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린 4월

저: 엘리자베스 본 아르님
역: 정지민

1장

그 일이 시작된 것은 2월의 어느 오후, 런던의 한 여성 클럽에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쇼핑을 하러 햄프스테드에서 내려와 그 궂은 오후의 거북살스러운 클럽에서 점심을 들고 흡연실의 테이블에 놓여 있던 더 타임스지를 집어 고민상담란을 시큰둥하게 읽어 내려가던 윌킨스 부인의 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등나무와 햇살을 즐길 줄 아는 분들께. 지중해 해안의 작은 중세 이탈리아 고성을 4월간 임대. 필수 고용인 포함. Z, 사서함 1000번, 더 타임스
바로 이 때 일이 시작된 셈이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듯이 정작 당사자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 해 4월의 향방이 방금 정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모르기만 할 뿐일까, 윌킨스 부인은 숫제 짜증과 체념이 흐르는 태도로 신문을 떨구고는 창가로 가 비가 듣는 거리를 울적하게 바라보았다.
구태여 언급할 정도로 작다손 치더라도 윌킨스 부인 팔자에 중세 고성이란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4월의 지중해 해안이나 등나무, 햇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즐거움은 부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광고는 그런 것을 즐길 줄 아는 분들을 위해 난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쨌든 간에 부인을 위해 난 광고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한테 말한 적도 없지만, 부인이 그것들을 즐길 줄 아는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윌킨스 부인은 가난했다. 온 세상에 부인만의 소유는 매년 피복 수당에서 떼어 한 푼 한 푼 살뜰히 모아 온 90파운드가 전부였다. 남편의 권유에 따라 궁할 때를 대비한 방패막이이자 피난처 삼아 그러모은 것이었다. 친정 아버지가 주는 피복 수당이 연 100파운드이고 보니 부인의 옷은 저축을 채근한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수수하고 잘 어울리는 것이었고, 지인들의 이야기에서는 가관이라고 할 만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도 부인이 화제가 되는 날이나 나오는 것인데, 존재감이 없다 보니 그런 날은 드물었다.
남편이자 변호사 윌킨스씨는 검약을 강조했는데, 본인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를 두었다. 그건 검약이 아니라 소홀한 살림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다른 방면의 검약, 그러니까 나방처럼 윌킨스 부인의 옷을 쏠아 망치는 검약은 몹시 칭송했다. “언제 궂은 날이 올지 몰라,”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런 날이 오면 당신도 쌈짓돈 모아둔 걸 다행으로 여길걸, 우리 둘 다 그럴 거라고.”
한동안 서서 클럽(저렴한 곳이지만 부인이 사는 햄프스테드에서 오가기 좋고 쇼핑을 하러 가는 숄브레드 백화점에서도 금방이었다)의 창 밖으로 샤프츠버리 애비뉴를 따분하게 바라보는 윌킨스 부인의 마음속 눈에 4월의 지중해, 등나무, 부자들이 누리는 샘나는 즐거움이 들어왔다. 동시에 육체의 눈에는 서둘러 다니는 우산과 물을 튀기며 달리는 버스 위로 줄곧 떨어지는, 끔찍하게도 거무튀튀하기 짝이 없는 빗줄기가 들어왔다. 갑자기 부인은 바로 지금이 맬러쉬(이것이 윌킨스씨의 이름이었다)가 대비하라고 입이 닳도록 강조한 궂은 날이 아닌지, 그리고 이런 날씨를 벗어나 작은 중세의 고성으로 가는 데 저축을 쓰는 것이 신의 섭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부 다 쓰자는 건 아니니까. 아마 아주 일부만으로도 가능할 것이었다. 중세의 고성이라니 문제가 있을 것이고, 수리비는 얼마 하지도 않을 테니까. 수리비가 나온들 상관 없는 일이다. 수리비라고 해서 이미 망가진 걸 다 수리하자는 게 아니고, 반대로 임차료를 깎을 수 있으니까 사실 임대 측이 돈을 지불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생각해봐야 부질없는 일이었다…
