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가 아니다] 『한 남자』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관해 말해보겠습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손정빈

이것은 ○○이/가 아니다: 책 읽는 영화기자 그리고 영화 보는 편집자 
영화기자 손정빈과 편집자 김윤우가 서로에게 추천받은 영화와 책을 감상하고, 서평과 리뷰를(혹은 서평과 리뷰가 아닌 것을) 씁니다. 스포일러는 알아서 편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23년 3월부터 12월까지, 두 명의 필자가 격월로 매월 마지막 날 연재합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2008

하나. 최근 인상적으로 본 영화는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한 남자〉이다. 이 작품은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남자가 죽었는데, 이 사람은 다니구치 다이스케인 척하며 살았던 사람이고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이 영화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나는 히라노의 책을 읽어본 적 없지만, 그가 분인(分人)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며 그 사상을 일련의 작품들에 담아 내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쪼개질 수 없는 개인(個人)이 아니라 얼마든지 나눠질 수 있는 존재 혹은 자아의 총합이다.’ 그의 아이디어에 나는 일견 동의하고 있었기에 이 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고,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 아마 100쪽 정도 봤고,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영화관에 들어섰다. 영화를 보고 나자, 원작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소설을 다 보지 않아도 히라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이해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가장 강렬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은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말로 요약되는 물리학자 로버트 J.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인류를 절멸할 수도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에도 원작이 있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함께 쓴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이다. 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는 놀런 감독을 매료한 원작이 도대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서 영화를 본 후에 읽어 보리라고 다짐했으나,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을 읽지 않아도 상관없겠다고 판단했다. 이때도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물론 책을 읽게 된다면 구체적인 정보들을 더 수집하게 되겠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한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책을 읽고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오펜하이머〉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180분에 걸쳐 다 읽어 준 듯한 느낌을 받은 듯하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한 남자』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언급할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하나는 읽다 말았고, 다른 하나는 읽지 않았으니 말할 자격이 없지 않나. 그런데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에는 몇 가지 말이 생략되어 있다. 『(당신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제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이 책이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이유는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책과 주종(主從) 관계를 맺는다. 당연히 주는 책이고 종은 독자이다.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정독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어야 한다, 많이 읽어야 한다, 읽었으면 교양이 쌓여야 한다, 읽었다면 기억해야 한다 등. 책이 독자를 부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바야르는 정확히 반대로 생각한다.

안 읽어도 된다, 정독하지 않아도 된다, 차례로 읽을 필요도 없다, 많이 안 읽어도 된다, 교양을 쌓으려고 책을 읽는 게 아니다, 읽었다고 기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등. 이 책은 책을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어야 하고, 책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창조적 행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 바야르에 따르면, 나는 『한 남자』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 관해 어떤 거리낌도 없이 이야기해도 된다. 난 『한 남자』를 100쪽 정도 읽으면서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했고, 이시카와 케이라는 뛰어난 각본가이자 연출가가 세공해서 만든 『한 남자』의 영상 버전을 봤으며, 그 영화에 대한 글도 썼으니 『한 남자』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한 쪽도 안 읽었지만,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 이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3시간 동안 귀동냥하고 그 영화를 분석하는 글도 썼으니, 그 책에 관해 말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독자에게 다른 고민을 안겨 준다. 책 읽는 게 그냥 좋은 사람도 있다. 글자를 읽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책 읽는 자기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시간을 흘려 보내기 위해서 혹은 여유를 즐기기 위해서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런데 바야르는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를 준다. 읽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이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책을 읽지 않으니 이 책이 어떤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으려나). 그냥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뿐인데, 이젠 책을 읽지 않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쎄, 이 책은 정말 자유로운 책 읽기를 추구하는 것이긴 할까.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것이다. 책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2023/9/7)


손정빈 | 『뉴시스』 영화 담당 기자. 영화 매거진 『무비고어』 편집장. 2013년부터 『뉴시스』에서 일했다. 사회부·정치부·산업부를 거쳤고, 영화를 가장 오래 맡았다. 2021년 『무비고어』를 창간했고 2022년 『손정빈의 환영』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