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을 둘러싼 입장들

지다율

서 있는 자세를 바라보며
지다율 편않 펺집자

어떻게 서 있는지 궁금했다. ‘비평의 위기’라는 풍문 속에서, 잘들 사시는지 좀 보고 싶었다. 대개는 ‘비평’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을 테지만, 그래서 그게 위기이든 말든 상관도 없을 테지만, 어쩐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라는 시답잖은 단서를 달고), 비평은 ‘정확함을 향한 부정확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몸부림’이 위기라잖은가. 지금, 그 ‘몸부림’이 비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혐의를 받는 동시에 무쓸모하다는 이유로 폐기를 강요받고 있다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비평’을 둘러싼 이들의 자세가 궁금할 수밖에.

최근에 나타난 매체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 ‘위기’(라는 것이 있다면)에 대한 입장이, 그들의 출사표에는 분명 담겨 있을 것 같았다. 근 1년 사이 우리 앞에 당도한 이들 중에선 비평 무크지 「크릿터」와 장르문학 비평전문팀 텍스트릿, 그리고 일반 독자 리뷰 매거진 「오글리」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각각이 어떤 상징적인 지점들에 자리하여 비평에 대한 스펙트럼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여 서효인 「크릿터」 편집자, 이융희 텍스트릿 팀장, 김의환 「오글리」 제작자에게 대담을 요청드렸고, 세 분 모두 흔쾌히 허락하셨다. 이융희 팀장 대신 대담에 참여한 이지용 평론가까지, 이 자리를 빌려 모두 감사드린다.

대담은 5월 19일 비 오는 일요일 오후,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 있는 독립서점 책방연희에서 열렸다. 참가 신청자는 모두 10명. 목표 수치를 20명으로 잡았으니 절반을 가까스로 채웠다. 기획의 실패인가, 아니면 홍보의 문제인가. 나는 자괴감에 사로잡혔으나, 어렵게 오신 참석자들 한 분 한 분에 대한 감사함은 감히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들께서 이 대담으로 인해 기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나아가 새로운 물음을 품어 서 있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다.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당신들의 서 있는 자세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기, 세 편의 발제문을 그저 나열하여 싣는다.

비평의 책무를 위하여―「크릿터」의 창간의 지속성
서효인 「크릿터」 편집자

2015년 가을 「세계의 문학」이 157호로 종간되었다. 2016년 8월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가 창간되었다. 2019년 1월 비평 무크지 「크릿터」가 창간되었다. 시간순으로 나열된 세 사건은 한 출판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시에 이른바 문단이라 이름 붙여진 문학 출판계 전반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2014년, 유명 작가의 표절 논란 이후, 문학 전반에 쏟아진 의심과 냉소의 눈초리는 비평이라는 장르에 특히 가혹했다. 표절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일차적 책임, 표절 논란이 일어난 작가를 오랜 기간 과대평가해 왔다는 의심, 지금 한국문학의 위기를 진화하기는커녕 불씨를 퍼트리며 방화를 일삼았다는 혐의.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위기는 흔했으나 비평의 위기는 사실상 처음 겪는 일이었다. 온실 속 비평에게 갑작스레 닥친 외부 환경의 변화였다. 비평은 독자-시민의 변화에 발을 맞추든지 혹은 그간의 문학을 수호했던 방식을 견지하든지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일부 변화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창비는 「문학3」을 창간하며 해당 지면에 발표된 시와 소설의 평을 전문 비평가가 아닌 독자에게 의뢰하는 고정 코너를 만들었다. 「문학동네」는 편집위원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다른 영역의 공존과 협업을 시도했다. 문학과지성사는 「문학과사회」 별권으로 「하이픈」을 함께 내며 비평의 영역이 확대되길 기대하는 눈치다. 여러 기획의 결실은 수년이 지난 후에야 볼 수 있을 것이지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비평은 다행히 현실에 대한 응전의 태세를 어느 정도 취하고 있었기에 이전보다는 신속한 반응 속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2016년 이후 양적‧질적인 성과를 동시에 보여 준 여성 작가와 여성서사** 개별 작품을 순서 없이 일별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 김혜진,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 강화길, 『괜찮은 사람』(문학동네, 2016); 강화길, 『다른 사람』(한겨레출판, 2017); 정세랑, 『피프티 피플』(창비, 2016);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창비, 2018);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 박민정, 『미스 플라이트』(민음사, 2018); 최은영,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 2018);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문학동네, 2016); 김금희, 『경애의 마음』(창비, 2018); 최은미, 『아홉번째 파도』(문학동네, 2017);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 2018);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문학동네, 2018); 한정현,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 2019); 김세희,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를 분석하고 논의하여 그 의미를 문학장과 독자에게 새로 입각시키는 것이 비평이 맞이한 현실의 미션이었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비평에서부터 제작된 논의가 독자에게 전파되는 게 아닌, 독자로부터 발생한 사건의 양태를 논의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이는 비평의 본래 책무가 아닐 수 없다.