부인은 더 타임스를 내려놓을 때와 똑같이 짜증과 체념이 뒤섞인 태도로 창을 등지고 방을 가로질러 문을 향했다. 레인코트와 우산을 챙기고 만원 버스에 비집어 올라타서 집에 가는 길에 숄브레드에 들러 서대기를 사야 맬러쉬의 저녁을 할 것이 아닌가(맬러쉬는 생선에 까다로웠고 연어를 제외하면 서대기만 좋아했다). 그 때 부인의 눈에 아버스낫 부인이 들어왔다. 얼굴만 아는 정도의 사이인 아버스낫 부인도 같은 클럽에 다녔고 햄프스테드에 살았는데, 이번엔 그 아버스낫 부인이 방 한가운데의 신문과 잡지를 모아두는 탁자에 앉아 터 타임스의 첫 페이지를 골똘히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윌킨스 부인은 아버스낫 부인과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스낫 부인은 교회 모임에 나갔고 불우이웃을 분석하고, 분류하고, 나누고, 등록하는 일을 했다. 반면 윌킨스 부인과 맬러쉬는 외출을 한다면 햄프스테드에 우글거리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파티로 향했다. 맬러쉬의 누이가 그 화가 중 하나와 결혼해서 히스에 살았는데, 그 인연 덕택에 윌킨스 부인은 얹힐듯한 기분을 무릅쓰고 이 무리에 끌려들어가 그림에 질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림에 대해 평을 해야 했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인은 대체로 “기가 막히네요”라고 웅얼거리고는 뭔가 부족한데 하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도 듣지도 않았다. 아무도 윌킨스 부인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부인은 파티에서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검약이 창궐하는 옷 덕분에 부인은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얼굴도 시선을 끌지 못했고, 언변도 어눌했다. 숫기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자기 결점을 받아들이며, 옷에 얼굴에 대화까지 전부 별 볼 일 없다면 파티에서 할 게 뭐란 말인가 하고, 윌킨스 부인은 생각했다.
게다가 부인은 윌킨스씨, 깔끔한 면도에 멋진 풍채를 갖추고 파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분위기를 몰고오는 그 사람과 늘 함께 있었다. 윌킨스씨는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알려지기로는 업계의 선배들도 높이 평가할 정도였다. 누이와 어울리는 이들도 역시 그를 존경했다. 윌킨스씨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적절히 지적인 평가를 내릴 줄 알았다. 그는 속이 깊고 신중하여 너무 많이 말하는 법이 없었고, 반대로 너무 적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자기가 한 말을 모두 적어두는 듯 했다. 너무나 미더운 나머지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기 변호사에 불만이 생겨 한동안 안절부절 못한 끝에 기어코 윌킨스씨를 찾아오는 일도 흔히 있었다.
당연히, 윌킨스 부인은 안중에서 사라졌다. “언니는 그냥 집에 있어야 해.”라고 윌킨스의 누이가 법조인처럼 간결하고 단호한 태도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윌킨스씨는 아내를 집에 남겨둘 수 없었다. 그는 가족 변호사였고, 가족 변호사들은 모두 아내가 있었으며,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 윌킨스도 자기 아내를 평일에는 파티에 데리고 다녔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데리고 갔다. 아직 젊은 편이고(서른아홉이었다) 아직 늙은 여성 고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터라, 윌킨스는 교회를 거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윌킨스 부인이 아버스낫 부인을 알게 된 것이(비록 말을 섞어본 적은 없지만) 바로 그 교회였다.
윌킨스 부인이 본 아버스낫 부인은 교회 장의자에 가난한 집 아이들을 줄줄히 앉히는 모습이었다. 아버스낫 부인은 성가대가 여는 찬송을 시작하기 정확히 5분 전에 아이들 행렬의 선두에 서서 들어온 다음 각자의 자리에 단정히 앉혔다. 그리고 여는 기도 순서에는 무릎을 꿇리고, 오르간 소리에 맞춰 열린 커다란 문을 통해 교독문과 근엄함이 터질 듯이 가득 찬 성가대와 신부가 들어오면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부인의 얼굴에는 슬픔이 깃든 듯 했지만 무척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이 슬픔과 효율성의 조합은 윌킨스 부인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서대기가 대신 가자미만 구할 수 있던 날마다, 효율적인 사람은 우울할 일이 없고, 자기 일만 잘 하면 자동으로 밝고 팔팔해진다고 맬러쉬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스낫 부인에게 밝고 팔팔한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주일학교 아이들과 있을 때는 자기 나름 기계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창문에서 돌아선 윌킨스 부인의 눈에 들어온 아버스낫 부인은 전혀 기계적이지 않았다. 움직임 없이 가만히 더 타임스를 들고 첫 장의 한 부분을 뚫어지도록 쳐다보는 눈이 움직이지도 없았다. 부인은 계속해 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고, 얼굴은 언제나와 같이 인내심 있고 실망한 성모상 같았다.
