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식

지다율

7호 이후, 1년 남짓 만에 잡지를 냅니다. 이전에는 서문에서만 간략히, 그것도 아주 드문드문 저희의 소식을 전했는데, 앞으로는 보다 상세히, 자주 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 많이 전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

1. 활동들

2022년에는 출판공동체 편않의 활동 반경이 예년에 비해 넓어졌습니다.

2월

팟캐스트 두둠칫스테이션에 김윤우 펺집자와 기경란 디자이너가 출연했습니다. 격자시공: 편않, 4년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회사를 다니며 또 편않 활동을 하며 겪은 ‘현실 고민’을 풀어 놓았습니다.

6월

‘2022 파주 에디터스쿨’ 1학기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정지윤 펺집자가 포럼도 진행했습니다. 파주 에디터스쿨은 2014년부터 매년 열린 출판도시문화재단의 대표 행사로, 국내외 전문가들의 강연과 워크숍을 통해 변화하는 출판환경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며 편집자적인 측면에서 독자에 대해 탐구하고 그 다양한 사례들을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1학기 전체 주제는 ‘지속가능한 에디터 ─ 책 안의 모험, 책 밖의 모험’였고, 포럼 주제는 ‘지속가능한 출판을 향한 열린 시도, 꾸준한 노력’으로서 김미래 쪽프레스·고트 편집장, 신우승 전기가오리 대표, 이정신 오월의봄 편집자가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오랜만에 파주에 간 지다율 펺집자가 포럼 내용도 정리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2학기는 김윤우 펺집자가 준비하고 있답니다. 기대 많이 해 주세요.

8월

김윤우·지다율 펺집자가 보름유유와 인터뷰했습니다. 각자 소개(..?!)부터 ‘편않’의 의미, 그리고 조만간 세상에 나올(당시 기준)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 〈우리의 자리〉 이야기까지. 일독을 권합니다.

9월

지다율 펺집자가 서울출판예비학교(SBI)에서 예비편집자반을 대상으로 ‘초고 ─ 처음(들)을 돌아보며’라는 제목의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특강 내용과 소회도 정리해 보았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는 한번 읽어 주세요.

지다율 펺집자는 또, 〈우리의 자리〉 관련하여 기자협회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기레기’라고 쉽게 말하고 정작 시민으로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부분은 적은 분위기지만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보고 나면 대화할 마음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는 기획 취지가 잘 담겨 있으니 일독을 권합니다.

+ 10월과 11월

출판공동체 편않이 앞으로, 장이 서면 나가려고 합니다.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요. 우선은 10월에 UE14, 11월에는 SPT 2022에서 만나요.

2. ()

〈우리의 자리〉는 계속 흐를 예정이며, 내년 초 발간을 목표로 책에 대한 대중 교양서와 장르 소설 번역 시리즈 등도 준비 중입니다. 좋은 책들을 더 많이 만들어 보겠습니다.

〈우리의 자리〉

올해 초 저자를 섭외하며 본격적으로 착수했던 작업이 가을에야 결실을 맺었습니다. 〈우리의 자리〉는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인데요. 늘 불황이라면서도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 출판인들, 그리고 언제부턴가 ‘기레기’라는 오명이 자연스러워진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욕먹어 싸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니까요. 구조적인 문제로만 탓을 돌리기엔 개개인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요. 언제까지고 이들을 비난하고 조롱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빠르게 망가질 것입니다. 이들이 소명할 건 소명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서, 다 함께 나아가자는 목소리를 공동체에 전하고 싶습니다. 먼저 세 기자의 책 박정환의 현장: 다시, 주사위를 던지며, 손정빈의 환영: 영화관을 나서며, 고기자의 정체: 쓰며 그리며 달리며를 펴냈으며, 이후에는 언론인과 출판인을 망라하여 시리즈를 이어 갈 생각입니다.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출판정신과 저널리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본문을 궁금해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각 권의 펺집자 코멘터리를 싣습니다.

우리가 흐르던 자리에서

내 꿈의 편린 하나는 십몇 년 전 겨울, 어느 경찰서 주차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추웠고, 수십 일 동안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종일 쌍욕을 듣던 시기였다. 할 수 있는 건 없으나 하지 말아야 할 건 많았다. 보고하고, 쌍욕 먹고, 보고하고, 쌍욕 먹고. 사람 취급은 바랄 수 없었다. 그건 과욕이었다. 혹자는 ‘수습기자’의 ‘수’는 짐승 수(獸) 자라 했고, 어느 곳은 아예 획수 많은 ‘수’ 대신 개 견(犬) 자를 써서 ‘견습기자’라 부른다고도 했다. 그딴 걸 농담이랍시고들 지껄였다. 차라리 뼈아픈 농담, 아니 어설픈 참담은 ‘사쓰마와리’를 ‘사슴앓이’로 읽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제대로 앓지 못한 탓에, 그 겨울을 십수 년 동안 무한 재생해야만 했는가.

