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교차

코기데잇 edited by 정윤

나는 누구인가? ― ■■■

나는,

■■대학교 ■■■■■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학기에도 졸업을 못한 ■■살의 ■■■이다.

학과 내 졸업 규정은 ‘■■저널 제1저자 논문 최소 ■편’이다. 나는 이미 제 1저자 논문을 년 중반쯤 제출하여 년 초에 출판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1편이 부족하고, 그 1편을 쓰기 위해 괴로웠던 어느 여름날이 있었다.
내 첫 논문의 제목은 “■■■■■■■■■■■■■■■■■■■■■■■-■■■■■■■■■■■■■”이다. 이 연구를 시작한 것은 ■■■■년 말, 본격적인 시작은 ■■■■년이었다.
첫 논문은 대단하지도 못했지만 ■년 만에 나왔다. 그 전후로 있었던 몇 가지 사건이나 일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자괴감과 절망, 자책감 같은 감정에 휩싸여야만 했다.

이 일기의 단면들에서 내가 있는 이곳은 ‘지옥’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거창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별것 아닌 일들이 나에게는 충분한 형벌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 기록을 영원한 형벌로써의 지옥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단 하나이다.

나는 누구인가? ― 코기데잇

나는,

지난 2017년에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나 설명서』라는 책을 낸 코기데잇이라는 독립출판물 제작자이다.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나 설명서』를 제작하게 된 것은 다소 우연이었다. 하지만 책 제작을 잠시의 취미 생활이라 여겼던 마음은 내 책을 직접 서점에 입고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그 과정에서 돈을 크게 벌었는지, 많은 성과를 냈는지 누가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아직도 답을 내지 못했다.
다만, 수줍게 웃으면서 ‘하지만 재미있었어요’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책을 만들며 만난 사람들 대부분을 좋아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일기의 단면들은 내가 만났던 이들이 있는 이곳을 ‘천국’처럼 보이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일상의 지옥 혹은 시지프의 형벌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낯선 일상의 이 단면들은 적어도 나만의 괴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왜 이것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 ■■■

나는 ■■■을 전공하겠다고,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신기한 학생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것이 매우 편한 선택이었음은 확실하다.

운이 좋게도, 그 학과는 노려 볼 만한 학교들, 노려 볼 만하지만 동시에 괜찮은 학교들에 있었다.
■■■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진로를 정하라는 압박, 진로가 지위에 맞지 않는다는 힐난이나 무시의 눈빛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운이 좋아 원하는 학교에 들어왔고, 처음 들어와 소개하며 같은 ■■■과를 희망한다던 많은 학생들과 달리, 나는 하고 싶었던 ■■■를 제 1지망 전공으로 적어 내었다.
제 2지망은 ■■■과, 제 3지망은 ■■■과였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전공을 선택하고 발표가 났을 때, 나와 같은 과를 선택한 동기는 고작 6명 정도였다.
지금 그 6명 중 대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이것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 코기데잇

어쩌다 독립출판을 하게 되었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조금 사적인 측면에서 대답하자면, 단순한 이유였다.

2017년 6월 중순쯤으로 기억한다.
나는 연희동 골목길 걷는 것을 좋아했다. 토요일에도 하릴없이 커다란 노트북 가방을 메고 길을 걸었다.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낀 어느 토요일.
그날도 연희동 골목을 헤매다,

문득

‘이렇게 살 수는 없다’하며,
‘그러니 씩씩하게 살아야지’라며,

어느 불투명한 쇼윈도에 비친 나를 보고
조금 빠르게 걸었던 것도 같다.

이것이, 내가 근처에서 봐 두었던 ■■■■■■과 ■■■■에서 배울 만한 것을 찾아보다가
전혀 엉뚱하게도 망원동에 위치한 스튜디오 파이에서 그 주 화요일에 첫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던 소규모 독립출판 워크숍을,
월요일, 그러니까 바로 전날에 등록하게 된 경위다.

