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來 해年의 책] 반짝이는 『순간들』


올來 해年의 책: 있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연말마다 여기저기서 꼽는 ‘올해의 책’이 아니라, 아직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언젠가 있을,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기획안 또는 시안이 될 수도 있고, 가상의 서평이 될 수도 있고, 결국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런 원고가 있다면, editors.dont.edit@gmail.com으로 보내 주시겠어요?


공연예술을 흔히 ‘순간의 예술’이라 표현하곤 한다. 그 공연은 그 시간에만, 그 공간에만 존재한다. 좋아하는 영화는 다시 보더라도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감상이 엄청나게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영상의 구도와 연출, 텍스트까지 모든 것이 일치한다. 굳이 달라지는 것을 꼽자면 감상자의 상태뿐이다. 하지만 공연예술은 변수가 굉장히 많다.
같은 극이더라도 배우에 따라 텍스트가 달라지는 경우가 더러 있으며, 해가 바뀌고 시즌이, 뮤지컬의 경우에는 넘버가 달라지기도 하며, 연출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같은 시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같은 배우의 조합이더라도 그날의 디테일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되곤 한다.
또한, 보통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레전드 공연‘을 꼽을 때는 우스갯소리로 삼박자가 모두 맞아야 한다고 한다. 그날 배우 캐스팅, 그 극장 안의 공기, 그리고 객석에 앉은 나의 컨디션. 그렇기에 같은 극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기에 공연을 보고 남긴 후기들도 다 제각각이 되는 것이다.
그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극 중 하나는, 작년에 10주년을 맞았던 〈사의 찬미〉라는 뮤지컬이다. 이 극은 10년 동안 7차례나 올려져 왔다. 이 극은 극 내의 자유도가 높기로 유명한 극인데, 그렇기에 같은 극을 본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후기가 달라진다. 배우의 조합에 따라 죽음을 찬미하는 극이 되는가 하면, 생명력이 가득한, 삶을 사랑하는 극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받아들여지는 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영상을 촬영해 DVD로 판매하거나 중계를 하더라도 현장에서 보는 것과 영상으로 남겨진 것을 보는 감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렇듯 공연예술은 그 한순간에만, 그 공간과 그 시간 안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한 번 지나간 것들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을 한다. 크게는 그 극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해, 해당 회차의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세세하게 기록한다. 이 부분에서 대사를 쳤다든지, 숨을 쉬는 타이밍과 대사의 템포가 달라졌다든지. 그날의 공연을 구성하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전부 기록한다. 사실, 이건 정말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물론 평론가들이나 전공자들이 하는 객관적인 분석들이 영양가는 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애정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순간적인 반짝임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반짝임들을 한데 담은 책이 바로 『순간들』이다. 이 시리즈는 한 권에 한 뮤지컬 또는 연극에 대한 후기들을 엮어 만든 책이다. 비평집과는 다르게,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만 실은 책은 아니다. 극의 작가와 연출가를 비롯한 창작진의 글이 실려 있긴 하지만, 그것보단 그 극을 사랑하는 관객들의 글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그램북과 메모리북을 결합한 형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떤 극을 다루냐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순간들』의 기본적인 구성은 우선 작품의 전체적인 개괄부터 시작한다. 1장에서는 등장인물부터 전체적인 줄거리들을 다룬다. 여기까지는 여타 다른 극과 관련된 도서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그 후부터 느낄 수 있다.
2장에서는 시즌별로 달라진 부분들에 대해 다룬다. 크게는 극의 연출부터, 작게는 넘버의 편곡과 달라진 텍스트까지. 극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무대에 관한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무대의 경우에는 텍스트만으로 상상하거나, 차이를 구별하기에는 영 어렵다. 시각적인 자료가 필요한데, 무대 사진뿐만 아니라 무대를 구성하는 데에 사용한 스케치를 실어 변화된 점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점도 이 책의 훌륭한 지점이다(물론 빠져 있는 것도 있긴 하지만, 공개하지 않으려는 제작사가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넘어갈 만한 부분이다).
이 책에서 가장 특별하다 여기는 부분이 바로 3장이다. 3장에서는 시즌별로 소제목을 두고, 해당 시즌에 대한 ’연뮤덕‘들의 후기를 엮었다. 가장 첫 꼭지에는 시즌 전체에 대한 관객들의 종합적인 감상을 담았다. 이전 시즌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이 아쉽고 또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그리고 캐스트의 조합은 어땠는지 등 정말 그 극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담겨져 있다. 더불어 보통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장르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기에, 다른 서브컬처들과 연관 지어 메타포나 클리셰들을 분석하는 부분도 평론 등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지점이다.
그다음은 ‘레전드 회차’에 관한 꼭지다. 해당 회차만의 디테일과, ‘왜’ 레전드 회차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후기들이 담겨 있다. 이날 관극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고, 또 그 공연을 본 관객들은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 꼭지들을 읽다가 보면 정말 즐겁게 느껴지는 점 중 하나가, 정제되고 다듬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애정만큼은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 벅참과 설렘이 텍스트로도 온전히 전달된다. 또한, 주관적인 감상인 만큼 한 회차에 대해서도 각자 해석하고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점 또한 재미요소로 작용한다.
사실 관객의 글을 이렇게까지 중점적으로 실어 놓는 것은 잡지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다. 『순간들』은 그 어느 책보다 ‘관객’에게 집중한다. 타깃층이 명확한 만큼, 나와 같은 ‘연뮤덕’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이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계속하여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 또한, 많은 시즌이 올라오지 않는 극을 다루는 경우에는 내용이 비교적 빈약해지는 부분이 있어, 더불어 초연 이후에 올라오지 않는 작품들을 담을 방법을 고안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윤예원

인문 전공 대학생. 현재는 휴학하고 애정하는 것들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여러 일들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