「크릿터」는 그 책무가 명분이다. 「릿터」의 구조상 누락될 가능성이 큰 깊은 논의의 비평이 실릴 자리를 마련하여 비평에게 스스로의 소임에 최선의 모습으로 맞부딪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였다. 특집과 기획 코너는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60매에서 80매까지 청탁이 이루어졌으나 상회하는 분량에 대해서 편집자의 간섭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길, 그리하여 필요한 논의를 이끌어 내길 바랐다. 무엇보다 편집진은「크릿터」가 1년의 문학 출판을 점검하면서 같은 기간에 나온 좋은 문학, 괜찮은 책의 상세한 카탈로그가 되길 바랐다. 창간호에는 12권의 소설과 8권의 시집으로 하여 총 20권의 한국문학 단행본을 싣고자 하였으나 필자의 사정 등으로 19권을 소개할 수 있었다. 지금-여기의 세계를 그려 내고 독자의 감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책을 선정하여 믿을 만한 데이터베이스가 되고 싶었다. 리뷰의 범위를 넓히고 선정 기준의 지속성을 유지해야 하는 장단기 과제가 우리 앞에 남은 듯하다.

시장성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는 비평 무크지가 상업 출판사에서 기적처럼 출간되었지만 역시나 중쇄는 찍지 못했다고 한다. 신인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집의 초판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편집진은 이 숫자가 소설을 리드하는 파워 독자의 숫자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시작한 동심원이 최대한 멀리까지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또한 바깥의 파도가 동심원 한가운데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를 저어 볼 예정이다. 그런 의미로 나오는 호마다 중쇄는 없을 것이고 자본주의적으로 확정된 마이너스 상품이 분명하지만, 문학과 독자를 위한 무형의 투자처로서 「크릿터」가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1년에 한 번 내기로 한 것은 그 지속성을 위한 선택이었다. 사계절을 온전히 겪어 내야 다시 새로운 한 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전율에 대한 걱정이 일각에 있었지만, 조직 내에서의 지속가능성도 그만큼 중요한 변수였다. 1년을 정리한다는 차원에서의 상징성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비평가들의 마지막 수정 작업이 동시에 진행 중인 책이 있다. ‘민음의 비평’ 열 번째 책으로 나오는 『문학은 위험하다』가 그것이다. 소영현 외 12인의 여성 비평가의 평론을 모은 책으로 시리즈 최초로 단독 저자의 단행본이 아닌, 복수 저자의 평론 모음집이다. 2015년부터 이어진 페미니즘 무브먼트에 평론이 어떻게 응답하였고, 평론과 평론이 이어지며 만들어 낸 논의 지평과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문제제기와 반박의 짝패가 아닌, 논의를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형태의 최근 3~4년간의 비평적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음에 유의미한 책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크릿터」도 본격적으로 2호 준비를 해야 한다. 리뷰의 숫자를 늘리고 특집 코너를 보다 간결하되 깊이는 유지하게끔 변화를 주고 싶다.

“동일한 텍스트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것.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은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이고, 이것이야말로 비평의 책무일 것이다.” 위에 소개한 『문학은 위험하다』에 실린 장은정 평론가의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 책무를 돕고 싶다. 그 책무가 내게도 있다면, 피하지 않을 작정이다.

