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로운 시공간…쪽프레스

김윤우·지다율

세로운 시간: 2018년 3월 3일, 6월 22일, 9월 22일
가로운 공간: 시시때때 특별활동 행사장, gaga77page, 쪽프레스 작업실
교차한 우리들: 쪽프레스의 김미래 편집장과 김민해 디자이너, 편않의 김윤우와 지다율, 그리고 쪽프레스의 친구 김지선 님

그는 부스럭거리며 비닐봉지에서 맥주를 꺼냈다. ‘아직도 나와?’ 싶을 정도의 캔맥주 여럿과 병맥주 몇 병을 한 줄로 세우고는 물었다. 맥주 드실래요? 커피도 있어요. 1980년대 일본 여성 아이돌의 노래인 듯한 음악을 틀고는 인터뷰 후 파티가 있다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아, 혹시 언제부터요? 두시요. 식사는 하셨나요? 이따가 파티할 거라서 괜찮습니다. 저희……도 괜찮아요……. 우리는 커피를 한 잔씩 받고 큰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지다율(율) 반갑습니다. 어떤 인터뷰를 보니 처음에는 다섯 분이 같이하셨던 거 같은데 지금은 어떤가요?

김미래(래)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다섯이지만, 프로젝트마다 손이 비는 친구가 좀 더 책임을 집니다. 그러니까 최소 인원이 계속 바뀌는 식이에요. 어쩔 때는 편집자1이 디자이너1이랑, 또 어쩔 때는 편집자2가 디자이너2랑 작업하죠. 행사 같은 물리적인 일은 웬만하면 같이 모여요. 사실상 처음부터 회사 형태가 아니었고, 자발적인 모임이어서 가입-탈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조직되고 흩어져 있다가 큰일 있으면 모여요.

 그래도 편집장이라는 직함으로, 미래 님이 어쨌든 통솔하고 총괄하는 거죠?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리더십은 없어서……. (일동 웃음) 그냥 모든 교집합에 제가 껴 있는 정도지, 제가 뭐 통솔하거나 지휘한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그냥 테트리스처럼 떨어지는 일에 제가 맨 아래 단계에 있는, 모든 실무에 제가 엮여 있는 상태죠.

 미래 님 빼고 모두 출판사에 계신가요?

 현재 출판사에 다니는 분은 한 명밖에 없어요. 프리랜서이거나, 다른 분야에서 일하거나 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만났다고요?

 제가 출판사를 몇 곳 다녔는데, 그때마다 만났던 동료나 친구인 사람들이 모였어요. 같은 회사에서 다 모인 건 아니고요.

 그동안 거치셨던 출판사들은 어땠어요? 출판사 처우가 굉장히 안 좋기로 유명한데, 그 와중에 편차도 있잖아요.

 솔직히 제가 다녔던 출판사들 처우가 안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예를 들면 포괄수당이 아니라 야근이나 특근수당이 따로 있거나, 대체휴가가 발생하는 회사도 있었고, 복지나 문화생활에 할당된 상여금 같은 게 따로 주어지는 회사도 있었어요. 전반적으로 타 업계에 비해서 연봉이 낮다거나, 복지의 포괄 정도가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열위에 있을 순 있는데요. 그래도 회사 다니면서 많이 개선되는 부분도 있었고요.

 네, 근데……. 음악소리 좀만 낮춰 주시면…….

 아예 끌게요.

김윤우(우) 편않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편않은 같은 회사 다니는 사람들끼리 열악한 처우와 노동환경을 욕하다가 모였거든요. 대부분 그렇겠죠? 이것도 짜증나고 저것도 짜증나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자주 만나다가, 우리가 뭔가 다른 걸 해 보자고 시작했는데요. 쪽프레스는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래 그 반대예요.

 재밌는 거(ㄹ 하기 위해서요)?

