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가 아니다] 끝이 나지 않고 만다: 〈파벨만스〉

김윤우

이것은 ○○이/가 아니다: 책 읽는 영화기자 그리고 영화 보는 편집자 
영화기자 손정빈과 편집자 김윤우가 서로에게 추천받은 영화와 책을 감상하고, 서평과 리뷰를(혹은 서평과 리뷰가 아닌 것을) 씁니다. 스포일러는 알아서 편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23년 3월부터 12월까지, 두 명의 필자가 격월로 매월 마지막 날 연재합니다.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 2022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로, 주인공 새미 파벨만스가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 〈파벨만스〉에는―영화(인)에 대한 영화인 만큼―여러 영화 작품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영화관에서 부모님과 같이 처음으로 영화 〈지상 최대의 쇼〉를 관람하고 그 영화에서 등장한 열차 사고 신에 매료된 새미는 (기인답게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영화에 매료된 사람이 가장 할 법한 일은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보기―트뤼포의 ‘진짜’(?!) 시네필 3법칙 중의 첫 번째 단계―일 것 같은데, 새미는 바로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 영화를 직접 만든다. 물론 〈파벨만스〉에도 명백히 나오듯이 영화는 한편으론 “편집의 예술”이므로 새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의 시기는 과감히 편집된 것일 수도 있겠다.) 이후 〈파벨만스〉는 새미가 촬영하고 만든 영화 예닐곱 편 정도가 차례로 등장하는데, 정말 진짜같이 필름에 담는 법을 궁리하며 여러 연출을 시도하거나 촬영 중에 갑자기 (자기 자신도 정확히 무엇을 지시하려는지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배우에게 연기 디렉팅을 하는 등 새미의 감독으로서의 성장기가 개인적인 가정사와 함께 교차된다.

새미의 영화들 중에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화는 두 편이다. 하나는 가족 모두에 더해서 가깝게 지내던 이웃 베니까지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촬영한 홈비디오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해변으로 소풍을 나갔을 때(“땡땡이의 날”) 찍은 영화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기록 영상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이 부분은 흥미롭다. 새삼스럽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E.T.〉, 〈쉰들러 리스트〉, 〈터미널〉, 〈레디 플레이어 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큰 사랑을 받은 영화들을 수없이 많이 찍었으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 여행을 기록한 영상을 편집하다가 새미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진실을 발견하고 만다. 그는 그 부분을 조용히 잘라내며 진실을 감춘다. 완성된 영화를 감상한 가족들,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미치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땡땡이의 날” 영화에서는 평소에 자신을 괴롭히던 로건을 영웅으로 재탄생시킨다. 거짓을 담은 이 영화 역시 학교 친구들의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낸다. 진실이 편집되거나 거짓으로 완성된 영화들의 주인공이었던 미치와 로건은 진실을 알게 된 후에 혹은 알기 때문에 무너진다. 미치는 눈물을 흘리고 로건은 두려움에 떤다.

새미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하면서 고민했던 것은 실제와 영화로 기록된 것 사이의 괴리였다. 그래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서 피가 터져나오게 하고 필름에 구멍을 뚫는 방식을 고안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편집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 (자신과 관객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된다.

“자, 다시 갑시다. 이번엔 좀 잘해 봅시다.”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모습. 밈(meme)으로 쓰이지만 어디에서 나온 사진인지 출처를 찾지는 못했다…….

〈파벨만스〉는 새미가 이 고민들을 모두 경유한 후에야 존 포드를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듯하다. 미치가 말했듯이 카메라 프레임을 “통제”하고 싶어 하던 어린 새미는 카메라와 현실 사이의 괴리와 균열을 가슴 깊이 느끼고 난 후, 거장을 만나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단지 취미가 아닌―영화 경력이 진정으로 시작되었다는 듯이 청년 새미는 길거리로 척척 걸어 나선다. 그리고 〈파벨만스〉는 끝난다. 새미가 거장의 조언을 따라 영화를 만드는 장면 따위는 없다(대신 카메라가 틸트를 하는 귀여운 유머가 있다). 질주하는 기차에 푹 빠지던 순간처럼 그저 또 다른 시작을 보여줄 뿐.  스필버그의 영화 예찬은 그렇게 끝이 나지 않고 만다. (2023/8/6)

덧.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를 보면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자주 떠올렸다. 저자 이름이 감독 이름과 같기 때문이고,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가 담긴 “이력서” 부분이 이 영화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 만드는 일에 대해서 만든 미친듯이 재미있는 이 영화를 보고서 글쓰는 사람이 글쓰는 것에 대해서 쓴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글(이 책은 작법서가 아니라 쓰기에 대한 논픽션에 가깝다)이 궁금해졌다면, “글은 인간이 쓰고, 편집은 신이 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김윤우 | 출판공동체 편않에서 기획 및 편집 등을 맡고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