텍스트릿의 탄생과 진행
이융희 텍스트릿 팀장

텍스트릿(Textreet)은 2018년 1월 29일 결성되어 4월 29일 정식으로 출범한 장르 비평팀입니다. 단순히 비평을 한다는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나서서 장르와 관련된 비평들을 텍스트릿 홈페이지(http://textreet.net)에 업로드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영역은 장르문학, 장르영화, 장르만화, 장르게임 등 다양하며, 이론과 창작, 시장과 학술담론장의 이야기를 균형감 있게 아우르며 서로 다른 언어의 사용자를 매개하고 재매개하는 것에 목적을 둡니다.

텍스트릿의 특징은 단순히 비평을 하는 비평가들의 모임보다는 실제 오랫동안 장르문학을 창작한 현직 창작자들이 학술담론장에서 학문적 언어를 기반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나오는 글부터 과거의 오래된 글까지 ‘읽을 수 있음’을 선언하며 리터러시를 기반으로 개별 장르들의 이론을 점검하고, 현대에 맞는 이론을 수립하며, 이것을 비평에 적용함과 동시에 현대의 좋은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것까지를 진행합니다.

텍스트릿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대안인문학단체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서브컬쳐 대중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며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12월 29일, 웹소설에 대한 집담회를 최초로 열었는데 그곳에서 이융희, 김준현, 이지용 세 사람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웹소설과 장르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었고, 이융희, 김준현은 실제로 소설을 창작하는 창작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세 사람은 집담회에서 들은 의견들을 바탕으로 2018년 1월 ‘뉴미디어 비평스쿨’에서 장르문학 파트들을 발제하였고, 해당 스쿨을 들으러 온 사람들 중 로맨스 소설 작가이자 SF 연구자였던 손진원과 무협 연구자인 서원득, 그리고 로맨스 작가인 김휘빈이 모여서 여섯 명으로 발족하였습니다.

텍스트릿이라는 이름은 ‘텍스트’와 ‘스트릿’을 합친 것입니다. 이는 일본의 비평가 모리 요시타카의 『스트리트의 사상』(그린비, 2013)에서 따온 것으로, 점의 영역, 연구실이나 대학 등의 정적인 공간에서 텍스트의 비평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점과 점을 가로지르는 스트릿의 공간에서 직접 대화하고 활동하며 비평을 전개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텍스트릿이 보여 주는 매개와 재매개라는 과정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초기 텍스트릿의 행보는 각 장르별로 우리가 소비하는 장르가 과연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이론들이 좋긴 하지만 대부분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의 분석으로 마무리되어 현대의 장르를 이야기할 수 없고, 과거의 장르 분석 역시도 시장에서 이루어졌던 장르문학을 외면한 채 해외의 이론을 헐겁게 가져다 붙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최근의 논문에서도 잘못된 정보들이 많았고, 오로지 연구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인식론적인 연구들만 가득한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습니다.

마침 SF 연구자, 판타지 연구자, 매체 연구자, 로맨스 연구자, 무협 연구자 등이 모였으니 판타지, SF, 무협, 로맨스 네 가지의 장르 이론을 점검하고 최근의 좋은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지면을 찾았습니다. 먼저 연락이 온 곳이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이었습니다. 그 공간을 통해 8회에 걸쳐 칼럼을 연재하며 공식 지면에 ‘텍스트릿’이라는 이름이 나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웹소설이라는 매체성이 아니라 ‘로맨스’라는 장르에 집중해 2018년 8월 29일 ‘로맨스 집담회’를 열어 로맨스 작가와 팬,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담론을 정리하여 장르문학 관련 창작 라이브러리 카페인 ‘안전가옥’과 ‘로맨스가 필요해’라는 특강을 4회 진행하였습니다.