윌킨스 부인은 족히 일 분 동안 아버스낫 부인을 쳐다보며 말을 걸 용기를 짜냈다. 부인은 그 광고를 봤는지 묻고 싶었다. 왜 그걸 묻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지만, 어쨌든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멍청하게 말도 못 걸다니. 아버스낫 부인은 정말 친절해 보였다. 그리고 무척 불행해보였다. 불행한 두 사람이 울적한 인생길을 가다가 만나 지금 심정이 어떤지,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아직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 자연스러운 진짜 대화로 서로의 기운을 북돋워서 안 될 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왠지, 윌킨스 부인은 아버스낫 부인도 바로 그 광고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인의 눈도 신문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저쪽도 상상을, 그 색, 향기, 빛살, 뜨겁고 작은 조약돌을 부드럽게 찰싹이는 바다를 상상한 것일까? 색채, 향기, 빛, 바다, 샤프츠버리 애비뉴 대신, 젖은 버스, 숄브레드의 해산물 코너, 햄프스테드까지 가는 지하철, 차려야 하는 저녁, 똑같은 내일, 똑같은 모레, 그리고 언제나 똑같은 날 대신…
자기도 모르게 윌킨스 부인은 탁자에 대고 몸을 구부렸다. “중세 고성이랑 등나무가 나온 광고 읽고 계세요?” 윌킨스 부인의 귀에 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스럽게도 아버스낫 부인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윌킨스 부인이 말을 건 자신에게 놀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버스낫 부인은 자신이 아는 한, 맞은 편에 앉은 이 허름하고 엉성한 차림의 호리호리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상대의 주근깨 가득한 조그만 얼굴과 커다란 회색 눈은 다 구겨진 방수모 뒤에 거의 숨겨져 있었다. 그 상대를 아버스낫 부인은 잠시 대답 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스낫 부인이 중세 고성과 등나무 광고를 읽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그보단 10분 전에 읽고서 계속 그 빛살, 색채, 향기, 뜨겁고 작은 조약돌을 부드럽게 찰싹이는 바다에 대한 몽상에 빠져 있었다고 해야 할까…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 부인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우이웃을 대하며 아버스낫 부인은 근엄하고 참을성 있도록 단련되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윌킨스 부인은 몹시 부끄럽고 겁먹은 듯 보였다. “아, 그냥 저도 그 광고를 봐서요, 그리고 혹시, 혹시 그” 말이 더듬거리며 나왔다.
그 즉시, 행동거지를 통해 사람을 목록에 넣고 분류하는 데 익숙한 아버스낫 부인의 정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인은 윌킨스 부인을 곰곰히 바라보며 어떤 표제 아래에 분류해야(분류를 해야 한다면) 가장 적절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 뵌 적이 있거든요,” 모든 숫기 없는 사람이 그렇듯, 한 번 시작한 말을 잡고 계속 달려들며, 그리고 귀에 들리는 자신의 방금 전 목소리에 점점 더 겁을 먹으며 윌킨스 부인이 말했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주일마다 뵜잖아요,”
“교회에서요?” 아버스낫 부인이 따라 말했다.
“그리고 너무 멋지더라구요, 이 등나무랑 그…”
최소 서른 살은 되었을 윌킨스 부인이 말을 갑자기 멈추고는 어색하고 부끄럼을 타는 여학생처럼 의자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너무 멋져 보여서요,” 윌킨스 부인이 터져나오듯 말했다. “그리고 오늘 날이 너무 고약하다 보니…”
그리고나서 부인은 가만히 앉아 우리에 갖힌 강아지같은 눈으로 아버스낫 부인을 바라보았다.
“딱한 양반 같으니,” 남을 돕고 고통을 달래며 살아온 아버스낫 부인이 생각했다. “조언이 듣고 싶으신가보네.”
그런 생각이 들자 부인은 마음을 가다듬고 할 말을 준비했다.