■■■의 일상

아침에 일어난다.
간밤에 온 메일을 읽는다(대체로 스팸·단순 공지·학교 전체 알림 따위다).
몸을 일으켜서 학교에 가기 전에 운동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한다.

운동을 간다. 운동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운동을 못 한 날에는 기분이 아주 나쁘다. 운동도 하지 못한 데다가, 아침에 무언가 일이 있었거나 그냥 늦잠을 잔 날이기 때문이다.

연구실 미팅이 있는 날은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바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체로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미팅이 끝나면 연구실 동료들과 커피를 자주 마신다.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미팅에서 나온 멍청한 이야기들과, 앞날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냥 다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당장 할 일이 아예 없는 날을 제외하곤, 컴퓨터를 켜 놓고 깔짝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가볍게 살펴보거나, 조금 더 급한 일들을 시작해 본다.

그러나 해는 벌써 져 버린 지 오래고, 잠은 들어야 한다.
아마 내일도 같은 하루의 반복이겠지, 그런 생각은 이젠 의미도 없다.

코기데잇의 일상

아침에 일어난다.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감상한다(대체로 고양이·멍멍이·귀여운 일상툰을 보고 웃으며 잠에서 깬다).
몸을 일으켜서 오늘은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할지, 밤에는 한가한지 따져 본다.

버스나 연구실에 앉아 쉬는 시간에 종종 인스타그램을 보며, 재미있는 글에 댓글이나 하트를 단다. 종종 감탄할 만한 책이 나오면 다음에 사기 위해 세이브 버튼을 눌러 저장해 둔다.
연구실 미팅이 있는 날에는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 어쨌든, 다음 날까지 할 다른 일이 없으면, 대체로 그날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당장 할 일이 없어 퇴근을 해도 죄책감이 적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생각한다. 저녁 시간에 바쁘거나 일이 있는 날에는 이런 생각도 의미가 없다. 오늘은 무엇을 맛있게 먹지. 그리고 오늘도 의미 없이 맛집을 몇 군데 검색해 보다가 자주 가던 곳으로 간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아예 없는 날은 조금 더 즐겁다. 북스피리언스(북스스)에 가서 맥주나 제임슨을 시켜 마시면 피로가 풀린다. 간혹 격조하게 구는 뭉과장도 이런 날은 무릎에 올라와서 한껏 골골 노래를 불러 준다.

해가 져 버려서 아쉽지만, 잠들기 전 행복한 시간이다.
아마 내일 일어나면 다시 우울한 하루가 반복되겠지만, 내일은 내일의 북스스가 열린다. 냐옹.

2018년 1월 10일 ― ■■■

사실 지난 4~5년간 내 분노의 중앙을 관통한 생각은 ‘내가 한 일에 걸맞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에 가까웠다.
보상을 받으려고 시작한 일도,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겠다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날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냥, 어쨌든 마무리해야 할 일은 마무리해야 하니, 칭찬이나 보상을 바라기보단 단순히 확인을 받으려고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내게 교수가 한 말은
“■■■, ■ ■■■ ■■■■ ■■■”였다.
최소한 미안함은 늘 품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내 안에서 무언가가 와장창 무너지는 것 같았다.
면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어느 짧은 시간이 지나고 교수님 방을 나와서 같은 방 동료 선후배들하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마음이 다소 복잡했는데, 단순히 교수에게 그런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무슨 이야기도 위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오후, 이제 ■■■학을 그만두어야겠다고, 그런 마음도 먹었던 것 같다.
지난 12년간 같은 공부를 하고, 지난 15년간 ■■■■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냥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정말,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2018년 1월 7일 ― 코기데잇

