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일의 신비

곽멍

원고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처음은 아닌 정도라 신기했습니다. 내게? 왜?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죠. 반면 저는 꽤 오래전부터 편않을 알고 지냈습니다. 책장을 살펴보니 3호와 7호가 꽂혀 있네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먼발치에서 응원을 보내곤 했어요. 출판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모의하는 것만으로도 응원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응원을 넘어 제게 편않은 그냥 멋진 곳이었어요. 도움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출판사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편않에서 연 ‘예비출판인의 밤’ 행사에 함께한 경험입니다. 모든 게 막막하고 망연히 느껴지던 시절, 비슷한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편않에서 펴낸 『격자시공: 편않, 4년의 기록』 단행본 펀딩에 참여한 경험도 있고요.

무얼 써야 할지도 모른 채, 해 보고 싶다고 답변을 보냈습니다. 곧 환영의 말과 함께 주제와 분량을 안내하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주제는 무한대, 혹은 우리의 팔자. ∞호라서 주제가 무한대인가, 그런데 팔자는 뭐람. 무한대 기호가 숫자 팔 자를 옆으로 누인 모습이라서……? 쿡 하고 헛웃음 쳤다는 사실을 애써 밝힙니다. 이런 거 좋아하거든요.

방금 이야기했듯 무한대 기호는 숫자 8자를 옆으로 눕힌 모습입니다. 저는 동그라미 두 개를 이어 붙인 것보다는 양옆으로 조금은 잡아당겨 늘린 듯한, 꽈배기 반죽을 닮은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위로 구슬 하나가 8자를 그리며 열심히 구르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아마도 어디선가 본 애니메이션이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는 탓이겠지요. 왼쪽 위로 올라간 구슬이 곡면을 따라 아래로 흐르고, 다시 오른쪽 위로 솟구친 뒤 다시 아래로 흐르는…… 무한히 계속되는…….

요즘 붙잡고 있는 원고를 두고 무한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에라스무스 평전을 편집하고 있어요.(『편않』 ∞호가 발행될 즈음이면 이 책 역시 출간했을 테니 정보를 밝혀도 괜찮겠지요?) 이 원고를 보며 어떤 책은 정말 무한히 살아남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인물 에라스무스의 이야기를 19세기 말에 태어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만 두 번째 재출간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나치를 피해 망명했다는 작가의 소개 글을 읽을 때나 사실 확인을 위해 이야기 속 르네상스 시대 인물들의 정보를 찾다 보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고작 백 년도 채 살지 못할 내가 매만지고 있는 이 이야기의 수명은 정말이지 길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이 글이 제 손에 닿기까지 연루된 사람들을 떠올려 보곤 하는 것이죠.

오래된 책일수록 그 과정을 생각하면 묘한 감정이 몸을 휘감습니다. 당장에는 외국어로 된 원고를 우리말로 옮겼을 번역가와 이를 책으로 엮어 낸 편집자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 멀리 외국에서 글을 책으로 만들어 낸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죠. 그런데 그게 엄청나게 오래전 일이라면, 정말이지 ‘신비하다’라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당장에 나치가 득세하던 20세기 초는 백 년 전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르네상스 시대는 오백여 년도 더 되었지요. 천 년, 이천 년도 더 된 책들도 있습니다. 지금의 종이로 된 꼴을 갖추기 전, 점토판이나 죽간, 양피지, 파피루스 등에 쓰인 이야기가 살아남아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다는 건 아무리 봐도 신비롭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길가메시 서사시, 그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800년 즈음에 제작된 바빌로니아 점토판이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 점토판에 이야기를 새기던 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자신이 새겨 넣던 이야기가 옮기고 옮겨져 2022년 한국 땅을 딛고 서 있는 누군가가 읽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까마득한 기분이 들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무한이라는 수를 상상했을 때처럼요.

