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십을 고민하며

권오준 edited by 지다율

출판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 간다. 수십 명의 저자를 만났고, 또 그만큼의 출판인들과 연을 맺으며 지금껏 책을 펴내고 있다. 처음 면접을 봤던 출판사가 기억난다. 파주에 으리으리한 사옥을 짓고, 고전문학선집을 내던 출판사. 내게 내밀었던 연봉표에는 1년 차의 월급이 89만 원 돈이었다. 그리고 10년 이상 이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해봐야 알겠다는 대답을 했었다. 합격했다는 연락은 바라지도, 오지도 않았다.

그 후 한동안 ‘선인장’이라는 출판모임을 기웃했고, 알바를 하며 1년여를 버티다가 어렵게 출판사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첫 월급은 116만 원. 그 돈으로 어머니께 옷을 사드리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그 얄팍한 행복이 문제였다. 해봐야 알겠다던 출판 일을 지금까지 하게 만든 원흉.

책을 팔다

세상에 직업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봉사하는 일과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일. 봉사하는 일이란, 소방관, 선생님, 목사, 신부, 경찰, 군인, 공무원처럼, 이윤 추구보다 선한 목적이 우선이 되는 일을 말한다. 반면에 시장의 평가를 받는 일은 말 그대로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일이다. 출판은 어떨까?

첫 직장에서 나는 12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도 행복했다. 당시에는 책을 내는 일이 봉사에 가깝다고 여겼다. 팔릴 리 없는 인문서와 소설을 펴내면서도 누군가는 좋은 책을 알아볼 거라 착각했다. 월급이 밀리고, 유일한 동료 영업자가 퇴사하기 전까지는…. 혼자 사무실을 지키다 책이 나오면 서점을 돌기 시작했다. 내가 편집한 책을 들고 처음 인터넷 서점을 찾아갔을 때, 담당MD가 지은 쌀쌀한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돈이 되지 않는 책은 서점에 깔리기 전부터 외면 받고 있었다.

그때서야 이 일이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은 출판사를 지키고 살리는 무기이자 쌀이었다. 책은 상품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던 한 출판강사님의 말에 살짝 반감이 들던 나였다. 신성했던 책이 상품으로 치환되는 순간 나를 형성한 특별한 독서 경험이 싸구려로 여겨지는 것 같아 그래서였을까, 책은 국민의 지적 수준을 높여 주는 일종의 공공재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책을 상품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신출내기 편집자가 매출이니, 재고니, 수금이니 하는 말에 어리둥절하다면 내가 했던 고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책을 돈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그 부분에서 자기 나름의 에디터십이 시작된다고 본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때. 그 고민에 따라 인문교양서나 사회과학서, 시집, 세계명작을 읽던 사람이 평생 읽어 보지 않았던 자기계발서나, 부동산투자서를 만드는 출판사로 이직하기도 하는 것이다. 팔리는 책을 만들고, 돈도 더 벌고 싶었던 나처럼 말이다. 물론 다른 에디터의 길도 있을 테다.

책은 사람을 닮는다

첫 출판사를 나와 옮긴 곳은, 자기계발과 경제경영 분야에서 매년 베스트셀러를 내던 곳이었다. 팔리는 책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어떻게 발굴하고, 끌리는 제목을 짓는 데는 어떤 비법이 있는지를 곁에서 보고 나면 나도 그런 책을 만들 수 있을 듯싶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시기였다. 다달이 어떤 책을 시장에서 밀지 결정했고, 독자를 혹하게 할 섹시한 제목을 찾는 회의가 답을 찾을 때까지 이어졌다. 표지 수정도 빈번했다. 선배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매력적으로 꾸밀지 고민하는 동안, 사장의 차는 더 좋은 외제차로 바뀌었고, 몇 군데 땅을 사들였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회사를 키워낸 주역들은 이미 회사를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년 사이 편집장이 나갔고, 갓 들어온 팀장은 나에게 권고사직을 권했다.

당시 동료 누군가에게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뭐든 다 할 거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섹시한 제목을 단 책이 신문 서평에 크게 실리고, 책 광고가 나가면 주문량이 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 책이 아니라면 낼 이유가 없다는 투였다. 국내서든 외서든, 본래의 원고를 살리는 것보다 어떻게든 독자의 눈에 들게 뜯어고쳤다. 분량이 많으면 재미가 덜한 챕터는 삭제했고, 어떤 부분은 직접 가필을 하면서 책은 점차 상품의 꼴을 갖춰 갔다. 원고가 담당편집자의 손에 의해 완전히 다른 색으로 탈바꿈되고 본래 그런 책이었다는 듯 독자에게 읽히는 게 편집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새로 온 팀장이 골칫거리였던 설득에 관한 외서 원고를 잠재력이라는 키워드로 바꿔 냈을 때는 경탄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그것이 독자를 속이는 짓이라는 것과 그 팀장 역시 거짓말에 능숙한 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팀장이 나를 왜 내보내려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먼저 떠난 편집장에게 대들던 내가 잠재적으로 불편했든지, 일을 못하니 불필요하다고 여겼든지, 아무튼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던 게 분명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로, 사장님은 권고사직이 아니라 내가 그만두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인간의 첫 번째 거짓말. 회사를 나오기 전 내가 기획하고 계약까지 한 국내서가 두 권 있었다. 나오면서 책을 꼭 내달라고 부탁했고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인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두 권 모두 계약 파기되었고 저자의 항의를 들어 줘야 했다. 그 인간의 두 번째 거짓말이었다.