작년 가을, 8개 서점에 처음으로 책을 입고하고 나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3355프로젝트’ 진행자 중 한 분에게 온 것이었다. 송구하게도 그들의 다음 프로젝트에서 인터뷰이가 되었다.
인터뷰 장소로 세 군데 정도를 제안하여, 그중 첫 번째였던 북스피리언스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사실 이전에 ‘미스피츠’라는 웹진과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미리 보내온 질문지에 답할 때는 조금 수월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활자로 옮겨질 때 ‘오해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혹시 후회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그런 걱정을 했다.
그래도 묘하게도 두근두근하며 이상한 기대감이 들었다.
프로젝트의 텀블벅 펀딩에 슬쩍 후원도 하고, 마침내 받은 책 속에 내 사진과 내가 한 말이 누군가의 노력과 글 솜씨로 엮여 나온 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묘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무엇보다, 3355프로젝트 진행자 두 분들의 셀프 인터뷰집도 읽었는데,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묘한 감동을 받았다.
어쩌면 그들이 ‘말티커’로 만들어 준 한마디에 가장 가까운 글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모습을 타인에게서 오랜만에 봤어요.”

2018년 봄, 비 오던 어느 날 ― ■■■

연구실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흔한 미팅이었고, 나는 여느 흔한 미팅에서처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다.

몇 가지 일로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는데,
가장 화나는 것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중 최고로 행복해 보이는 것은 교수지만.

졸업 때문에 불만이 많은 ■■■ 선배도 이 순간에는 참으로 얌전하기 그지없다.

그 자체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그만
교수에게 “오늘 체해서 저는 점심 먹으러 못 가겠네요”
라고 말하고 말았다.
■■■에서, ■■■■ ■■에서
내가 좋아하는 ■■■를 먹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다시, 그냥 다 그만두고 싶었다.

2018년 봄, 비 오던 어느 날 ― 코기데잇

결국은 점심에 학교 밖으로 우산을 들고 뛰쳐나왔는데,
점심을 먹을 데가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체했다는 핑계를 대고 뛰쳐나왔는데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다.

북스스에는 낮에 서점 일을 봐 주는 분이 계셨다.
여전한 고양이 사원 두 마리도 함께였다.

비가 내리고,
직원 분은 평소처럼 다정한 웃음을 지어 주었고,
뭉이는 무릎에 올라와 고릉고릉 대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고,
커피를 위에 들이붓고,
비가 내리고, 학교에서 성산동은 너무 멀었는데.

조금 살 것 같은 오후를 조금 보내다가,
인사를 하고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학교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조금 그쳤던 것도 같은 기분이었다.

폭언과 욕설, 검열의 페이지 ― ■■■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의 ■■는 정말이지 상도덕이라곤 없다.
게다가 ■■■는 정말이지 ■■■■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다.
■■■는 ■■ ■■인 것처럼 군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을 ■■■■ 사람이다.
씨발. 어떻게 ■■■ ■■■에 대해서 ■■■■거리며 ■■■■■ ■■■■■라고 할 수 있지?
개새끼들. 지금 ■■■하는데 웃음이 나오니? 그게 우스운 일이야?
■■■■■■■■. 영원히 정신 못 차리고 자빠졌네.

■■■는 아직도 ■■■와 ■■■■■■.
망할 ■. 평생 그러고 ■■■■■. 나한테 ‘너는 논문이 ■■■■■’라고 했는데 왜 ■■■■한지 생각해 봐라,
이 ■■■■. 그리고 나이 ■ 먹고는 ■■는 좀 그만해라, ■■■.

진짜 다 개 같은 놈들.
그냥 다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그것도 오늘.

■■■■. ■■■. ■■■■. ■■■■.

■■■■■■ ■■■■■■■■■.
■■■■■■■■ ■■■■■■■■■ ■■■■■■■■■ ■■■.

감사의 페이지 ― 코기데잇

정말 고마운 일이 많다.

재미있어 보인다며 처음 입고를 받아 준 서점 사장님,
처음 만난 낯선 제작자에게 유익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사장님,
서점에 앉으면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주신 사장님,
각자 서점을 지키는 수많은 서점지기님들…….

