나 싶었어요. 저는 사실 그런 걸 못해서 부끄럽거든요.

 아, 이제 알았어요. 큰따옴표 모양이군요!

 네, 맞아요.

 큰따옴표로 읽을 수 있구나.

 네. 되게 멋있죠. 저는 ‘딴짓의 세상’ 막 이런 이름인데.

 왜 그러세요~. (웃음)

 아, (이름이) 너무 장난스러운데, 사실 저는 그렇게 막 위트 있고 이러질 못해요. 작업도 그렇고 저 자신도. 이제 바꿔야 되나 싶은데 이미 너무 오래 써 버려서 못 바꾸는 지경이에요.

 그래도 그거 멋있잖아요. ‘프레임 퍼 페이지’.

 아, 그건 좀 너무 멋 부렸죠.

(폭소)

 오, 인정하시네요.

 그거는 아주 기성출판의 느낌이 물씬 나면서…. 둘 다 중도를 못 찾아서….

(폭소)

 ‘딴짓의 세상’이라는 이름과 ‘오세범’이라는 개인 이름을 가능하면 숨기기도 해요. 책에는 당연히 기획자로서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 건 맞으니까 넣고는 있지만요. 그리고 이 책들이 ‘딴짓의 세상’의 책입니다, 라고 라인업으로 소개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있어요. 출판사로서, 브랜딩으로서 좋은 전략은 아니죠. 근데 관점이 그렇게 서 버렸어요. 개별의 책을 개별의 책으로. 선집이나 시리즈를 만드는 건 아니니까 그 책에 맞춰서 그때그때 움직이자. 아마 앞으로 나올 책들도 그럴 거예요.

 재밌네요. 계속해서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점이.

 그래서 저도 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고요.

 오히려요?

 뭐 할지 모르겠어요. 「더 썸머」 할 때는 마음이 좀 편했어요. 최소한 다섯 호를 만들어야 되니까 몇 년 동안 순차적으로 하면 되지,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단행본은…. 제가 정말 만들 수 있는 책이 최소한 올해에는 생겼지만 내년에는 없으면 그냥 활동… 접는 건가? 아니면 딱히 관심 없는 책도 출판사니까 그냥 내? 이런 고민이 있어요. 출판사로서 일정한 주기로 당연히 새 책이 나와야 될 거 같은데 제 작업 방향을 따라간다면 만들고 싶거나 만들 수 있는 책이 생기기 전까지는 작업이 없는 거잖아요. 이 호기심이 동나면 그냥 없어지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긴 하죠.8

8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딴짓’이 있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딴짓’이 ‘업’이 된 거 아닌가요? 지금 만족하시는지요?
지금은 학교를 쉬고 ‘딴짓의 세상’과 ‘frame/page’ 활동이 전면에 있습니다. 다만 이 활동이 생계를 온전히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활동에는 포함되지 않는 디자인 작업, 외주 일, 아르바이트, 워크숍 등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태도로서의 업이 아니라, 벌이로서의 업을 바라본다면 절반쯤만 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생계로도 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당연히 이상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2018년 겨울과 봄을 나면서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이고 상황인 것 같습니다.

〈프렌즈〉는 다 보셨나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때 피자 먹었을 때,

 네, 그때 말씀하셨어요.

 아! 얼마 전에 끝났어요. 지난주인가 지지난 주인가 끝났어요.

 작품 하나 다 보셔야 다음 작품….

 네, 그래서 하나 다 봤고 또 하나 보고 있고 그래요. 형편없죠? 일해야 되는데….

 ‘형편없죠’가 발화되는 걸 오랜만에 듣는데요.

 아, 그래요? (웃음)

 근데 이거는 그냥 가볍게 여쭙는 건데요. 저는 말과 글에 관심이 많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은데 잘 안 되거든요. 근데 그때 워크숍 때도 그렇고, 세범 님은 정말 말씀을 잘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하셨겠지만요.

 네, 대본이 있어요, 사실.

 아, 그래요? 사실 그때(워크숍 때) 저는 노트북으로 내용을 정리했었거든요. 인터뷰 준비도 할 겸. 근데 놀랐던 게, 그냥 거칠게 받아쳤는데도 읽기 좋은 거예요. 입말이 그대로 글이 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새삼 말씀 되게 잘하신다 싶었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자리가 너무 스트레스라서 슬라이드랑 말할 거 다 문장으로 쓰고 연습하면서 거의 일주일간 외우다시피 했던 거고요. 지금 녹취 푸시면 장황하고 (웃음) 다를 거예요. 저도 잘 쓰고 잘 말하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어렵죠. 어느 정도는 재능인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오늘도 느끼지 않았어요? 말씀하시는데 막힘없이.

 서면인터뷰를 미리 해서 나름 2주 동안 생각한 게 있으니까요. 아예 새로운 질문, 그니까 흐름에 없었던 질문을 즉석에서 하셔서 막 당황하기도 했어요. 말하면서 질문도 막 까먹고.

 〈프렌즈〉가 좀 당황스러우셨죠? 깔깔깔!

 왜냐면은 얼마 전에 다 봤다고 트위터에 써서 그걸 보신 건가? 깜짝 놀랐어요.

 아, 아니에요. 트위터를 하긴 하는데.

 네, 네.

 〈프렌즈〉 얘기까지 준비된 질문은 다 한 거 같고요. 인터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