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가 아니다] 세계의 균열: 『어린이라는 세계』

손정빈

이것은 ○○이/가 아니다: 책 읽는 영화기자 그리고 영화 보는 편집자 
영화기자 손정빈과 편집자 김윤우가 서로에게 추천받은 영화와 책을 감상하고, 서평과 리뷰를(혹은 서평과 리뷰가 아닌 것을) 씁니다. 스포일러는 알아서 편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23년 3월부터 12월까지, 두 명의 필자가 격월로 매월 마지막 날 연재합니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사계절, 2020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에 근접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 직전 단계, 그러니까 ‘유아라는 세계’에 속해 있다. 그래서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을 펼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난 불쾌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 잘 알지 못하던 것,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면 내 세계에는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변화는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내면의 편안함이 깨지는 걸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나에게는 곧 두 돌이 되는 딸이 있다. 이 아이도 어린이가 된다. 어쩌면 현재 내 자식이 속해 있는 세계는 어린이라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딸이 지나고 있으며, 앞으로 지나게 될 세계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불편할 걸 알면서도 이 책을 결국 펴들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는 동안 나의 미간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올해 3월부터 딸을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들 대부분 그렇듯이 아이도 어린이집에 맡겨질 때마다 울었다. 소리 내어 우는 것에서 시작해 울먹거리며 들어가기까지 한 달 정도가 걸렸다. 아내는 마음이 꽤나 단단한 편이지만,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우는 딸을 보며 자주 아파했다. 나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하기도 했고, 그 기간에 출근을 핑계로 아이가 등원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만큼 맘이 쓰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 그렇게 큰다”며 부러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기도 했고, 아내는 그런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정말 아무렇지도 않느냐”고 했다.

이랬던 내가 정작 마음 아팠던 순간은 딸이 새로운 환경에 매우 잘 적응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딸은 밥을 잘 먹었지만, 먹이는 게 쉽지 않은 아이였다. 어르고 달래며 먹여야 해서 밥을 먹이고 나면 아내와 나는 지치기 일쑤였다. 그런 딸이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법 없이 자기 몫을 해치운다고 했다.

겨우 15개월을 지나는 중이던 딸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넘어 어리다는 말도 어색한 이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현재 딸의 나이 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사회생활의 고단함이라고 하면 너무 잘 알고 있다. 어떤 조직에 들어와 있는지 잘 생각해야 하고,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을 알아야 하며, 그중 우두머리 같은 역할을 하는 이의 기분을 늘 살펴야 한다. 또 매일 달라지는 분위기라는 걸 파악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나같이 직장을 다니는 성인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업무가 아니라 이처럼 일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사실 아닌가. 지금의 나도 매번 버거워하는 일을 15개월밖에 살지 않은 딸이 감당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도 무심한 아빠였다고 자책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딸은 어린이집이 끝나고 집에 오면 마치 퇴근한 나처럼 지친 듯했다. 이 아이는 요즘 월요일에 가장 피곤해한다.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다만 유치원에 갈 정도의 나이가 되어야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걸 알고 그렇게 행동한다고 내 멋대로 판단했다. 나에게 드문드문이라도 기억이 남아 있는 가장 먼 시간이 유치원 때이니까, 딸을 딸의 입장에서 생각한 게 아니라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고백하자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유난스럽다고 여긴 부분이 없지 않았다. 어린이들을 존중해주는 것은 좋지만 필요 이상으로 추어올리는 건 아닐까. 그러나 나는 딸의 사회생활 스트레스를 떠올리게 된 이후로 이런 생각을 더는 하지 않는다. 역시나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에 관한 사실들을 하나씩 짚어가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며 겪은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일들을 편안하게 풀어 간다고 해서 이 책이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은 균열을 내 준다. 그 균열에 나뿐만 아니라 당신들도 상처받게 될 것이다. (2023/11/6)


손정빈 | 『뉴시스』 영화 담당 기자. 영화 매거진 『무비고어』 편집장. 2013년부터 『뉴시스』에서 일했다. 사회부·정치부·산업부를 거쳤고, 영화를 가장 오래 맡았다. 2021년 『무비고어』를 창간했고 2022년 『손정빈의 환영』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