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

김지호 edited by 김윤우

괴롭다.

괴로움이 검은 내면 밑바닥에 엉겨 숨쉬기가 벅찰 정도로 자라고 있다. 역한 냄새가 끊임없이 번져 온다. 어둠 안에서 나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도 같다. 깨어날 때마다 남들처럼 일상을 영위하지만 꾸며 낸 영상들 속에서 발을 땅에 붙이지 않고 그저 떠돌고 있는 유령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살아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던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기도 한다. 지금 이 현실 공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 나에게는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다. 숨을 쉴 때마다 메마른 공허가 폐포를 채운다. 열심히 호흡하다가 잠들 수 없는 밤이 오면 그 허무함에 온몸이 붕 뜨는 듯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 부담을 이기는 태만으로 이루어진 응결체는 나의 몸을 힘겹게 지탱하면서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나를 견딜 수가 없게 되면 마음속에 아주 높은 다이빙대를 만들고 나는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투신한다. 추락하면서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새까만 결핍을 발견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 온 것이다. 나와 함께 커 온 부산물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끊임없이 나를 던지지만, 나는 결국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모든 시도는 의미가 없다.

나는 줄곧 괴로웠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 봤지만 마음속의 허무는 끝내 채울 수 없었다.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물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으로서 존재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또한 나는 영원히 어릴 수 없었으므로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하나둘 굉음을 내며 나를 닦달했다. 깨어나서 어른답게 현실을 살라고, 모두 괴롭기는 매한가지라고. 아,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은 아니구나 하고 깨달은 후로 일상도 시시해졌다. 나의 괴로움도, 이 채울 수 없는 허무도 남들과 똑같은 것이다, 모두 겪는 일이다. 그렇게 한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늘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언제나 일상은 내게 버거웠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겪을 그 짧은 하루를 살아 내는 것조차, 모든 찰나의 순간들조차 나에겐 너무나 어려웠다. 내 삶은 해변에 버려진 쓰레기 같았다. 분명한 이유를 갖고 태어났지만 목적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아무도 없는 섬에서 파도에 놀아나는 유리병 같은. 처음에는 유리병 속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가 시끄럽다. 그렇게 파도에 한참을 괴롭힘 당하고 나면, 이윽고 가득 채워진 모래들로 유리병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는다. 침음하며 잠긴 내 입은 더는 그런 고민을 나불대지 않을 뿐이고, 사람들은 드디어 너의 고민이 해결되었구나 하고 잊어버린다. 그들 또한 내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여전한 괴로움과 슬픔에 잠겨 있다. 수십 번 스스로를 속여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안은 봄이 되면 피는 싹처럼 다가왔다가 겨울이 되면 회색빛으로 죽어 버렸다. 나는 그 온도 차에 어찌할 줄 모르고 마냥 허우적대고 있다. 금방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 보면 다시 또 차가운 수면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시린 시야 끝엔 아무도 없다. 투명한 빙하 속으로 들이닥치는 햇살은 이 어둠 속에서 내가 홀로 얼마나 추운지 더 절실하게 깨닫도록 만들 뿐이다.

어떻게 해야 이 절망을 딛고 온전해질 수 있을까. 나의 모든 것을 버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여기서 무얼 더 얹어야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과연 나에게 허락된 것일까.

나는 나의 괴로움으로부터 수차례 도피한 전적이 있다. 도피는 언제나 짜릿했다. 처음으로 나의 결핍을 마주하지 않았을 때 나는 마침내 완전히 행복해진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마주치지 않으려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을 내내 반복했다.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내 심연으로부터 회피하려고. 그러나 곧장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돌아가는 종착지는 언제나 나의 집이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무심코 내 슬픔들을 다시 발견한다. 내 텅 빈 허무를 만들어 낸 일상들을 기억해 낸다. 언젠가 나는 완전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이토록 괴로워서 마냥 도망쳐야만 했는데, 그때의 조각들을 그러쥘 때마다 내 눈물로 이 집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힘들게 사춘기를 지나는 어린아이도 아닌데, 이제 다 커 버렸는데도 그렇다.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는 내가 인생에서 부딪혔던 가장 큰 슬픔을 매일 쓰다듬는다. 나는 남들과 똑같이 보이기 위해 괜찮은 척을 한다. 그러나 매 순간 생긴 내 아픔들은 어쩌면 치유되지 못한 채 그대로 곪아 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집에서 잃었다.