래 뭔가 불편한 걸 인식하고 타개하려고 만든 모임이라기보다는, 기술을 익혔으니까 이 기술로 할 수 있는 흥미로운 활동을 찾았던 거죠. 어느 순간 그냥 책이라는 게 이전과 달리 보였어요. 보통 책을 되게 성스럽게 여기는 부분이 있잖아요. 책에 낙서하는 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이건 종이랑 잉크의 결합일 뿐인데, 깨트리면 깨트릴수록 더 재밌는 매체가 탄생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어요. 본드나 실로 엮는 형태가 아니고, 그냥 낱장으로도 완결성이 있으면 책이 될 수도 있고요. 우리가 책을 조금 다르게 정의해 본 거예요. 그 아이디어가 먼저 찾아와서 ‘아, 그럼 이거에 맞는 우리 그룹 이름을 정하고, 이 취지에 맞는 책도 고안해 내자’고 나중에 살을 붙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엄청 가벼운, 책 같지 않아 보이는 형태의 책이 탄생했습니다. 소재도 ‘출판계의 노동 현실’ 같은 걸 담기보다는 저희가 원래 좋아했던 순문학이나 번역문학을 다루게 되었고요.

율 그때 ‘시시때때 특별활동’(2018년 3월 3일)에서 참석자들에게 쪽프레스 책을 하나씩 주셨잖아요. 저는 왠지 (책 봉투를) 뜯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자꾸 (뜯는 걸) 미루게 되더라고요.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기도 했고요. 근데 또 얼마 안 있으면 다시 뵙게 되는데…….

 안 읽기도 그렇고?

율 네네. 안 읽기도 그렇고. 또 읽지 않고 만나러 가는 건 제 스스로 불성실한 것 같고. 그래서 뜯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추가로 사놓은 것도 미루다 그 모임(‘나눠 읽는 밤’, 2018년 6월 22일) 직전에야 뜯어서 읽었고요. 그래서 요는, 쪽프레스가 가진 뜯는/찢는 경험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란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 ‘시시때때’ 강연에선 짧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셨죠?

 네, 15분짜리 강연이라서요.

 네. 오히려 그래서 더 궁금하더라고요.

래 근데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해도 젠체하는 것 같아서요.

율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래 아아, 네네. (웃음) 근데 독자분들이 항상 뜯으면 훼손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쉽다고 호소하시기 때문에 저희도 그걸 보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근데 최초에는 어떤 생각이었냐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변화될 수밖에 없잖아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근데 그건 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우 (깊은 감탄) 아아.

래 책은 읽히기 전이랑 읽힐 때랑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뭐 물리적·화학적이 아니더라도. 근데 그 변형을 ‘목격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그 경험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심지어 책이 찢기기도 하는데 뭔가 되게 한시적이고 연약한 물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책이라는 걸 한 번도 떠들어 보지 않거나 (또 어떤 사람은) 책이 너무 아깝고 성스럽기 때문에 고이 모셔 두잖아요? 사실은 10년 넘게 안 읽히는 책도 수두룩해요. 근데 그렇게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 것보다, 깨끗하게 읽어서 읽혔는지 안 읽혔는지 알 수 없는 것보다, 오히려 이게 훼손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독자의 인위적인 결과가 남아서 확실한 독서의 증거가 남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또 이 이야기와 별개로 이런 기념품 같은 형태로 나온 이유가 있는데요. 아무도 책을 안 읽기 때문에 저렴하고 가벼운 책을 낸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짧은 글에도 책이 될 수 있는 독립적인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저희도 지류를 고민해서 쓰고, 소장 가치 있게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근데 그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사셨던 독자분들이 뜯는 과정에서 이게 ‘파손되었다’고 느낀다면 그게 되게 (저희로서도 마음이) 힘든 거잖아요.

율 어떻게 보면 그 책의 훼손이라는 게 책이랑 독자가 관계를 맺었다는 가시적인 증거인 거잖아요.

래 그 옛날에 배운 시 「오렌지」(신동집)를 보면, 까기 전엔 알 수 없고 까고 나면 내가 알고 싶었던 오렌지가 아니고……. 그런 시 있잖아요. 아마 그런 거랑 비슷한 거겠죠. 제가 갖고 싶고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제 그걸 뜯어서 읽게 됐지만 그전으론 되돌릴 수 없는 것도. 근데 그거는 오렌지만 그런 게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인 거죠. 이 텍스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율 저는 결국 뜯은 상태 그대로 그냥 (따로따로) 책상 위에 놓았거든요.

래 아니면 봉투 안에 담으시는 분도 많아요.

율 이 찢는 경험과 독서 자기화라는 부분을 보면, 쪽프레스의 작품과 독자가 접하는 순간을 제작자 입장에서 많이 집중하고 신경을 쓰신 거 같은데요. 보관 문제도 있잖아요.