이후 2019년 1월에는 ‘뉴미디어 비평스쿨’ 3기가 열렸는데, 이때 텍스트릿이 전체 기획을 맡아 판타지, 무협, 추리, 로맨스, SF, 그리고 매체까지의 이론과 실제를 함께 파악할 수 있는 강연을 기획하였습니다. 텍스트릿의 목적이 ‘매개’라고 이야기했던 것만큼 단순히 이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판타지 작가 겸 편집자 이도경, 무협작가 진산, 로맨스 작가 박수정, SF 작가 dcdc, 추리 작가 정명섭을 섭외하여 이론과 창작의 경험을 균형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2019년의 텍스트릿 역시도 계속 행보를 이어갑니다. 2018년이 고전적이고 근대적인 장르의 이론을 점검하고 환상성, 낭만적 사랑, 포스트휴먼 담론 등의 이론과 장르를 연결 짓는 것이었다면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과 2019년 진행하고자 하는 것은 해시태그(#)로 파편화된 장르와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넷 문화인 해시태그를 통해 사회를 읽고, 그러한 해시태그를 하나의 ‘장르’로서 소비하는 웹소설 시장의 현상, 그리고 웹소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웹소설을 접할 수 있도록 큐레이팅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해당 작업 역시도 ‘안전가옥’과 함께 ‘웹소설 함께 읽는 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강연을 진행 중이며, 이렇게 강연 작업 이외에도 대중서사학회에 이지용, 김준현 등의 멤버들이 들어가 학술이사로 참여하면서 연구담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텍스트릿은 웹소설 표준계약서 작업을 위해서 한국 저작권협회와 함께 업무를 진행하고도 있으며, 그 외에도 각자의 분야에서 장르문학과 관련된 담론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텍스트릿의 최종 목표는 장르문학과 문학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장르적 요소를 직시하며 한국에서 창작된 작품들을 분석하고 비평할 수 있는 이론들을 만들며 장르문학 시장 자체의 담론을 활발하게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리뷰, 일상을 나의 언어로 사랑하는 일
김의환 「오글리」 제작자

별로 내키는 방식은 아니지만, 일단 손사래를 치며 운을 떼야겠다. 지난 2월에 나온 「o’glee」(이하 「오글리」) 창간호를 「크릿터」, 텍스트릿과 나란히 두고 ‘비평’을 논하기에는 규모와 경력, 기간의 차이가 크기에 민망할 따름이다. 선부터 긋자. 리뷰 매거진 「오글리」는 비평지가 아니다. 또한 두 분 발제자께서는 작가이자 편집자, 연구자, 평론가이나, 「오글리」를 기획한 ‘하비투스’(habitus)는 (팀명만 보면 무슨 사회학 스터디그룹 같지만) 문학장 내의 창작자 집단도, 학술장 내의 연구회도 아니며, 국문학 전공자도 출판업 종사자도 아니다.

하비투스는 ‘수평적이고 지속가능한 독서 문화를 디자인한다’는 포부와 함께 창립한 스타트업이다. 대형 서점, 대형 출판사, 유명 작가, 베스트셀러를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도서 시장에서 미처 발견되지 않은 다양한 책이 발굴되고 소개되는 커뮤니티를 꿈꾼다. 책을 즐겨 읽고, 형편에 비해 많이 사 모으며, 서점과 극장에 자주 놀러 가고, 종종 글을 쓰는, 점점 더 좋은 글을 읽고 쓰며 살아가고픈 세 사람이 모여 책, 음악, 영화를 아우르는 ‘리뷰’ 콘텐츠를 만든다. 굳이 구분하자면 우리는 생산자보다는 수용자, 작가보다는 독자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따라서 비평의 본질이나 가치를 논하기보다는, 우리의 위치와 입장에서 보이는 것과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말해 보려 한다.

그런 비평 말고,

나는 ‘비평의 위기’라는 말에 시큰둥하다. 대학원에서 배운 문화연구가 대중문화 분석, 문화 비평이기도 하니 아예 관심이 없다고 할 순 없다만, 비평이 제 기능을 못해서 문화예술계 전반이 침체되고 있다거나 비평이 활발하게 생산되지 않으므로 독자들이 책을 외면한다는 식으로 걱정하지 않는다. 일단 비평이 내 문화적 실천과 취향 형성에 딱히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평이 어떻게 된다 한들 도서출판 시장의 침체나 독서문화의 쇠퇴의 속도와 방향을 바꿀 만한 힘은 없다고 본다. 내가 느끼기에 비평은 작가와 평론가, 연구자, 출판업계 종사자들의 내부 세계에서만 작동하는 담론에 가깝다. 그건 그분들이 하실 일이지 내가 나서서 각성을 촉구하거나 따질 일도 아니다. 대다수 독자에게 비평이 그렇게 중요했던가. 비평에 대한 선입견이니 좀 읽어 보고 말하라고? 충분히 읽어 봤고, 그 선입견 잘 깨지지 않더라. 문학상 수상집이나 장편소설의 맨 뒤에 달린 작품 해설을 읽으니 작품이 새롭게 보인다거나, 몰랐던 작품이 당장 읽고 싶어진 적이 얼마나 있던가.