어떤 복합적인 상황 때문에(여전히 정리되지 않는 이유들로,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에 무뎌지기 싫어서), 나는 선배에게 쌍욕을 돌려주고 퇴사했다. ‘정보 보고’로 소문은 돌았을 테고(그로부터 몇 년 뒤, 초면인 기자에게 들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니 전적으로 내 무능의 소치겠지만, 나는 그 뒤로 짧은 인턴 및 프리 생활을 제외하고는 언론계에 재진입할 수 없었다. 나는 약간은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갔다. 문학을 공부해 보겠다고. 오랫동안 ‘시 쓰는 기자’가 되고 싶기는 했다. 결국 어느 쪽도 안 되긴 했지만.

좌우지간 그즈음 보고 들었던 몇 가지 일들은 특기해 둘 만하지 않나 싶다.

하나는 첫 회사 동기(라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모임에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했을 때였다. 면구스러우면서도 술은 또 마다치 않는 성격인지라, 함께 자리했을 것이다. 당시 처음으로 후배를 받았던 그들은 한껏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다(내 인상평일 뿐이다). 자연스레 이제 막 입사한 후배들이 화제가 되었고, 유독 튀는 신입 하나가 입길에 올랐다. 한 친구가 말했다. “내 밑으로 보내. 내가 조져 줄게.”(비속어로 신입을 지칭했던 것 같기도 한데,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지는 않다. 다만 큰따옴표 안의 표현만큼은 확실히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거의 기함했다. 저 말을 뱉은 사람이 정말, 불과 2년 전 내 사수에게 쌍욕 먹고 나한테 울먹이며 고충을 털어놓던 그 친구가 맞는단 말인가? 폭력은 그리 쉽게 체화되고, 그리 오래 세습되어야만 하는가?

또 하나는 타사 동기(라 부르기에도 역시 민망하지만)의 부고를 듣고서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더럽고 좁은 경찰서 기자실에서 함께 고생했던 친구였다. 얼마 전 이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를 전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니, 황망했다. 그의 죽음을 두고도 여러 말이 오갔다. 빈소에서 들은 바로는 큰 병을 앓았다고도 했고, ‘지라시’에 따르면 부당한 업무 지시에 대한 불만과 선배와의 불화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고도 했다(‘지라시’에서 나는 한 삶과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찾을 수 없었고, 그게 또 분했다). 관련 기사에 의하면, 친구가 여러모로 힘들었던 것 같다.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근무 태만·지시 불이행·연락 두절 등을 이유로 상사에게 뺨을 맞았고 관련하여 징계를 받은 것은 사실인가 보다. 수습기간 중 ‘뻗치기’ 때문에 건강이 악화됐고 온라인 기사 작성 지시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것 역시. 퇴사할 때 그는 “이곳에서는 더 이상 기자를 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기자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레기’라는 말이 완전히 자리 잡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먼 바다에서, 이제 막 봄인데, 숱한 꽃이 피기도 전에 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때 나는 내 꿈이 진작 빠그라져서 다행이라고, 시도 못 쓰고 기사도 못 쓰는 처지라 정말 다행이라고, 고약한 안도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야만은 곧잘 낭만이 된다. 그러니까 나도 항상 조심해야만 한다. 이미 틀린 것 같지만, 이제 본론을 말하자.)

그리고, 〈우리의 자리〉를 시작한다. ‘그래서’(로) 시작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로) 시작하고 싶다. 희망을 찾아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그냥, 일단 시작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리〉는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이다. 언제부턴가 ‘기레기’라는 오명이 자연스러워진 언론인들, 늘 불황이라면서도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욕먹어 싸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니까. 구조적인 문제로만 탓을 돌리기엔 개개인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이들을 비난하고 조롱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럴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빠르게 망가질 것이다. 소명할 건 소명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서, 그럼에도, 이제는 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 우선 세 기자의 책을 동시에 펴내며, 이후에는 언론인과 출판인을 망라하여 시리즈를 이어 갈 생각이다.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과 출판정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보겠다.