래 네, 맞아요. 그래서 이번에 최초로 케이스를 만들었어요.

우 트레이 말고요?

래 네네. 아직 안 만들고, 목업만 나왔는데요. 작품들을 쭉 넣을 수 있는 조금 단단한 종이박스를 만들었어요.

율 박스면 누워 있는 거예요, 결국?

래 네. 세울 수도 있구요. 이런 직사각형 형태의 두께가 있는 박스. 지금 텀블벅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율 그럼 그건 또 쪽프레스 책을 간직하기 위해서 별도로 사야 되는 거죠?

래 이번 시리즈를 전부 구매하시면 드리고, 몇 권만 사시면 따로 사실 수 있어요. 거의 제작비만 받고요.

지다율의 반복되는 와이파이 연결 실패를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노트북을 열고 텀블벅 페이지를 보여 주었다. 그 노트북은 와이파이가 아주 잘 연결되었고 인터넷 속도도 빨랐다.

율 시리즈 각각의 개별성이 있잖아요. 근데 이 케이스 디자인은 이번 시리즈에만 속하는 것 아닌가요?

래 사실은 그렇지만 그 요소를 텍스트로는 안 넣어서, 그냥 선물하고 싶으신 분도 살 수 있는 박스로 만들었습니다.

율 사실 작업실로 오라고 하셔서 본인들 작품은 어떻게 보관할까 기대했는데요.

래 한 권도 없어요, 여기.

우 아카이빙은 따로 하시지 않나요?

래 저희한테도 없는 게 꽤 됩니다. 이제 60종이 넘다 보니까, (대부분) 열 개 미만으로 남았고요. 한 개도 안 남은 것도 있고. (독자분이) 너무 간절히 원하실 때는 그냥 드렸거든요, 처음에는. 아카이빙을 했어야 했는데, 금방 재쇄를 찍을 줄 알고…….

우 재쇄 찍은 것도 있어요?

래 네, 종종. 많지는 않아요. ‘봄’이랑 ‘밤’ 시리즈는 했어요. ‘봄’은 아예 리커버하면서 다시 나왔고. ‘밤’은 그중 일부만 중쇄했어요.

율 앞으로 아카이빙 계획은 있어요?

래 계속 조금씩은 하고 있어요. 진열하는 방법을 고민 중인데, 완성되면 다시 초대할게요.

(웃음)

우 책이라는 형태를 무너뜨린 게 저는 굉장히 천재라고 생각했거든요. ‘시시때때’에서 받았던 건 비닐봉지였는데, 이 종이로 된 거 보니까 좀 더 확실하게 책의 형태를 무너뜨리면서도 최소한의 콘텐츠는 예쁘게 잘 배치한 것 같더라구요. 봉투 앞면이 표1이겠죠? 또 봉투 뒷면이 표4가 되면서 판권과 표2가 다 있구요. 이런 부분들이 제가 편집자로 일을 안 했으면 별 생각이 없었을 것 같은데, 일을 하고 맨날 접하는 요소들이 이렇게 재구성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재밌고, 되게 고민을 많이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게 막 파바박 떠오르셨어요?

래 저희가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보완해 나간 거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어요. 지금은 이제 쪽프레스라는 게 익숙하니까 봉투가 불투명해도 본문이 들어 있다는 걸 알지만, 초반에는 그걸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봉투를) 비닐로 했어요. (비닐로 하면) 본문이 다 비치니까, 이 안에 콘텐츠가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 거죠, 일단.

우 그래서 비닐로 시작하셨군요.

래 비닐로 할 때는 실크스크린으로 다 밀어서 해야 되니까 말리기도 어렵고, 섬세한 일러스트를 표현하기도 어려운 한계가 있었죠.

우 신기하네요.

래 근데 지금처럼 비닐, PVC가 유행할 줄 알았다면……. (지금이야말로) 비닐을 택해야 했던 건 아닌지…….

(웃음)

래 그리고 이런 약물도, 저희가 10쪽 넘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쪽수도 아라비아 숫자로 안 써요. 동그라미 같은 형태를 쓰고요. 이런 걸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어, 진짜로 천재적이다 하면서 하기는 했어요.

율 아, 스스로?