“교회에서 보셨으면,” 상냥하고 조심스럽게 아버스낫 부인이 말했다. “햄프스테드에 사시나봐요?”
“오 네,” 윌킨스 부인이 답했다. 그리고는 마치 햄프스테드에서의 기억이 멀리서 인사라도 건낸것마냥 길고 가는 목 위의 고개를 살짝 숙이며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 “오 네.”
“햄프스테드 어디서요?” 조언이 필요할 때는 자연스럽게 우선 사실 관계부터 확보하는 아버스낫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윌킨스 부인은 광고가 난 더 타임스의 지면을, 마치 인쇄된 단어가 소중하기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아마 그래서 이렇게 멋져 보이나봐요.”라고 할 뿐이었다.
“아뇨, 저도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관계 수집을 잊어버리고 희미하게 한숨을 쉬며 아버스낫 부인이 말했다.
“그럼 이 광고 읽고 계셨던거죠?”
“네,” 또 다시 꿈꾸는 듯한 눈으로 아버스낫 부인이 말했다.”
“정말 멋지겠죠?” 윌킨스 부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멋지겠죠.” 아버스낫 부인이 말했다. 잠시 밝아졌던 부인의 얼굴에 다시 인내하는 표정이 돌아왔다. “정말 멋지겠죠.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며 시간 낭비해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오 멋질 거예요,” 놀랍게도 윌킨스 부인이 재빨리 답했다. 놀라웠던 것은 부인의 전체적인 모습, 그러니까 특징없는 코트와 치마, 구겨진 모자,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 가닥이 삐져나온 모습과 그 대답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답니다. 햄스프테드와는 어찌나 다른지. 그리고 저는 뭔가 간절히 생각하면 그게 이루어진다고, 정말로 믿어요.”
아버스낫 부인이 끈기 있게 윌킨스 부인을 관찰했다. 정리를 기어코 해야 한다면, 이 사람은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할까요?
“그럴지도요,” 부인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이름 좀 말해주실래요. 친구를 하려면,” 근엄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저는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처음부터 제대로 시작해야죠.”
“오 네, 죄송해요. 저는 윌킨스 부인이에요,” 윌킨스 부인이 말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무 것도 전달이 안 되겠죠. 가끔은 제, 저한테도 아무것도 전달이 안 되는 느낌이에요. 어쨌든,” 아무 말도 않는 아버스낫 부인에게 얼굴이 붉어진 윌킨스 부인이 덧붙였다. 그리고 도움이라도 구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저는 윌킨스 부인이에요.”
윌킨스 부인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라하고 변변찮은 이름이었고, 뒤에 가서는 말려 올라간 퍼그의 꼬리처럼 경박하게 끝났다. 그러나, 어쨌든 그게 이름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부인의 이름은 윌킨스였고, 계속 윌킨스일 터였다. 그리고 남편은 어딜 가든 맬러쉬-윌킨스 부인으로 이름을 대라고 부추겼지만, 부인은 남편이 들을 때만 그 이름을 댔다. 별장 문설주의 챗스워스란 단어가 별장을 강조하는 것처럼, 그녀 생각에 맬러쉬는 안 그래도 별로인 윌킨스를 한층 악화시킬 뿐이었다.
처음 맬러쉬를 덧붙이라는 권유에 부인이 이런 이유로 항의하자, 맬러쉬는 잠시 말을 멈췄다(그는 관찰한 바를 착실히 머릿속에 기록하기 위해 잠시 멈추지 않고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신중했다). 그리고 상당히 불쾌한 목소리로 “내가 별장은 아니잖아”라고 말하고는 부인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벌써 한 백 번은 지었던 표정인데, 자신이 설마 바보와 결혼한 건 아니겠지 하고 말하는 듯했다.
물론 남편이 별장이라는 게 아니라고 윌킨스 부인이 거듭 말했다. 그렇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의미로 말한 것도 절대 아니고… 그냥 내 생각에…
그녀가 더 설명하려 하면 할수록 제발 바보와 결혼한 건 아니기를 바라는 맬러쉬의 간절함, 이미 남편이 된지 2년차였으니 이제 익숙해진 그 간절함도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부처는 꽤 오랫동안, 남편더러 별장이라고 한 것이 맞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말다툼을 벌였다. 한 쪽은 위엄을 갖추고 입을 다물고 다른 한 쪽은 애타게 사과하는 것을 말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분명,’ 마침내 말다툼이 끝났을 때(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인은 생각했다. ‘2년 내내 하루도 안 떨어지고 붙어있으면 누구라도 시시한 걸 가지고 싸울거야. 우리 둘 다 휴가가 필요해.’