나는 매우 좁은 의미의, ‘그들만의 성찬’으로서의 비평에 대한 거부감을 말하고 있다. 읽는 이를 고려하지 않는 문체, 작품의 매력을 살릴 줄 모르는 분석, 주어 없는 문장,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 지적으로 방만한 태도, 주례사 비평 등등. 우리는 (‘대안적’이든 ‘새로운’이든) 비평을 표방한 바 없기에 비평을 문제시한 적도 없는 줄 알았는데,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 꽤 오랫동안 갈증과 피로를 느껴온 것 같다. 「오글리」를 다시 펴서 여기저기 내가 남겨둔 비평에 관한 언급을 찾아보다가 뜨끔했다. “응, 그거 말고” 할 때만 전문가와 비평을 소환했더라.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가 오가는, 독자 중심의 새로운 독서 문화를 상상해 보면 어떨까?”

“정말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건, 소수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추천사보다도 가까운 이웃이 직접 들려주는 책 후기가 아닐까요?”

“전문적인 글쟁이들의 날카로운 비평보다는 보통 사람들, 일반 독자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책 리뷰를 모으자는 것, 이를 통해 독자들의 연결성과 책의 발견성이 극대화되는 수평적인 독서 문화를 디자인하자는 것이 책 리뷰 매거진「오글리」를 기획하게 된 배경입니다.”

― 「오글리」 Vol.1, “프롤로그”, 5~6쪽

“텍스트 자체에 대한 냉철하고 비판적인 평가는 전문 서평가나 평론가에게 맡기고요.”

― 앞의 책, “하비투스의 셀프 인터뷰”, 247쪽

말하고 쓰는 독자들의 문화

사실 우리는 대항 혹은 대안적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에 대한 필요성에서 ‘모두의 리뷰’를 떠올렸다. 한국 사회는 저마다의 고유한 취향과 감상에 대해 깊이 있게 나누고 풍성하게 토론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타인의 것을 욕망하거나, 모방하거나, 덮어놓고 후지다며 깐다. 자신만의 감상을 조금만 길고 진지하게 말하면 ‘진지충’이니 오글거린다느니 하며 손쉽게 입을 막아 버린다. 또한 직접 책을 구매하고 읽는 주체인 독자들이 단순 소비자 집단 혹은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되기도 한다. 공감하며 읽을 만한 책 후기를 접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는 일반적인, 보통의 독자, 수용자가 지닌 능동성과 주체성을 믿는다. 만약 책을 가운데 두고, 책을 경유해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면, 책과 글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맘껏 말하고 듣고 기록하고 나눌 수 있는 수평적인 문화가 정착된다면 독서 생태계의 양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독자 개개인의 일상적이고 사적이며 사소한 실천과 참여에서 시작하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책을 물신화하거나 읽지 않는 사람을 꾸짖기보단, 책을 쿠션이자 촉매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면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나 풍성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에 묻혀 있던 다양한 책들이 발굴되고 소개될 수 있진 않을까. 해외의 ‘LibraryThing’, ‘Goodreads’ 같은 독자 커뮤니티가 우리에게도 있다면.

이런저런 의문과 바람이 모이면서, 책과 글을 비롯해 동시대 대중문화를 향유하며 작게나마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하여 함께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일단 리뷰를 쓰고 읽고 나누는 주체를 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으로 잡았다. 장르나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이들의 리뷰가 축적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직접 보고 만지며 느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열네 편의 책 리뷰를 비롯해 일러스트, 만화, 에세이, 사진 등을 담은 책 리뷰 매거진 「오글리」 창간호를 냈다.

“리뷰는 책에 대한 감상과 평가, 독자에 의한 독자의 이야기를 뜻해요.”