책은 만드는 사람을 닮는다. 지은이와 편집자, 출판사 사장의 모습까지 책에 녹아든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을 만든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할 때가 있다. 특히 지은이보다 편집자에 더 관심이 쏠리곤 했는데, 과거에는 편집자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새로운 주제라면 저자를 찾아내는 능력이, 대중성이 있는 책이라면 그런 감각이, 시기적으로 잘 맞는다면 안목이, 문장이 매끄럽다면 좋은 번역가를 아는 인맥과 교정능력이 대단해 보였고 부러웠다. 하지만 이는 편집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는 척도가 되지 않는다. 온전히 책 한 권을 자신의 감각대로 만들 수 있는 여건의 편집자는 드물뿐더러, 성과와 사람 됨됨이는 별개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외려 책의 성격에 잘 맞는 사람이 그 책을 더 잘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돈 버는 데 관심이 많다면 재테크 책을 잘 만들 것이다. 만약 사람 됨됨이가 못 따라간다면 회사에서 손해 볼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높은 연봉만을 좇아 금세 자리를 바꿀 테지만.

에디터십을 말한다면서 책은 상품이라고 했다가, 갑자기 사람 됨됨이를 꺼내는 게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고민은 늘 충족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발생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어렵고 힘든 일이듯, 출판 일도 다를 바가 없다. 더군다나 에디터가 하는 일이란 사람으로부터 좋은 글과 디자인을 얻어 내고, 독자를 잘 설득시키는 일이다. 이 과정은 상호 간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말보다 글이 신뢰되고, 책으로 펴낸 글은 신문 기사보다 더 신뢰받기 마련이다. 에디터도 그 단단한 물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고, 편집하는 책이 틀린 구석이 없게, 허튼 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정석이다. 만약 이 신뢰가 무너진다면 독자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리고 자본에 물들수록 그런 신뢰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고, 시장은 에디터십을 고민하는 편집자 대신 ‘꾼’들이 득세하기 좋은 판이 된다.

사장의 지시를 받는 에디터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장의 오너십 문제를 따로 제기해야겠지만, 동시에 에디터의 오너십도 물을 수 있다.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사장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에디터의 자질이다. 비록 자신의 생각과 회사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출판의 매력은 책 하나하나가 기회라는 것이다. 강고한 에디터십으로 독립된 회사를 차릴 수도 있고, 때로는 타협도 하지만 에디터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다른 곳에서 실현하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만드는 책이 내가 아닐 때, 계속 독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 때, 회사에서 나를 껄끄러워 할 때 어떻게든 출구를 찾게 된다. 특히 에디터로서의 자각이 커질수록 후배들의 처지까지 염려하게 되고, 어느 순간 출판인으로서의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에디터의 목소리

두 번째 회사도 작별을 고하고 나서는 한동안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권고사직을 당했고, 계약까지 간 두 권의 기획도 무산되고 나니, 어디서도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를 받아 주는 곳이라면 온 힘을 다해 일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서야, 다시 구직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세 번째 회사는 하나의 브랜드에서 경제경영서부터 소설과 인문서까지 내는 이제 10년을 넘긴 종합출판사였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일했고,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입사 후 사장과 동료로부터 일로써 인정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부지런히 기획안을 썼고, 어떤 책은 주말에도 출근해 저자의 집필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동료들에게 신뢰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좋은 동료와 선배가 있었고, 사장님의 마인드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완벽한 곳은 아니었다. 고향 선후배 관계로 얽힌 지연이 위화감을 줄 때도 있었고, 연봉이 공평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기획을 살릴 기회가 꾸준히 주어졌고, 꼭 성과를 내 나의 입지를 다지고 싶었다. 그렇게 일에 푹 빠져서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내면에서 숨죽였던 목소리가 점점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의 문제는 내 ‘결’과는 다른 책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아닌 책들, 내가 편집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책들을 열심히 내는 동안,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그럭저럭 팔려 나갔지만, 에디터로서의 고민과 역할을 회사에서 풀어낼 수는 없었다. 책으로부터의 소외, 다시 말하면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느끼고 있을 때 내가 찾은 출구는 라디오 방송이었다. 우연히 마포의 작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고, 3년 넘게 소규모 출판사의 책들을 저자와 함께 소개할 수 있었다. 자본과 마케팅력이 부족한 작은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고, 저자와 편집자, 사장님에게 응원한다는 프로그램의 기본 취지는 내가 지닌 에디터십의 정체였고 표현이었다. 커다란 욕망에 끌려가면서도 나라는 인간이 가진 됨됨이란, 구석에 웅크려 잘 보이지 않지만 빛나는 상상력과 내면을 지닌 책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아낀다는 것이었다.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면서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었고, 훌륭한 선배 편집자와 저자의 가르침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보낸 시간은 에디터로서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며칠 전,*편집자 주: 이 글은 2018년 4월 초에 쓰였다. 사무실에서 임프린트 대표와 전화로 실랑이를 벌였다.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잘못을 덮고, 거짓말과 감언이설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태도가 나의 화를 돋우었다. 고성이 서로 오가면서, 지금까지 그분과는 화해를 못하고 있다. 화해는커녕 말도 섞고 싶지 않은 게 나의 심정이다. 한때는 꽤 잘나가는 출판사의 공동대표이자 상무였던 그의 목소리는 지나간 영광을 되찾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억지와 술수로 매출을 높이는 것이 과거에는 자신의 능력이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 꾀에 당했겠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에디터십의 문제가 출판인의 발목을 잡는 걸 자주 보게 된다. 결국 사람이 책이다. 매번 흔들리면서 겨우 한 발 옮길 수 있었던, 이러한 고민들이 동료와 후배들을 작게나마 응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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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이 글은 2018년 4월 초에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