“제 남편은,” 자신을 좀 더 잘 설명하려 애쓰며 윌킨스 부인이 말을 이었다. “변호사에요. 남편은…” 그녀는 맬러쉬를 설명할 만한 말을 찾다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아주 잘생겼어요.”
“아,” 아버스낫 부인이 상냥하게 말했다. “정말 좋으시겠어요.”
“왜요?” 윌킨스 부인이 물었다.
“왜냐하면,” 늘 불우이웃들과 대화하다 보니 의견에 토가 달리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던 아버스낫 부인이 약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했다. “왜냐하면 미모… 아름다움이란 축복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올바르게 사용하면…”
아버스낫 부인의 목소리가 작아지다 결국 잠잠해졌다. 윌킨스 부인의 커다란 회색 눈이 자신에게 박혀 있었고, 아버스낫 부인은 마치 보모처럼 행동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수긍하고, 말을 멈출 생각도 못하고, 하는 말을 다 들을 청중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윌킨스 부인은 아버스낫 부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 순간 어떤 이미지, 이름 모를 나무 너머 커다랗고 멋들어진 등나무가 낭창거리는 아래로 두 사람, 자신과 아버스낫 부인이 앉아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는 밝은 햇살을 받아 중세 고성의 오래된 회색 벽이 빛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 덕에 부인은 아버스낫 부인을 바라보면서도 말은 하나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스낫 부인도 윌킨스 부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 붙잡혀 마주 쳐다보았다. 윌킨스 부인의 얼굴에는 자신이 목격한 장면에서 찾아온 흥분이 떠올라 있었고, 돌풍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빛나고 흔들렸다. 이 곳에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면 윌킨스 부인은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였다.
두 명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버스낫 부인은 놀라서, 그리고 뭔가를 살피듯한 기색이었고, 윌킨스 부인은 계시를 받은 듯한 눈이었다. 당연히, 이게 맞는 것이다. 혼자만, 혼자서는 감당을 할 수가 없고,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혼자서 어떻게 가겠는가. 하지만 아버스낫 부인과 함께라면…
윌킨스 부인은 테이블 너머로 몸을 기울이고는 “한 번 해보면 어때요?”라고 속삭였다.
아버스낫 부인은 더 커진 눈을 하고는 “해보면?”이라고 따라했다.
“네,” 윌킨스 부인이 마치 들킬까봐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여기 죽치고 앉아서 아 참 멋지겠지 하다가 아무 것도 안 하고 햄프스태드로 가서, 평소처럼 집에 가서 저녁 차리고 매일 하던 것처럼 생선이나 다듬고, 또 똑같은 날을 보내는 대신요. 사실,”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쏟아져나오는 말에 놀라 윌킨스 부인은 머리까지 빨개졌지만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휴식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막간이란 게 있어야 하는 거죠, 모두를 위해서요. 그러니까 잠깐 떠나서 행복을 누리는 건 전혀 이기적인 게 아니에요, 훨씬 좋은 기분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누구나 잠시 휴일을 즐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해본다는 건 무슨 말씀이에요?” 아버스낫 부인이 말했다.
“빌리는 거죠,” 윌킨스 부인이 말했다.
“빌려요?”
“임대, 임차, 대여하는 거죠.”
“아니, 부인하고 제가요?”
“네, 우리가요. 각출해서. 그러면 비용이 반 밖엔 안 들고, 부인도, 저만큼이나 원하시는 것 같거든요. 휴식이, 뭔가 행복한 것이 필요한 것 같으세요.”
“그런데 우린 서로를 모르잖아요.”
“한 달이나 같이 여행을 가면 얼마나 친해지겠어요! 저는 궂은 날에 대비해 모아둔 저금이 있는데, 부인도 그렇지 않으세요? 오늘이 바로 궂은 날이에요, 저길 한 번 보세요.”
“정신이 나간건가,” 아버스낫 부인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기묘하게도 마음이 동요했다.