그런데 왜, 에세이인가. 안 그래도 하고많은 게 에세이인데. 짧게 답하자면 에세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 흐를 수 있는 자리라고 보았다. 사적일 수도 있고, 공적일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고, 무거울 수도 있고(특정할 수 없는 내용). 때론 시보다 아름답고, 때론 강령보다 강렬하며, 때론 매뉴얼보다 상세하기를(특정할 수 없는 형식). 우리가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어디여야 하는가, 또 어디일 수 있는가. 이걸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에세이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시리즈의 첫발을 박정환·손정빈·고기자 세 명과 함께 뗄 수 있어서 기쁘다. 이들에게는 풍부한 경험과 깊은 사유가 있고, 무엇보다 미래가 있다. 우선, 박정환 기자는 좌고우면하지 않으며 정면 돌파한다. 그의 맘이 늘 기우는 곳은 현장이며, 그의 몸이 이미 가 있는 곳도 현장일 것이다. 대상에 육박하여 망설임 없이 부딪치는 몸이 그의 글에는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하다 결국 주저앉고 마는 나는 오랫동안 그를 부러워했는데, 10년 새 저토록 멀리 가 버리다니, 친구로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 더 멀리 가기를, 뒤에서 든든히 응원하겠다.

손정빈 기자의 글에는 무언가가 서려 있다. 나는 그 무언가를 잘 알지 못하고 결국 알 수 없을 터인데, 손 기자는 왠지 언젠가 알아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는 영화라는 환영(幻影)을 끊임없이 좇으면서도, 그런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처럼(歡迎)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을, 개인적으로는 몇 년 만에, 소개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끝으로 고기자는, 박 기자와 달리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글은 계속 침잠하는 듯하다. 지금 멈춰 있는 듯 보이는 건(停滯), 진정한 자신(正體)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일까? 잡지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시작한 인연이 단행본 『격자시공: 편않, 4년의 기록』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그는 또 나아갈 것이다. 어떻게든.

손정빈·고기자 두 저자와 함께 각각 호흡을 맞추며 책을 만든 김윤우·정지윤 편집자, 편않 책을 항상 아름답게 만드는 기경란 디자이너, 그리고 편않에서 IT·번역 등을 맡고 있는 정지민 씨도 독자들께서 기억해 주시기를.

우리는 확고부동하지 않으며, 자리 역시 그러하다. 자리는 바뀌고 우리는 흐른다. 이 변화와 운동을, 나는 잠시나마 붙들어 세우려 하는가? 혼자만의 지지부진한 생각들과 지저분한 문장들 속에서, 바람 없는 지난 계절들은 그저 답답했다. 숨이 턱턱 막혔고, 앞으로 더 가빠질 것이었다. 줄탁은 동시여라. 이 계절을 뚫으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다시, 당신이.

이천이십이 년 팔월,
또 한 번 여름 속에서,
지다율 흐름.

기자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세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시네필 3법칙”으로 유명한 이 말은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트뤼포가 쓴 책 『내 인생의 영화들(Les Films de Ma Vie)』의 문장을 재구성한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 가운데 무엇이 나를 감독이나 비평가의 길로 이끌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모른다. 다만 나는 영화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첫 번째 단계는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감독의 이름을 적어 두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자 나는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박강수, “[가짜명언 팩트체크]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법칙’”, 『뉴스톱』(2020. 2. 11), 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14 참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이 말로 진부하게 시작해 보자. 첫 번째 단계,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보고 싶어요’와 ‘찜’ 목록을 부지런히 채우면서도 막상 시간이 나면 무엇을 볼까 하는 고민으로만 20분을 쓰다가 결국에는 전에 재미있게 본(다시 말해 과거에 내가 직접 검증한) 영화를 재생하게 되었다[아무튼 영화관에 가서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이다]. 두 번째 단계,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딱 두 편[〈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와 〈그 후〉(2017)] 보고 나서 어설프게 리뷰를 써 보았으나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재미도 없고 부끄럽기만 했으며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세 번째 단계,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 딱 하루 11시간 동안 네 곳의 장소에서 촬영을 하고 딱 한 달 동안 편집을 해서 완성한 단편 영화가 있었으나 이 작품에 대한 나의 마음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한편 트뤼포의 영화는 지금까지 단 한 편도 보지 않았고 정성일의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시네필 3법칙을 처음에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결코 영화를 직접 만드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각 다음 단계들을 정말 우연히도 넘게 되었고[“엄마는 항상 인생이 초콜릿 상자와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초콜릿을 집기 전에는 무엇을 집을지 알 수가 없다고(Mama always said life wa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포레스트 검프〉(1994)]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오히려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인가? (이렇게?) (이런 마음이?) (진짜로?) 그러다가 『무비고어』를 읽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무비고어』 편집장은 어떻게(왜) 이렇게(까지) 매거진을 만들었는가? 그가 기자라는 것을 알고는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기자는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는가?

