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삐약북스 UE 참가기

삐약삐약북스 불친 edited by 지다율

전북 군산에 위치한 삐약삐약북스는 2019년 10월 10일 사업자등록을 완료했다.
2명의 작가가 공동대표로 운영 중이며, 한 명의 아이를 함께 키우고 있다.
공식적인 첫 출판서적은 불키드 작가의 『정리의 밤』으로 30대 여성의 경력단절과 소수자를 향한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이 마음에 들었고 왠지 이 작품을 발표하면 잘될 것 같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야심 차게 넣었던 지원사업에서 대기 2번으로 탈락했고, 텀블벅으로는 인쇄비와 배송비 정도를 후원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책이 나왔다는 기쁨으로 아이를 데리고 전국의 독립서점들을 떠돌아다녔다.
책 입고를 거절당할 때마다 스스로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그런 의미가 절대 아님을 지금은 알고 있다).
입고문의를 넣은 약 10% 정도의 서점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 와중에 UE11가 열렸고 ‘스켈레톤북스’라는 이름으로 참가하셨던 최준혁 작가님과 란탄 작가님의 배려로 부스 한켠에 앉아 보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과 감동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매년 UE를 신청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날 나눔 받았던 UE11 목걸이를 사무실 한켠에 걸어 두고 바라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새 여러 계절이 지났고 그간 삐약삐약북스는 서울을 제외한 국내 9개의 지역을 9명의 만화작가가 흑백 만화로 조망하는 〈지역의 사생활 99〉 프로젝트를 매년 진행해 왔다.
2020년 UE12에 고형주, 근하, 래현, 북구플랜빵, 불친, 불키드, 산호, 정원, 작은비버 작가님들과 함께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1로 참가했고 2021년 UE100에는 깊은 굴쥐, 선우 훈, 약국, 이수희, 이요, 쩡찌, 최준혁, 코익, 하양지, 황미몽 작가님들과 함께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2로 참가팀 100선에 꼽힐 수 있었다.

올해는 3년 만에 오프라인 UE 행사가 열렸다. 삐약삐약북스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참가하지만, 오프라인 행사 참가부스 운영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그새 출간한 서적도 28권이 되었고 함께 했던 작가님들을 모시기에도 넉넉한 공간이 필요했기에 2개 부스를 신청하기로 금방 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결정들은 모두 어려웠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99 라임에 맞춰 매년 9월 9일 텀블벅을 열고 있다. 11월 말쯤에 UE가 열리길 간절히 바랐지만, 올해는 10월 말에 열렸다.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3은 작년에 비해 조금 더 일찍 작가님들에게 섭외 요청을 드리고 진행했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참여하시는 작가님들의 스케줄이 바빠지고 우리도 일이 쌓여 전처럼 책을 재빠르게 만드는 일이 어려웠다.
시즌 4의 경우는 더 넉넉한 일정으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UE 행사 전에 책을 발송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텀블벅 서적을 UE에서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해볼까 했지만 혹시라도 있을 실수를 대처하기에는 오프라인 행사 경험이 적고 서적 종수가 많은 반면 부스 상주 인원은 평균 1명, 작가와의 만남도 진행해야 하기에 무리라고 판단하여 배송으로만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텀블벅에도 UE에서 별개로 책을 판다고 공지는 했지만, 그럼에도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스러웠고(유리심장), 그 외에도 여러 고민거리가 많았다.
부스 뒷벽 전시를 시즌 3의 10개 작품 캐릭터만으로 할지 vs 전 시즌 28개 캐릭터로 할지, 예상 판매수량을 보수적으로 잡아서 책을 들고 갈지 vs 많이 들고 갈지, UE 참여 3일간 아이를 서울로 데려와 함께 있을 것인지 vs 군산의 가족에게 온전히 맡길 것인지…….

그 와중에 자동차 사고가 났다. 고속도로 3중 추돌사고였다. 경상이었지만 일정을 지키려면 퇴원을 해야 했다.
맨 뒤에 와서 박은 1톤 트럭이 더 큰 트럭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쁘게 스스로를 몰아치는 삶은 좋은 것인가, 참가 포기를 망설이던 중 번뜩 UE11의 기억을 떠올렸다.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겠다고 내뱉은 말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고민들을 뒤로하고 2022년 UE14에서 우리는 101진수, 깊은굴쥐, 권용득, 다드래기, 란탄, 메, 센개, 송넌, 오묘, 최지수, OOO 작가님과 함께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3으로 참가했다.
작가와의 만남 참여 작가로서 101진수, 고형주, 권용득, 메, 선우 훈, 송넌, 정원, 쩡찌, 최준혁, 최지수, 코익, OOO 작가님이 독자를 직접 만났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독자와 너무나 멋지고 다양한 창작자 및 관계자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책도 많이 팔 수 있었다.
예상 판매서적이 떨어져 행사 2일 차 밤, 왕복 5시간 거리의 군산으로 다시 책을 가지러 다녀와야 했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격언이 생겼다. ‘다시는 UE를 무시하지 말자.’)

인파가 많아 계좌 송금이 잘 되지 않을 때 우연한 기회로 발급받았던 카드기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역할을 해냈다.
결제의 80%는 카드기가 진행을 해 주었고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 주어서 행사 후반이 갈수록 마치 그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본 행사 때 정장으로 갈아입으려고 3일간의 패션룩도 정해서 가지고 왔는데 그 옷을 찾으러 차에 갈 시간도 없었다.
행사 전 가벼운 마음으로 입고 갔던 미니언즈 후드티로 2일을 보냈다. 누가 보면 미니언즈 광팬인 줄 알았을 것 같지만……. (또르륵)
그저 못 갈아입은 것뿐이랍니다. 사실 멋진 정장을 입고 당신을 만나고 싶었답니다.
한 분 한 분 붙잡고 해명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원치 않은 미니언즈 광팬이 되어 있었다.
미니 전시공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신 작가님께 부탁드려서 몇 가지 책과 스티커, 명함들이 놓인 전시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우리가 해내지 못했던 부분들이 그저 아쉽고 혹시나 오해를 사지 않았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 부스를 둘러싸고 눈앞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광경은 처음이었고 우리의 대처는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참여 작가와의 만남 또한 첫 시도여서 많이 미흡했다. 개선할 수 있도록 2023년에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며 배워 보려고 한다.
또한 독자분들께서 지역의 이야기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셨고 직접 언급하셨던 많은 지역이 있었다.
이를 반영하여 가능하면 2024년에는 〈지역의 사생활 99〉 시즌 4로 돌아오고 싶다.

우리는 이번 UE를 통해 포기할 뻔했던 프로젝트들을 준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참여 작가님들에게도 많은 감사를 드리며, 조만간 새로운 모습으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UE14의 두 번째 날 저녁, 10·29 참사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2022년 12월
삐약삐약북스 공동대표 불친

불친 전북 군산에서 삐약삐약북스를 운영하며 〈지역의 사생활 99〉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