“한 달 동안, 모든 것에서, 천국으로 떠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아버스낫 부인이 또 생각했다. “목사님 말씀에…” 그런데도 기묘하게 마음이 동했다. 분명 휴식, 연휴를 즐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습관이 아버스낫 부인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불우이웃들과의 오랜 대화로부터 단련된 근엄한 친절함이 다시 나왔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천국은 따로 있는 게 아니잖아요. 천국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교회에서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아버스낫 부인은 불우이웃을 깨우치고 도우려 할 때처럼 사뭇 진지해졌다. “천국은 우리 안에 있는 거예요,” 낮고 상냥한 목소리로 부인이 말했다. “성경의 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잖아요. 아시죠, 초막이나 궁궐이나,”
“오 네, 알죠.” 윌킨스 부인이 성급하게 끼어들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버스낫 부인이 기어코 문장을 마무리했다. “내 가정이 하늘나라에요.”
“아닌데요.” 윌킨스 부인이 대답했다.
아버스낫 부인은 흠칫 놀라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내 집이야말로 하늘나라에요. 우리가 그렇게 선택하고, 만들면요.”
“전 선택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하늘나라는 아니에요.” 윌킨스 부인이 말했다.
그러자 아버스낫 부인도 입을 닫았다. 그녀 자신도 가정에 의구심을 가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앉아 윌킨스 부인을 불편하게 바라보며, 상대를 분류하려고 점점 더 노력했다. 분류할 수만 있다면, 적절한 표제 아래에 넣을 수 있다면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오랫동안 휴가를 가지 못했고, 광고를 보고는 몽상에 빠져버리고 말았으며, 윌킨스 부인의 흥분이 옮은 데다가, 그 충동적이고 괴상한 이야기며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잠이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분명 윌킨스 부인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스낫 부인은 정신나간 사람을 매일 만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자신의 평정심을 해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을 기우뚱하게, 넘어지게 만들고, 하느님, 남편, 가정, 의무를 가리키는 나침반에서 멀어지게 하고(윌킨스 부인은 윌킨스씨를 데려올 생각 같은 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한 번 쯤 행복을 누려서 나쁠 게 없을 것처럼 생각하게 했다. 당연히 나쁠 수 밖에, 분명 나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스낫 부인도 우정은행에 조금씩 모은 비상금이 있었지만, 그 돈을 인출해 자신을 위해 쓸 정도로 의무를 방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한 번도 그런 행동은 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불우이웃을, 불행과 질병을 아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탈리아 여행은 매우 즐거울 것이 분명했지만, 다른 즐거운 일도 많았다. 즐거운 일을 견딜 자제력이 없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아버스낫 부인에게 나침반의 방위처럼 굳건한 것이 인생의 네 가지 요소, 즉 하느님, 남편, 가정, 의무였다. 그녀는 오랜 불행 끝에 이 사실을 깨달았고 이것들을 의지했다. 그리고 이 단순하고 익숙한 것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부인을 두렵게 했다. 그 때문에 윌킨스 부인을 어서 분류하고, 자신의 마음도 안정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곳에 앉아 윌킨스 부인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자신도 점점 전염되어가는 흥분을 느끼자, 아버스낫 부인은 임시방편을 취했다. 교회 모임에서 목사가 자주 말하는 것처럼, 신경 과민으로 상대를 분류한 것이었다. 어쩌면 히스테리로 바로 분류해버려야 할지도 몰랐다. 히스테리는 광기로 가기 전의 대기실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버스낫 부인은 최종적인 분류에 있어 신중했다. 사람을 잘못 분류해 실망에 빠져버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잘못이 불러오는 실의, 후회가 얼마나 뼈저린지 알고 있었다.
신경 과민. 아마 윌킨스 부인은 정기적으로 봉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초점을 돌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돌풍에, 충동에 휘말린 것처럼 어쩔 줄 모르고 있지 않은가. 신경 과민이야말로 부인에게 알맞은 범주였다. 아니면 도움 없이는 곧 신경 과민을 얻고 말 것이다. 가엾게 생각하는 아버스낫 부인에게, 동정심과 함께 평정심이 돌아왔다. 그녀의 눈에는 윌킨스 부인의 작고 흥분으로 가득하며 숫기 없는 얼굴과 가냘픈 어깨, 그리고 행복을 찾는 어린아이같은 갈망으로 가득한 눈이 들어왔다. 그런 것은, 그런 덧없는 것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버스낫 부인은 남편, 프레드릭과의 오랜 결혼 생활을 통해(부인은 스무 살 때 결혼했었고 아직 서른세 살이 채 되지 않았다)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을 배웠다. 그녀가 알게 된 것은, 행복은 다른 사람을 위해 매일, 매 시간을 보낼 때에만, 하느님의 곁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망과 낙심은 이미 여러 번 경험했던 것이다.