“저희가 제안하는 방법은 바로 ‘리뷰’예요. 그러니까,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이자 경험담이죠. 낯선 이의 기록인 책에 나만의 일상이나 생각이 얽힐 때, 비로소 특별한 책이 되잖아요. 그 특별한 의미를 공유할 때, 그 책에 대해 한 걸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자신만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긴 진솔하고 독창적인 글이 좋은 리뷰가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어요.”

― 앞의 책, “하비투스의 셀프 인터뷰”, 245~249쪽

늘어놓은 비전에 비해 내놓은 결과물이 자그마해 좀 민망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리뷰가 전혀 새롭고 대안적인 글이라는 점이 아니라, 누구든 일상적으로 편하고 진솔하게 쓰고 읽고 나누는 소통 방식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리뷰=비평’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비평은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기보단, 가치를 발견해 서로 나누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 뒷면에는 “어쩌면 아직도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 당신께”, “리뷰, 책을 나의 언어로 사랑하는 일”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자신의 언어로 다듬는 일에 애정을 갖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말에도 귀 기울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활밀착형, 일상적 글쓰기, 모두의, 매일의 문화적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서평, 독후감, 비평, 평론 대신 리뷰(review)라는, 모호하면서 포괄적이고 말랑말랑한 외래어를 택했다. 리뷰의 형태가 꼭 글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진과 영상, 음성 등 여러 매체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앞으로의 비평은 책에 대해 친절하고 꼼꼼하게 이야기하는 새로운 매체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더 나은 물음표를 향해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우리의 이런 문제의식과 비전에 반응해 주셨다. 이 책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아직 우리가 즐겁고 역동적인 독서·글쓰기 문화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 여전히 책과 글과 사유와 사람의 가치를 믿는 이웃들이 많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만남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먼저, 「오글리」는 어떤 독자든 즐길 수 있는 책은 아닐 수 있다. 책도 읽지 않는데 책 리뷰를 읽겠는가? (반대로 책 리뷰가 부족하니 책을 읽지 않는 걸까?) 누구에게나 쉽고 편히 읽히는 글을 바랐지만, 그게 일반 독자들이 쓴 글일지라도 오래 공들여 길게 쓴 원고이므로 술술 읽히지 않을 터이다. 그리고 ‘비전문가’, ‘일반 독자’의 글이라는 점이 늘 강점으로 작용하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냥 좋은 글에 반응하는 것 같다. 우리가 추구한 진솔함과 일상성이 꼭 좋은 리뷰가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닐 때도 있다. 꼭 책에 대한 이야기로 국한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이런저런 고민을 일부 덜고 일부는 여전히 안은 채, 4월부터 책뿐 아니라 음악, 영화 리뷰까지 다루는 메일링 서비스 ‘오글리의 심야편지’를 진행하고 있다.

읽고 쓰고 해석하며 표현하는 누구든 리뷰어(비평가)다. 책이든 영화든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텍스트를 통해 일상을 돌아보고, 어떤 점이 왜 탁월한지, 아쉬운지, 즐거운지 나름대로 맛보면 좋겠다. 또한 리뷰를 통해 타인을 알아가고, 가려지고 잊힌 주체들이 나란히 드러나 이어지기를.

비평은 아는 것을 자족하는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일이다. 제때, 제자리에 도착하지 못한 질문을 재촉하고, 질문받았으나 모두가 외면하는 문제를 누구보다 신실하게 고민하는 이의 자리는 다름 아닌 아마추어의 영토 안에 있다. 그렇기에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 임태훈, 『기계비평들』(워크룸프레스, 2019), “서문”,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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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별 작품을 순서 없이 일별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 김혜진,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 강화길, 『괜찮은 사람』(문학동네, 2016); 강화길, 『다른 사람』(한겨레출판, 2017); 정세랑, 『피프티 피플』(창비, 2016);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창비, 2018);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 박민정, 『미스 플라이트』(민음사, 2018); 최은영,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 2018);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문학동네, 2016); 김금희, 『경애의 마음』(창비, 2018); 최은미, 『아홉번째 파도』(문학동네, 2017);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 2018); 구병모, 『단 하나의 문장』(문학동네, 2018); 한정현,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 2019); 김세희, 『가만한 나날』(민음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