래 네. 저희끼리. 근데 사실 아무도 못 알아볼 수도 있고. 그리고 옛날에는 이런 형태를 못 봤는데 다른 리플릿이나 다른 데서 점점 보게 되면 어, 우리 영향인가? 막 이런 생각도 들고……. 근데 사실 알고 보면 저희랑 비슷하거나 먼저 시작하셨죠.

우 혹시 가장 힘들었거나 가장 재밌었던 거, 이건 진짜 천재적이다 하시는 게 있다면요?

래 일단 처음에 아코디언식으로 접어서 밀봉해서 팔면 전 국민이 읽는, 그런 필수템이 될 줄 알았어요. 그때 꽤 들떴었죠.

율 음. 그 예감을 하셨을 때?

래 네. 그렇지만 실제 서점에 유통하려고 준비했을 때, 수요가 확실하지 않은 영세한 출판사가 입고하는 거잖아요. 물류창고도 배치되어 있어야 하고요. 예를 들어 알라딘 같은 데서 주문이 들어오면, 알라딘이 저희 물건을 맡아 주는 게 아니라, 저희가 알라딘 창고로 24시간 안에 물건을 보내야 해요. 이때 공급률을 60%라고 하면 삼 육 십팔, 1,800원이잖아요. 근데 배송료가 2,500원인 거죠. 처음엔 그걸 홍보라고 생각하고 계속 손해를 봤어요. 저희 돈을 내면서.
하지만 하다 보니까 주객이 전도되는 것 같았어요. 수익이 전혀 안 나고 적금처럼 계속 저희 돈을 넣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지치고. 배송도 사실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한 건 들어와도 다음날 바로 보내야 하니까. 그래서 기성서점 유통을 사실상 포기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동네서점에서만 접하실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템이 될 수 없었다……. (일동 웃음) 쪽프레스의 책이 가볍다고 해도 배송료까지 가벼운 건 아니니까요. 유통 관련해서 난항이 컸어요.

우 가격은 혹시 어떻게 정하시나요?

래 가격은 사실 출판사에서 하듯이 어떤 비용이 들어가는지 계산해서 이 정도 선에서 정하자, 이런 전문성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구입할 만할까?’ 이렇게 연역적으로 정해요.

우 아, 그렇게 접근을 하시는구나.

 사실 이런 그래픽노블 같은 건 300쪽짜리 소프트커버만큼 제작비가 나와요.

율 그래요?

래 이렇게 여러 번 접어야 되고 컬러 인쇄에 한글판, 영문판, 두 개 들어가고 밀봉하면서 수공으로 계속 붙이고 접고 해야 하니까 단가가 낮아지지 않더라고요.

율 권당 단가가요?

래 예. 소프트커버의 그냥 평범한 책 권당 단가가 사실 2천 원 내외거든요, 출판사에서. 그런데 (쪽프레스 그래픽노블 단가도) 비슷해요. 그러니까 55% 공급률로 넣을 수도 없고 무료배송으로 하기도 어려워요. 그리고 최소수량도 1천 부, 2천 부, 3천 부 찍을 수 있는 책이 아니고요. 저희가 한번에 종수를 한 권씩 내는 출판사가 아니라 한 시리즈에 다섯 권, 열 권, 열다섯 권 내는 출판사이기 때문에 제작비를 감당하기가 어렵죠. 그리고 수공이 많이 들고 종이량이 크지도 않은 작업이라 총 수량이 변하는 거에 따라서 제작 단가가 드라마틱하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어려운 점이 여러 가지 있기 때문에 귀납적으로 추론할 수가 없고 독자로서 살 만한가 그 선에서 접근해요.

우 이건 3천 원인데 그래픽노블은 이거의 배 정도?

 네. 영문판, 한글판 두 개 들어 있고 판형도 1.5배 정도 됩니다.

우 어렵네요.

래 네. 그래픽노블도 사실 가격을 떨어트려야 맞는데 견적이 안 나오니까 안타깝습니다.

율 왜 (가격을) 떨어트리는 게 맞죠?

래 아무래도 가격 부담이 조금 있을 테니까요. 문고판 같은 경우 7, 8천 원이면 사잖아요, 100쪽, 200쪽 되는 것들을. 근데 이게 6천 원이면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죠.

