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비평 사이

정윤

대담자 소개

은다강_문학보다 비문학을 읽는다. 도서관 대출 이력에서 문학 비중은 20권당 1~2권. 이번 대담 전 마지막으로 읽은 문학은 박지리 작가의 〈번외〉. 책 뒤에 있는 비평은 거의 읽지 않으며, 읽더라도 한 문단을 못 넘긴다.

정원희_문학과 비문학을 비슷하게 읽는다. 문학 소설창작을 전공했다. 이번 대담 전 마지막으로 읽은 문학은 줄리언 반스 작가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책 뒤에 있는 비평은 책을 읽고 읽는 편이다. 비평을 비평한다.

정윤: 안녕하세요, 편않의 정윤입니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이번 호 주제가 ‘비평’이에요. 그런데 독자들은 비평을 어떻게 생각할지 제일 먼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독자 두 분을 모시고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야기 주제는 ‘문학비평’으로 좁히려 합니다. 비평의 영역은 넓고 다양하지만 문학비평은 특별히 역사도 깊고, 비평가의 역할이 중요한 영역이라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주제가 너무 넓으면 이야기하기 힘들겠죠?
먼저 문학 이야기를 나누고 비평을 이야기해 보시죠. 우선 두 분이 독자로서 문학을 왜, 어떻게 읽는지 나누면 어떨까요?

원희_먼저 ‘문학이란 무엇일까’를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소설과는 달리 제가 쓴 시나리오를 읽은 사람들이 ‘문학적이다’라고 이야기했거든요. 똑같이 영상을 찍기 위한 시나리오를 써도 어떤 글은 더 문학적일 수 있다는 거죠. 어떤 점을 문학적이라고 느낀 걸까요?

다강_저는 한때 ‘읽히는’ 영화를 좋아했어요. 특히 이창준 감독의 영화 〈시〉를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데, 이 작품도 문학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더라고요. 하지만 영상이 텍스트처럼 읽히는 이유나, 어떤 점이 문학적으로 느껴지는지 고민해 본 적은 없어요. 그저 대사가 많다고 그런 건 아닐 텐데요.
비슷하게 어디까지 문학이라 불러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소비자로서 서점에 팔리는 책이 작품이겠거니 하지만, 가끔 이걸 굳이 책으로 만들었나 하는 것들은 있죠.

정윤: 확실히 문학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해야 읽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책 읽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하지만 문학을 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려워도, 문학을 읽는 기준이나 특별히 집중하는 요소, 혹은 읽는 방법을 각자 가지고 있을 거예요. 두 분은 어떠신가요?

다강_읽는 기준이라면, 흡입력과 재미인 것 같아요. 책 뒤에 붙은 비평을 안 읽는 이유도 재미가 없어서거든요. 저는 문학 중에서도 소설, 그중에서도 외국 소설이나 근대 소설을 주로 읽었어요. 그러다 김애란 작가의 〈물 속 골리앗〉을 읽었는데 엄청난 몰입을 경험했어요. 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비 냄새가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향수〉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유는 비슷해요. 첫 장을 읽는 순간 강렬한 비린내가 끼쳐요. 활자로 쓴 글이지만, 독자가 그 안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죠.

원희_저도 어렸을 때는 재미를 위해 문학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문학창작을 전공하면서 독자 시선은 물론 창작자 시선에서도 책을 읽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첫째로 창작자의 역할을 고민하며 문학을 읽어요. 두 번째로는 상상력을 펼치고 기를 수 있는 독서를 하려 해요. 영화나 다른 매체보다 책을 접하면서 특별히 상상력에 노력을 많이 쏟아야 하잖아요?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감이나 연대를 경험하고 강화할 수 있는 통로로 문학을 대하고 있어요.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책으로 작가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분야나 장르를 떠나 인간, 인간성을 이야기하고 공동체에 주목하는 작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다강_사실 저는 작가보다는 글 자체에 더 주목하는 편이에요. 작품이 작품 안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작가의 말도 잘 안 읽거든요.

원희_작품 자체는 물론 독자 스스로도 중요하다고 봐요. 작가가 쓰면 독자가 읽고 재해석해서 글을 완성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독자 없이는 문학도 없다는 거죠.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작품에 다 쏟아 부어도 결국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배경지식에 따라 읽잖아요. 어쩌면 정말 답이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죠.

다강_그렇게 답이 없는 영역에서 모든 학생에게 같은 답을 주입하는 문학수업이 문득 생각나네요.

원희_맞아요. 저는 중학생 때까지는 추리소설의 흡인력에 매료되거나 세계명작을 반복해 읽었는데, 막상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배울 때는 재미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오히려 글 읽는 방법을 제한해 버리더라고요. 결국 ‘나만의 해석’을 찾아 책을 읽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대학생 때에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너무 기준 없이 책을 이것저것 읽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자신만의 기준을 잘 찾아왔다고 생각해요. 어디어디 교육기관이 말한 권장도서 같은 것보다는 자기에게 맞는 책, 자기가 원하는 책을 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읽을 문학책을 고르며 베스트셀러에 쏠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윤: 그렇다면 읽고 난 책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하는 기준은 혹시 갖고 계신가요? 비평가들이 주로 하는 역할일지도 모르지만, 독자는 항상 독자 나름대로 책을 경험하고 평가해야 하잖아요?