어릴 때부터 ‘저렇게 자꾸 손해 보는 일만 해서 어떻게 하냐’라는 말을 들으며 호구같이 많은 일을 당하던 내가, 먼저 누군가들을 위해 걱정하게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책이 안 팔릴까 봐, 안 팔리는 것 같아 진심으로 미안했던 날들마저도 감사하고 감사했다.
정말, 2~3년 전에는 너무 외롭고 슬프고 한없이 힘들어 괴롭던 날이 있었다.
더 이상 우울하고 외로운 날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견딜 만한 것은 낯설지만 고마운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는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도 아니지만, 심지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인사 외에는 다른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 사이지만, 편지 말미에나 남길 의례적인 말에라도 투박하고 단순한 진심을 담아 빌어 본다.

‘그럼,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일상의 낙 ― ■■■

사실 연구를 하며 고마운 사람도, 즐거운 일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어쨌든, ■■■이라도 사람하고 하는 일인지라 좋은 사람을 만나면 계속 ■■■을 해도 좋을 듯하고, 보람도 있을 것 같다는 자기기만적 생각마저 든다.
여전히 가까운 동료들은 ‘항상’이라 하긴 어려워도 대체로는 좋은 사람들이다.
Dr. ■■■■■는 좋은 사람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2년이다. 그는 ■■■■ ■■■ ■■■■ ■■■■■ ■■■■인데, 첫눈에도 선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몇 차례 한국에서, 혹은 외국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항상 친절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충분히 전하지 못할 만큼 내게 좋은 사람이었다.
Dr. ■■■■도 좋은 사람이다.
함께 일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할 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 주는 유쾌한 웃음이나 이야기들은 충분히 나에게도 즐거운 기분을 남겨 주었다.
동갑이어서 친해지게 된 ■■■■ 박사, 며칠 보지 못했지만, 너무 멋있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 박사, 그 외에도 다정하고 친절하고 멋있는 여러 사람들이 지구 어디선가 각자 자신의 삶을 지금도 살고, 또 살아갈 것이다.

그 와중에 무시무시한 일들 ― 코기데잇

사실 독립출판 제작자로 보내는 일상에서도 유쾌하지 않은 사람, 마음 힘든 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을 ■■■■■ ■■■■■, 또는 ■■■를 안 하는 등의 일들은 ■■■■에서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지만, 사실 여전히 실감할 수 없는 사소한 문제였다. 결과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마는 이야기였다.
그 와중에도 몇 가지. ■■■■에 ■■■의 이야기는 꽤 최근에 들은 것이다.
그곳 ■■■■■에 올라온 이야기가 무언가 이상하여 이전에 알게 된 ■■■에게 직접 메세지를 보내 물었다. 그렇게 듣게 된 이야기는 매우 단편적이지만, 무시무시했다.
■■■의 ■■■는 원래 ■■에 ■■■■■의 ■■■이었다. 그곳의 ■■■■■도 알고 있었기에 이전하여 새롭게 ■■■■를 맡을 때도 그런가 보다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 ■■■은 꽤나 사소한 문제부터 크게는 ■■■■■■ ■■■■ ■■■■■■■■까지 일으켰다. 마지막에는 ■■■에게 알리지도 않고 ■■■■를 ■■■, ■■ ■■■■■ 등의 행동을 하다 결국 ■■■ ■■■. 게다가 ■■■■에 올라오는 ■■■을 ■■■ 등 그동안 있었던 ■■■을 덮으려고 하였다.

어찌되었든지, 이제와서는 제작자 입장에서 한 차례 해결된 듯한 느낌이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구나, 그런 생각에 무섭고 한편 마음이 아팠다.
삶이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모두에게.

2018년 10월 어느 날 ― ■■■

가장 힘든 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쉽지 않게 살고 있다. 자꾸 바쁘다는 핑계를 둘러대는 일상이다.

