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그리고 그 너머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해·달·날·시에 따른 네 개의 기둥과 여덟 개의 글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주팔자를 풀어보면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운수를 알 수 있다고 하지요. 막연히 “포켓몬스터”의 타입(불꽃, 물, 풀, 전기 등)이나 MBTI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빅 데이터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불가피한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을까요. 인간을 포함해 모든 것을 초월한 어떤 존재 혹은 규칙이 있어서, 태어나면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삶이나 처지가 이미 결정되는 걸까요.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문득,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무한궤도에 갇혀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1977년 만화 『우주해적 코브라(コブラ)』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밈. 원본 대사는 다음과 같다. “앞으로 2시간 후면 날이 밝는다.” “날이 밝으면 어떻게 되지?” “모르는가. 해가 뜨지.”

일감을 처리하고 한숨 돌리려고 하면 다음 일감이―기획안, 교정지, 책, 도서 목록, 기획안, 교정지……의 얼굴로―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은 무례하게도, 기다리지 않기도 하고요. 말도 안 되는 일이나 대가를 요구받을 때면 ‘이 길로 들어섰으니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말이 그 뒤에 전제처럼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꽉 막힌 이 운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이탈하려는 사람에게 ‘지팔지꼰’(지 팔자 지가 꼰다)이라는 말을 쉽게 하고 듣기도 합니다.

이번 호의 주제는 ‘∞’입니다. 무(無)를 나타내는 아라비아 숫자 0의 중간 부분을 한 번 비튼 후에 90도로 돌린 형태인데, 입구도 출구도 없이 꽉 닫힌 것에서 팔자가 떠오르기도 해서 8호의 주제로 잡았습니다. 이 기호 ∞는 쓰러진 팔 자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무한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모양을 끊임없이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그러면서 어떤 무한의 세계로 나아가는지를 담았습니다.

0과 1의 세계에서 처음 선보이는 『편않』을 부디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