그는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보내 주었다. 그전에 몇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정리했던 방향과 콘셉트와 분량 모두가 언제나, 매번,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사회적 이슈와 그의 개인적 경험, 그리고 영화 이야기가 균형 잡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지점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특히,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는 단단한 글인데도 솔직한 표현들이 툭툭 튀어나오면서 만들어 내는 어떤 선명함이 좋았다. 요컨대 그의 글은 읽는 맛이 있었다, 마치 영화 DVD를 구매하거나 GV에 참석하면 들을 수 있는 코멘터리나 뒷이야기처럼.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기억났다. 〈내 이름은 조〉(1998)를 보려고 하이퍼텍 나다에 갔던 것(상영 시간보다 조금 늦어서 맨 뒷자리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을 빌려서 친구들과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보았던 것[〈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청소년 드라마의 이론과 실제〉(2009), 〈숏텀 12〉(2013)].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를 보고 너무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추천했던 것(모두 다정하게도 이 영화를 봐 주었으나 반응들은 좋지 않았다……). 평생 들어 본 적 없었던 영화 팟캐스트를 찾아서 듣기 시작했고, 돌비 애트모스 3D 사운드 시스템을 도입한 영화관에 가 보았으며, 아주 오랜만에 전주국제영화제에 가서 영화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과 같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역시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기자는 다른 사람들(독자와 관객들)이 영화를 사랑하게 만드는구나, 이것이 기자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이구나.

거기에도 사람이 있다

수없이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글을 읽고, 콘텐츠를 즐기면서도 음식이며 옷, 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잊곤 합니다. 그러나 지은 이 없는 물건은 없는 법입니다. 제가 누리는 어떤 것에나 누군가의 고민과 수고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즐겁습니다. 함께 이 세상을 살고 엮으며 발버둥치는 수많은 동료들을 발견하는 까닭입니다.

물론 같은 세상을 산다는 이유만으로 동료라 부를 수는 없다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저로부터 동료라는 애정 어린 호칭을 듣고 싶지 않다며 거절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 또한 반가운 일입니다. 핀잔이나 거절 역시 이 난폭하고 공허한 세상을 탐구하며 삶을 한 칸 한 칸 쌓아 나가는 숙고이자 노력이니까요.

각설하여, 글 또한 지은이 없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책이며 뉴스 뒤에는 오늘을 살며 분투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이상과 좌절과 도전과 한계와 용기와 체념 사이를 오가며 자기 자리를 찾아 땀 흘리는 동료가 있습니다. 당황스럽지만 감사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자리〉 시리즈를 시작하는 마음은 더욱 각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론인과 출판인의 에세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출판도 언론도 우리가 세상을 만나는 중요한 통로 중 하나인데, 이 통로 또한 사람이 지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언론인과 출판인은 글을 쓰고 글을 다루면서도 정작 자기 이야기는 감춰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그 자리에 없는 듯 스스로를 숨겨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통로를 짓는 이가 감당해야 할 숙명인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인과 출판인은 또한 생활인이자 직장인입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하루하루 일과를 견디며 다른 하루를 살아 낼 동기를 찾는 동료입니다.

특히 고기자 작가의 글은 기사 너머에서 존재하며 살아가는 기자를 조명합니다. 그의 에세이에는 진솔하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절절한 기자의 일상이 배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상이란 원래 절절한 일입니다. 때로 나의 절절함에 무뎌지면서 타인의 일상도 더는 절절히 다가오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일상은 고된 시간을 헤치고 나가는 여정입니다.

고기자 작가의 에세이는 이 사실을 곳곳에 새겨 놓았습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잊고 낙담하지만 끝내 이 사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가득합니다. 자신과 타인의 고통도 기쁨도 기대도 실망도 하찮게 여기지 않으려는 진중함과 다정함, 세심함이 선명합니다.

때때로 우리에겐 공허하고 외로운 삶을 달랠 동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결코 서로에게 답이 될 수 없겠지만, 어쩌면 함께 답을 찾는 동료는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 담은 고기자 작가의 글과 그림이, 많은 독자에게 그 동료를 찾는 통로가 되길 기도합니다.

  • *
    “시네필 3법칙”으로 유명한 이 말은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트뤼포가 쓴 책 『내 인생의 영화들(Les Films de Ma Vie)』의 문장을 재구성한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 가운데 무엇이 나를 감독이나 비평가의 길로 이끌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모른다. 다만 나는 영화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첫 번째 단계는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감독의 이름을 적어 두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자 나는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박강수, “[가짜명언 팩트체크] 각색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법칙’”, 『뉴스톱』(2020. 2. 11), 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1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