OOO에 지원하고, 졸업 전에 써야 하는 학술저널 논문을 쓰고 있다. 학위 논문은 시작도 못했는데, 하고 떠올리니 마음이 어지럽다.
지원서에는 크게 적어야 하는 것이 3가지 정도이다.
‘현재의 프로필’, ‘과거의 연구요약’, 그리고 ‘미래의 연구계획’.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연구계획이다. 얼마 남지 않은 마감에도 제대로 시작조차 못했는데, 사실 하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종종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 이석원 씨가 썼던 마지막 일기를 떠올린다.
“미안해요.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그만두길 바라 왔어요.”
그의 문장을 오래오래 떠올릴 때면, 음악에 대한 기호와 상관없이 어딘가 마음이 저릿하다.
그리고 덤덤히, 노트북을 열고 적어 내려간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파일에 써 넣는 모든 단어는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떤 단어도 종래에는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아가야만 한다.
키보드가 내는 말발굽 달리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2018년 10월 어느 날 ― 코기데잇

『쓸데없는 대학원생 아무거나 설명서』도 『별 굽는 코기』도 이젠 재고가 없다. 재인쇄를 하기엔 바쁘다는 핑계를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둘러대는 일상의 연속이다.

첫 입고를 했던 ‘gaga77page’가 이사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곳에서 ‘편않’이 회의를 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도 앱을 켜고 익숙한 동네에서 한참을 돌고 돌아 서점에 도착했다.
‘편않’ 제작회의에는 이전에 만났던 편집자 분, 그리고 처음 뵙는 분들도 계셨다. 여러 핑계로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인사하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처음 독립출판을 시작하며 즐거웠던 기분이 무엇인지 그새 잊어버렸구나, 그런 생각을 불현듯 떠올렸던 것도 같다.
이날, 그 동안 재입고하면서도 마침 안 계셔 미처 못 만났던 사장님의 얼굴도 간만에 뵈었다.
무언가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었는데, 또 시간되면 놀러 오라는 그 한마디에 왠지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느지막한 오후가 되서야 도착한 성산동 낮섬에, 나는 하늘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그리고 덤덤히, 다시 노트북을 열고 적어 내려간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파일에 써 넣는 모든 단어는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 무의미한 시간의 흔적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는다고 부질없지만, 그럼에도 믿는다.

그러므로, 나아가야만 한다.

마지막 ― ■■■의 편지

■■■에게.

솔직하게, 벌써 이 마음을 털어놓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당신은 제가 ■■■ 때문에, 혹은 ■■■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돌이켜 보니, 그 오랜 기간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오히려 당신이었습니다.
무사히 졸업하여도, 졸업하지 못하여도,
조금씩 용기를 내어 하던 일을 마저 하여도, 전혀 다른 일을 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더라도
그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사실 ■■■■■■■■■기로 결심했습니다.
꽤 오래 생각했고, 구체화한 것도 사실 오래된 계획입니다.
누군가는 제가 굳게 결심했다고 믿고, 누군가는 아직 미련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이 편지에 검게 가려진 진심이 드러날 때쯤에는,
어느 쪽인지 결정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쯤에는 지금보다는 더 무탈하시길.
해결되지 않은 이 괴리 속에서도 무심하고 투박하게 기원합니다.

마지막 ― 코기데잇의 편지

모든 분들에게.

부끄럽지만, 벌써 이렇게 편지를 쓰자니 매우 부끄럽습니다.

고작 1년이 지났고, 고작 적은 부수의 책 두 종만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즐겁게 책을 읽어 주고, 책이 재미있고 흥미롭다고 말해 준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더불어 지난 1년 동안 새로 만난 분들, 저에게 기쁨을 나누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혹시 졸업 후 탈출기를 써서 전해드리게 되어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어도,
전혀 다른 것을 만들거나, 아무런 책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던 것 같습니다.
돌아온 과거에서 많은 후회와 실수를 지울 수 있었음에도 불과 1년 전만 해도 몰랐던 사람들, 몰랐던 공간,
그땐 아직 만나지 못한 고양이, 강아지들의 모습까지 눈에 밟혀, 다시 만나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덜컥했습니다.
정말 모두, 진심으로,
항상 행복하고, 바깥의 시간보다는 느리고 길게,
오래 보고 싶다는 문장만 남기고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