원희_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나쁜 책인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는 좋은 책이 누군가에게는 나쁜 책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이 사람에게는 산만하고 허술한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실험적인 책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어떤 책을 ‘나쁘다’고 말하기보다는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다강_좋고 나쁨을 나누는 기준은 딱히 없지만, 어떤 장치로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게 좋은 책 아닐까 싶어요. 전 학창시절에 귀여니 진짜 좋아했거든요. 그때 팬카페 토론방에서 이모티콘을 쓴 글이 어떻게 문학이냐는 말에 반박 댓글도 달고 상처받기도 했어요. 당시 저희 어머니도 귀여니 애독자였는데, 형식이나 맞춤법으로 말이 많아도 결국 사람들이 그 글을 읽게 만드는 건 작가의 능력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원희_귀여니 소설을 좋아하시는구나! 전 〈내 남자친구에게〉를 영화화하는 데 참여했었어요. 그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배웠죠.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말하듯 매체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 공감을 이끌어내고 감정을 움직이는 힘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또 쉽게 표현하되 농도 깊게 표현하는 것을 많이 고민했고요.

다강_공감 이야기를 하니까 고전을 좋아하는 친구가 떠오르네요. 〈데미안〉을 좋아한다기에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꼈거든요. 그런데 그 이유가 소설이 그려낸 데미안이 잘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야길 듣고 단번에 납득했어요. 공감을 이끌어내는 공통점도 중요하지만, 책을 대하는 독자의 시선이 얼마나 다양한지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네요.

정윤: 두 분 모두 책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누리는 방법이 분명하신 것 같아요. 어쩌면 비평도 그 중요한 방법, 또는 도구 중 하나일 거예요. 혹시 두 분께서는 그동안 비평을 어느 정도나 읽어보셨나요?

원희_대학에서 비평수업을 들었어요. 신화적 비평이나 역사주의 비평, 형식이나 의미를 비평하는 법 등 어떤 코드를 통해 작품을 분석할 수 있는지도 익혔고요. 비평의 접근법이 다양하잖아요? 문학이론서를 읽고 소설이나 시 비평문을 쓰기도 했고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비평을 써서 〈씨네21〉에 공모하기도 했어요. 비평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비평가들의 특징 정도는 있어요. 학문적 느낌의 비평보다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비평을 좋아하죠. 예를 들어 저는 〈반고비 나그네 길에〉라는 김현의 에세이집을 좋아하는데, 김현이 쓴 글이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글에 담긴 비평가의 인간적인 시선을 좋아하거든요.

다강_사실 비평을 읽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한 작품이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지, 얼마나 중요한 작품인지 논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걸 굳이 제가 읽고 싶진 않거든요. 비평 자체가 현학적이라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책 말미에 비평이 있는 걸 보면 ‘난 관심 없는데, 자기들끼리 골방에서 하면 되지’ 하고 생각했어요.
또 한 비평가가 어떤 작품을 비평하며 ‘오독으로부터 작품을 지켜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런 표현에 분개한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들었고요. 문단이 독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볼 순 있겠지만, 낮추어 봐도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안 그래도 다가가기 어려운 비평에 더욱 거리감이 생기더라고요.

정윤: 비평을 접한 경험이 서로 다르시네요. 비평에 대한 기대는 어떨까요? 이전에, 혹은 오늘 이야기하면서 독자 입장에서 어떤 비평이 좋은 비평일지 떠오른 점이 있으면 나눠주시겠어요?

원희_전 먼저 비평가가 글뿐 아니라 작가를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주의를 기울이고 깊이 이해한 비평이 독자들이 책을 더 풍성하게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죠. ‘난 이렇게도 읽을 수 있어’ 하듯이, 이론이나 철학, 미학으로 작품을 더 아름답게, 현학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만 빠지면 자기우월이나 자기만족이지 독자를 배려하는 비평은 아니잖아요? 전 적어도 작품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작가 인터뷰를 하거나 작가 연구를 해서라도 저자의 의도, 생각, 배경을 함께 잘 엮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위에 비평가의 의견을 얹어야 하는 거죠.

다강_맞아요. 현학적이면 당연히 읽기 힘들고 재미없고 멀어지죠. 즐겁게 읽은 소설을 더 알고 싶어 비평을 읽었는데 라캉이며 프로이트가 나오면… 라캉, 프로이트를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빨간 책방’에서 작가가 게스트로 나온 편들을 찾아 듣게 돼요. 제가 이동진 작가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빨간 책방은 독자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고, 독서 경험을 더 풍성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나눠요. 그 덕분에 점차 작가의 말도 읽게 되고, 작가 인터뷰도 찾아보게 됐어요. 비평도 독자가 텍스트를 이해하고 즐기고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도와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정윤: 두 분 말씀에서 한편으로는 비평을 향한 거리감이나 아쉬움도 느껴지지만, 반면 어렴풋한 기대도 깔린 듯하네요. 사실 오늘 인터뷰를 하기 전에 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같이 읽었잖아요? 마지막으로, 이글턴의 책을 읽으며 비평에 대해 새롭게 느낀 것이 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다강_책에서 ‘글이 말하는 방식’에만 집중하는 독자의 얘기가 사례로 나오는데, 조금 찔렸어요.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독서를 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단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비평이 누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문학을 즐겁고 풍성하게 읽도록 돕는 도구로 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원희_다시 한 번 독서 사회환경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초등학교에서 독서토론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초등학생이 질문이 가장 많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질문이 점점 없어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대요. 그래서 토론수업을 할 때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도록 이끌어요. 아이든 어른이든 책을 읽고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 문화가 중요해요. 최소한 질문 자체가 틀리지 않았을까 걱정해서 입조차 열지 못하는 상황은 없어야 해요.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지 더 깊이 읽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윤: 오늘 이야기 너무 재미있었어요. 독서법이나 좋아하는 책, 주제는 서로 다르지만, 좀더 열린 비평, 다양한 비평, 읽기를 풍요롭게 하는 비평을 바란다는 점에서는 두 분이 같은 생각이신 것 같네요. 저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다음에 또 같이 책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