율 가격과 볼륨의 상관성을 생각하다 보면 책을, 혹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드러나잖아요. 방금 말씀하셨듯이, 쪽프레스의 그래픽노블처럼 책이 너무 얇은데 그 정도 가격이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죠. 하지만 한편에서는 ‘예쁘니까 비싸도 기꺼이 산다’라는 의견도 있고요. 어떤 인터뷰(“인생의 묘미는 종이 다섯 쪽”, 텀블벅 네이버포스트, 2018.04.25)에서 보니 일본 오사카 북페어에 참여한 경험을 회고하며 “다들 왜 이렇게 책을 싸게 파냐며 놀라워하셨어요. 아트북을 ‘독서’를 위한 ‘책’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심미성을 갖춘 아름다운 오브제로 많이들 생각하시는 것이 신기했습니다”라고 하셨는데요.

래 네. 대만이나 일본 분들은 왜 이렇게 저렴하냐고 해요. 한국이 좀 비교적으로 책값이 낮게 책정되긴 하니까 쪽프레스가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지만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독서를 위한 문화 인프라가 잘되어 있잖아요. 구매력이 높은 층이 아니어도 양서를 접할 수 있는 접근권이 많이 퍼져 있고요.

우 맞아요.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피자를 들고 김민해 디자이너(쪽프레스 멤버)가 등장했다. 인터뷰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 있었다. 그는 김 디자이너를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안내하고는 일어섰다. 맥주 마실래? 커피도 있어. 그동안 우리는 인사와 소개를 나눴다. 막 내린 커피를 김 디자이너에게 건네면서, 그가 다시 앉았다.

율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죠. 조금 이야기가 샌 것 같은데요. 원래 드리려던 질문은 ‘가격과 심미성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쁘면 비싸도 되는가, 또는 얼마나 예쁘면 비싸도 되는가, 또는 예쁘면 얼마나 비싸도 되는가, 이런 걸 여쭤보고 싶었어요.

래 결국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선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저희는 충분히 아름답게 만들 뿐이고, 여기에 얼마를 지불할 만하다고 결정하시는 것은 독자가 아닐까요.

율 그래서 아트북 혹은 오브제로서의 책에 대한 이해가 일본과 대만이 (한국보다) 높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래 네. 통계적으로 면적이나 인구수 대비 독서인구나 출판 종수가 일본이나 대만이 높은 편이었어요. 대만의 독립출판 신도 점점 넓어지고 있고요. 그래서 대만 아트북 페어도 이번에 가보고 싶었는데, 초대도 됐거든요. 근데 시간이랑 연차도 없고 해서…….

(웃음)

율 쪽프레스는 여러 분이 협업하는 체제잖아요. 느슨하긴 하지만요. 혹시 같이 일하다 보면 문제나 갈등이 있지는 않나요? 회의감에 빠지시거나, 다투시거나, 아니면…….

래 엄청 느슨해요. 그리고 싸우려면 다섯 명이 다 모여야 되는데, 회식 때도 모이기가 힘들어서. (웃음) 보통은 원격으로 소통해요.

우 그럼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그런 건 없나요?

래 책 팔러 나갈 때 정기적으로 모이게 돼요.

 그럼 기획은 어떻게 하세요? 기획회의 안 하시나요?

래 프로젝트 단위를 편집자랑 발행인으로 잡아요. 그래서 저랑 김태웅 님이랑 보통 주제 선정이나 저자 섭외를 하고, 실무에 필요한 인력들은 내부 디자이너랑 편집자한테 부탁할 때도 있고, 여건이 안 되면 외부 분들에게 부탁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책을 자주 팔러 나가긴 하니까 몇 달에 한 번씩 보긴 하거든요. 그때 ‘이런 거 해보면 어때?’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요. 저희가 정기지가 아니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내잖아요. 그래서 느슨해요, 생각보다.

율 저희는 거의 막 격주로 만나고, 회의를 하니까…….

래 초반이셔서 더 그러신 것 같아요. 저희는 어느덧 4년차인데, 초반에는 포맷 만드느라 인쇄해 보고 이러느라 맨날 만났죠. 어!?

두 번째 손님이 등장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듯 셋은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막 도착한 김지선(전직 출판마케터. 쪽프레스의 친구)을 김 디자이너 옆자리로 안내하고는 일어섰다. 맥주 마실래? 커피도 있어. 그동안 우리는 인사와 소개를 나눴다. 이제는 이 모든 게 모두에게 자연스러웠다.