프레드릭은 아내를 하느님 곁으로 보내는 종류의 남편이었다. 남편에게서 하느님 곁으로 가는 과정은 짧고 고통스러웠다. 사실 돌아보았을 때 짧았다는 것이지 결혼한 첫 해 전체가 걸리는 일이었고, 매 순간이 투쟁이었다. 그리고 매 순간이 심장에서 새어나온 피로 얼룩졌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지난 일이었고 평화를 찾은 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프레드릭은 열렬히 사랑하는 신랑에서, 숭배받는 젊은 남편에서, 오직 하느님에만 다음가는 의무이자 인내가 되었다. 바로 그런 무감한 것이 프레드릭이었다. 오랜 시간 아버스낫 부인은 행복을 잊음으로써만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 다시 원하고 갈망하게 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했다.
“우선 친구가 되면 정말 좋겠어요,” 아버스낫 부인이 진심으로 말했다. “저희 집에 한 번 오실래요, 아니면 제가 댁으로 갈까요? 언제든 수다 떨고 싶으시면 말이에요. 주소 알려드릴게요.” 부인이 핸드백을 뒤적였다. “이렇게 하면 잊을 일이 없겠죠,”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윌킨스 부인은 명함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 이상하죠,” 상대의 말을 듣지도 못한 듯 윌킨스 부인이 말했다. “4월에 이 성에 우리가, 우리 둘 다 있는 걸 본 느낌이 들어요.”
아버스낫 부인에게 불안감이 다시 엄습했다. “봤다?” 반짝이는 회색 눈의 계시적인 응시 아래에서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하며 부인은 말했다. “보셨다구요?”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본 적 없으세요?” 윌킨스 부인이 물었다.
“전 없어요,” 아버스낫 부인이 답했다.
아버스낫 부인은 미소를 지으려고 애썼다. 불우이웃들의 왜곡되고 불완전한 견해를 들을 때 짓느라 익숙해진 동정어리고 현명하며 인내심이 깃든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얼굴이 떨릴 뿐이었다.
“당연하죠,” 마치 목사와 저축은행이 엿들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부인이 말했다. “얼마나 아름다울지, 세상 모르게 아름다울 거예요.”
“설령 잘못된 일이라고 해도,” 윌킨스 부인이 말했다. “고작 한 달이잖아요.”
“그게,”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관점인지 분명히 하려 아버스낫 부인이 입을 열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윌킨스 부인이 가로막았다.
“어쨌든,” 말을 끊으며 윌킨스 부인이 말했다. “비참해질 때까지 착하게만 살라는 건 잘못된 거예요. 부인도 오랫동안 착하게 사셨죠, 무척 불행해 보이시는 걸 보면 알겠어요.” 아버스낫 부인이 항의하려고 입을 열었다. “전, 저는 의무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했어요, 소녀적부터 말이에요. 아무도 조금도 사랑해주지 않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정말 다른 게, 다른 게 필요해요,”
울려는 것일까? 아버스낫 부인은 매우 불편한 동시에 동정심이 들었다. 그녀는 윌킨스 부인이 울지 않았으면 했다. 여기서, 모르는 사람들이 오가는 방에서는 아니었으면 했다.
윌킨스 부인은 흥분에 휩싸여 주머니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손수건을 잡아당기다가, 기어코 꺼내 코를 풀고는 눈을 두어 번 빠르게 깜박거렸다. 그녀는 반쯤은 겁먹고 반은 부끄러운 듯 사과하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말을” 부끄러움에 가득 찬 윌킨스 부인이 입을 단정히 하려 애쓰며 속삭였다. “누구한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 아세요? 저도 참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광고 때문이겠죠.” 아버스낫 부인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윌킨스 부인이 눈을 슬쩍 문지르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불행해서겠죠.” 코를 살짝 풀며 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