그리고 살이 베일 듯한 후회로 매일을 살았다. 어쩌면, 내가 그때 정확한 장소에 있었더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었다면,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했더라면……. 그러나 죽도록 울어도 돌아오지 않는 일들이 있다.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고, 뉘우치고, 끝의 끝까지 후회해도 잊히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 많이 흘려서 이제 내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소음이 없는 집을 볼 때마다 진공 안에서 단 한 숨도 내뱉지 못할 것만 같은 죄책감이 사무쳤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후회로부터 도피한 뒤로, 아무도 모르게 숨어 버리는 건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나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잊힌다고 모두들 했던 그 말을 믿었다. 목표를 가지고 살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들이며, 그냥 다들 버티고 있을 뿐이라는 그 헛헛한 말을. 하루에 서너 시간 자면서 야간 편의점 물류를 받고, 영화관에서 상영관을 돌고, 카페에서 쓰레기를 치웠다. 나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 싫어 매일 굶었고, 몸뚱이가 점점 말라가고 엉덩이 살이 얇아져서 앉는 것도 아파질 때까지 나를 가혹하게 학대했다. 실신하듯이 잠을 자고 일어나면 조금쯤 후회가 덜 되는 순간이 왔다. 나도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노라고, 회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 짧은 순간들이 너무 달콤해서 서서히 나를 궁지로 몰았다. 그 궁지로 쌓인 돈이 있었다. 언제나 여기를 떠나고만 싶었고, 그렇게 내 후회가 지워지리라 믿었다. 집이 아닌 장소의 공기는 너무 색달랐기 때문에 내가 극복해 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쉬웠다. 그렇게 끊임없이 떠났다. 여권이 도장으로 범벅이 되도록 다녀야만 했다. 아주 멀리.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는 액자 같은 창문이 달려 있었다. 그 안으로 쉴 새 없이 채워지는 풍경들은 덧없이 지나갔다. 이따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나타나기도 했고,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전선들이 하늘에 빼곡하기도 했지만 결국 나의 시야를 채우는 건 검게 죽어 버린 풀과 나무들이었다. 겨울을 지나면서 추위를 견디지 못한 초록은 빛을 잃은 채 넓은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창공을 이고 있는 죽음을 보면서 나는 희망을 품었다. 숲이 되살아나고 말라붙은 호수가 채워지는 계절이 오듯,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타고 내렸다. 밤에 반갑게 인사했던 옆자리의 사람이 자고 일어나면 이미 떠나 있었다. 내가 기차 안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것 같았다. 영원 같은 시간을 달려 비가 오는 모스크바에 도착해 맡은 공기는 아주 상쾌했다. 손에 닿는 빗물들이 하나의 생명 같았다.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유럽이 가까이 와 있었다. 나는 그렇게 13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여행을 했다. 아주 완벽히 질리고 물리도록 하고 나면 내 안을 채운 후회가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외면한 채로 여행을 했고, 오만 신기한 것들과 평생 알고 있던 세상을 뒤엎는 일상을 겪으면서 나에게도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순간이 한없이 즐겁고 소중해서 나는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즐거운 순간에는 늘 끝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 다시 그 빈자리를 발견했다.

더 멀리 가야만 했다. 아주 멀리 가면, 내 집과 이어지지 않는 곳으로 간다면 질긴 슬픔 또한 끊어지지 않을까.

멕시코시티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테오티우아칸으로 가는 길목에서 본 원주민들의 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파트 3층 높이의 봉 위에서 위태롭게 다섯 명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텅 빈 호두 껍데기를 줄줄이 엮은 발찌를 잔뜩 차고 원색이 가득한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피리 소리에 맞춰 그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천천히 하강했다. 줄에 묶인 그들의 머리는 땅을 향해 있었고, 위태로운 피리 소리가 끝날 즘에 아슬아슬하게 봉을 휘감으면서 아주 사뿐히 내려앉았다. 내려와 춤을 추는 내내 낯선 언어로 부르는 노래와 호두가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동시에 사방이 고요했다. 멕시코의 사막은 능숙하게 소란을 집어삼켰다. 춤과 노래가 끝난 후 모두 손뼉을 쳤다. 메마른 멕시코 땅에서 울리는 찬사는 금방 흩어졌고 나는 또다시 지옥 같은 햇빛을 이고 걸어야 했다. 모두가 그래야 했다. 공평하게 주어지는 생명의 근원은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라고 재촉했다.