김민해(해) 초창기 때는 우리가 같은 회사에 있어서 따로 만날 필요가 없었어요. 같은 건물에 다 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만나다가 회사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우 서로 시간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군요.

김지선(선)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다들 (회사를) 옮겼거든요.

율 지금은 따로 만나지 않아도 분업이 착착착 진행되는 거죠?

해 네, 각자 영역이 있다 보니 만나지 않아도……. 그리고 일단은 구성원들이 많이 친한 사이예요. 그러다 보니 연락을 자주 하고, 자연스레 (일이) 되는 거 같아요.

율 저희도 앞으로 프로젝트별로 구성원들이 이합집산하며 수익을 내고도 싶은데, 그럴 때 정산이라든가 분배 같은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 근데 사실, 아시잖아요, 돈이 안 된다는 거.

래 그렇죠. 수익을 나눌 만한, 그런 게 없죠…….

해 네, (번 거) 거의 그대로 다음 작품 만드는 데쓰죠. 보통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막 공격적으로 하면 처음 1년 정도 어렵고 그 뒤로는 조금씩 수익이 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저희는 처음부터 그렇게 공격적으로 사업을 한 게 아니라서요. 그래서 아직 저희도…….

우 국민템이 됐다면, (분배 문제를) 고민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율 유통 문제만 해결됐다면.

우 (갑자기 혼잣말) 좋다. 우리도 좀 쉽게 하면 안 되나? 우린 너무 빡빡한 거 같아.

율 그렇죠. 우린 너무 머리만 아프고, 발은 무겁고.

해 근데 사실 이걸로 수익이 나는 게 아니라서. 지금 다니는 회사도 고맙고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쪽프레스 활동은) 느슨하게 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율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눈여겨보시는 독립출판 제작자 있으신가요?

우 요즘에 재밌더라 하는.

래 (민해 님에게) 있어요?

해 글쎄?

율 우리 같은 천재는 없다? (웃음)

우 혹시 다른 독립출판 하시는 분들은 만나시나요? 저희는 몇 번 ‘시시때때’ 같은 데도 참여했고, 서점에서 하는 독립출판 제작자 모임, 이런 거 몇 번 갔었거든요.

래 아, 진짜요? 저희는 ‘시시때때’가 처음이었어요. 강연 요청을 받아서 처음 가봤는데, 저희가 의외로 엄청 소극적이어서…….

율·우 그래요? 완전, 제일 좋았는데요.

래 저희가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안 하는데. (웃음)

해 저희가 이렇게 보여도 낯을 되게 많이 가려요. (일동 폭소)

래 낯을 가린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몇 명이서 만나는 건 괜찮은데, 수십 명이 있는 자리에선 낯을 가려요.

율 그러시구나. 강연 너무 좋아서 끝나고 따로 찾아가서 인사도 드렸잖아요.

래 그래서 그때 저희도 되게 행복했어요. (웃음) 이렇게 관심사가 비슷한 분들 많이 만나서 되게 벅차올랐는데, 막상 뒤풀이할 거 같으니까 쑥스러워져서 도망갔죠.

율 안 보이시더라구요. 저는 계속 있었는데.

우 이분은 끝까지…… (있었죠).

래 다 같이 ‘이게 책임감’ 이런 거 보면서 되게 재밌다고 했었죠. 아, 그리고 요즘에 눈여겨보는 팀은 브로드컬리. (책이) 되게 현실에 기반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사실 잡지 형식인데 단행본 형태이고요. 판형이나 표지가 흥미롭고 직관적이고, 잘 읽히고. 앙케트같이 하나의 생태계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은 ‘뒤로’라고. 몇 년 동안 게이 잡지를 만들고 계신데, 항상 존경하고 챙겨 봅니다.

해 (저는) 너무 떨려서, 얼굴도 안 들고 있다가 (갔어요).

우 그렇군요. 그럼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세 번째 손님이 등장했다. 벌써 여섯이 되었다. 그는 손님을 빈자리로 안내하고 일어섰다. 맥주 마실래? 커피도 있어. 그동안 우리는 인사와 소개를 나눴다. 지다율은 (이제는) 맥주를 마시겠다고 했다. 기다린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