언제나 많은 사람과 함께했지만 나는 멕시코에서 혼자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오르막길, 공업 도시인 그곳에선 공장이 뿜어낸 연기로 하늘이 뿌옇게 변하면 그날은 더욱 아름다운 노을이 졌다. 떠들썩했던 해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상은 분홍빛 연기로 가라앉았다가 이윽고 주황으로 타올라 상처 같은 별을 남기고 검게 칠해졌다. 나는 그렇게 한참 해의 몰락을 구경하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모든 것이 차가운 대리석으로 지어진 집은 한 번도 나를 제대로 반겨준 적이 없었다. 그 외로움이 너무 끔찍해서 멕시코에서도 도피를 반복했다. 친구들을 부르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파티에 참석하고, 여행을 끊임없이 떠났다. 그러나 소란스러운 시간이 끝나고 나면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찾아왔다. 몇 시간을 누워 있어도 잠자리에 들 수 없는 날이 많았다. 그런 밤이 오면 창문을 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동차들의 물결을 보았다. 열린 창문으로 시끄러운 빛들이 질주해 들어왔다가 금세 사라지곤 했다. 하얀 천장에서 흔들거리는 야자수의 그림자를 세면서 뒤척이다 보면 해가 떴다. 그럼 그 온기에 잠이 들었다.

모든 것이 열정적인 멕시코에선 나의 우울이 전부 해결되리라 믿고 막연하게 떠난 여정이었지만 마침내 깨달았다. 결국 슬픔은 한 번도 내 곁을 비운 적이 없었다. 내 안의 공허는 추억과 즐거운 순간들로는 완벽히 채워지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잠자리에 들지 못했고 나의 허무는 더 큰 비명을 지르면서 커지고 있었다. 한국과 완전히 달랐지만 동시에 완전히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변해 가고 있었지만 동시에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심장은 분명하게 뛰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온기가 없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고 퇴색한 지 오래였고, 멕시코에서 처음 겪는 모든 일이 더 이상 환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지옥처럼 반복되는 그곳에서, 나는 얕은 뿌리에 비해 훨씬 무거운 수분을 인 채 쓰러져 가는 선인장이었다. 모든 몸짓이, 모든 행동이 무의미했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졌다. 언젠가 슬픔이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수면 밑에서 발버둥 치고 있을 따름임을 깨달았다.

덜컥 두려워졌다. 이 발버둥마저 그만두고 싶어지는 때가 오면 어떡하지. 나는 나의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너무 열심이었기 때문에 이 도피의 끝이 어떤 결말일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심연으로부터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또 제자리로 돌아와 이 자리에 있고, 내가 끊임없이 얻으려 노력했던 것은 환상처럼 사라졌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당장 온전한 나로서도 존재하기 힘들었다. 내가 누군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더 깊은 추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내던져지는 나는 사실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모든 침잠은 이미 응결되어 숨을 들이쉴수록 불안 속으로 더 깊은 잠수만 하게 될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해졌기 때문에 이전에는 응당 들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를 채찍질했던 단 한 조각의 열정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내 안이 온통 소금기로 가득해서, 내 눈물로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출렁거려서 어느샌가 삭아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나를 가라앉지 못하게 하던 것들이 이제는 남아 있지 않음을 온몸으로 통감해야 했다. 어느새 절망이 나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겠다. 여권은 알록달록해졌지만 동시에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 필름처럼 색이 빠져 있다. 잠시 기뻤던 순간들로 나는 겨우 무너져 내리지 않고 있지만, 결국 추락하고 나면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다. 어디서부터 이 잘못을 바로잡아야 색이 가득한 세계로 회귀할 수 있을까. 내가 감히 할 수 있을까. 떨어지면서 느껴야 할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내가 어색하고 이상하다.

자신을 용서하고 나면 도망치는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러나 한 번 따뜻해지고 나면 다시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추위가 들이닥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안다. 어쩌면 내가 나로서 살고, 똑바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세계가 부서졌던 그 시점에, 병원으로 달려가 차가운 몸을 부여잡고 울었던 그 순간에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 이곳에 나는 없다. 겨울이 다시 다가오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3월 그 언저리에 있다. 지금 나는 여기에 없다.

나는 절벽 끝에 서서 위태롭다. 언제 바람이 나를 껴안을지 모르겠다. 열심히 나의 숨을 쉬려고 노력하지만 이내 입김은 흩어져 버리고 무거운 하늘이 어깨를 짓누른다.

뛰어들어야 할까.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난 뒤에는, 이 위태가 끝난 뒤에는 새롭게 태어나 예전의 온전했던 나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차가운 바위에 부서지는 포말이 덧없이 사라져 간다. 짠 냄새가 사그라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그럼, 다시 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한숨으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죽지 않기 위해 죽은 내면으로 뛰어든다. 집으로 돌아가 슬픔 속으로 나를 익사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