곰곰 생각해 보면 책이라는 매체에는 신묘한 힘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생각, 경험, 느낌을 활자로 붙잡아 엮어 두고, 어느 누군가는 그걸 굳이 시간 내어 읽어 내려가는 이 활동을 오래도록 인류는 해 오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생각해 봅니다. 특히 책은 행동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글자로 적혀 있는 게 뭐라고 몸을 움직이게 되는 걸까요. 너무 책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요? 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고 청탁을 수락하고 이십여 일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하던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책 때문이었습니다. 곧 마감인데, 8월까지는 써내야 하는데, 그런데 대체 무슨 주제로 써야 한담, 악악, 하던 주말 아침, 『노력의 기쁨과 슬픔』(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다른, 2021)을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첫 장 ‘계속하기’에는 글 쓰는 팁이 담겨 있더군요. “글쓰기란 계속해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 아니라 처음에 불완전하게 썼던 문장을 다음 문장으로 계속 다듬어 가는 과정이다. (……)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오히려 일이 쉬워진다. 다음 문장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첫 문장의 불완전함에 기대야 한다.” 이야, 박수를 치며 읽었습니다. 그렇게 불완전한 첫 문장을 쓰고 용케도 여기까지 잘 써 내려 왔습니다. 이게 책의 기묘한 힘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런 작은 일뿐 아니라 때때로 거대한 일을 이끌어 내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며 묘한 감정을 느낀 순간을 하나만 더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편집자의 꿈을 품게 된 건 성인이 된 이후였습니다. 어딘가에 몇 번 팔아먹은 이야기인데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난 뒤, 군인일 때 일입니다. 자주 가던 책방에 전역 소식을 알리자 책방지기께서 나가서 무얼 할 건지를 묻더군요. 사실 그때까지 뭘 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푸념 섞인 답변을 내놓았지요. 책방지기께서는 ‘책 좋아하는 것 같으니 출판사에서 일하면 되겠네요’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당장에 출판사 관련 책, 정확히 말하면 편집/편집자와 관련된 책을 사 읽었습니다. 모 출판사 대표가 쓴 책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어떤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가슴이 뛰진 않습니다. 심박수가 높으면 건강에 해로워요). 전역하고 있는 돈을 끌어모아 서울에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7주 과정의 출판학교에 등록하고 나니 가진 돈이 똑 떨어졌습니다. 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했어요. 낮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와플을 굽고 컵을 닦았습니다. 그래도 재밌었어요.

올해 초, 제가 편집한 책의 작가님과 함께 그 책방에서 북토크를 했습니다. 위 일화를 독자분들 앞에서 이야기하니 책방 사장님은 ‘어이쿠, 제가 어려운 길로 인도했다’며 머쓱해하시더군요. 하지만 강원도 바닷마을에 위치한 작은 책방에서의 그날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뿌듯했어요. 뿌듯했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좋아하는 작가님과 좋아하는 책방에서 내가 만든 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벅차다’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책에서 의미를 찾고, 책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책 만드는 일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책 짓는 일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걸 두고 팔자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다시 무한대 기호를 떠올려 봅니다. 두 개의 원 가운데 맞닿는 부분, 그곳에 책을 놓고 이쪽으로, 다시 저쪽으로, 맴맴 도는 게 출판인 팔자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출판인분들이 그러하겠거니 생각합니다. 이러나저러나 삶의 중심에 책을 두는 분들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책 만드는 일은 무한대 기호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일이라는 점에서요.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고, 알리고, 팔고, 다시 만들고, 알리고, 팔고. 무한히 반복되는 책 만들기의 루프. 그 결과물을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껏 인류가 만든 책 속 글자를 모두 합하면, 아마도 무한에 근접하지 않을까요? 계속 더해질 테니, 아마도 그럴 겁니다. 혹시라도 주제에 맞춰 ‘어거지’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일 겁니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이 어떻게든 쓰는 법은 알려 주었지만 재밌는 글을 쓰는 팁은 말해 주지 않더군요.

어쨌든, 저는 출판 일이 꽤나 즐겁습니다. 3년 차 편집자라 아직 겪은 일이 적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때때로 시공을 초월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신비한 일이죠. 너무 낭만적으로 썼나요? 글쎄요, 얼마 전 읽은 글을 떠올려 보면 우리 출판인은 충분히 그런 능력을 가진 듯합니다. 지난여름 기획부터 출간까지 두 달 만에 해냈다는 한 출판인의 글을 접했습니다. 작가분이 원고를 마감하고 3주 만에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자랑 섞인 글을 읽으며 담당자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촉박한 기한 내에 책을 펴내기 위해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을, 일정을 맞추기 위해 책과 연관된 인물 사이를 부단히 오갔을 그를 떠올려 봅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일했을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만난 출판인분들은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다는 분이 많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뛰어든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바람이 있다면, 이 업에 함께하는 분들이 좀 더 행복하게 일했으면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조금 더 팔자 좋게, 이 신묘한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게 지면을 허락해 준 편않의 소개 글을 살펴봅니다. 늘 불황이라는 출판계, 그렇다면 아마 우리의 팔자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댄다면, 작당하고 모의한다면 조금은 팔자가 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는 어쩌면 제가 편않을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해 온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쪼록 책 사이를 맴도는 우리의 무한한 여정에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자주 찾아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일에 조금 더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꽤나 신비롭고 멋진 일을 하는 존재들이니까요.

곽멍 작은 출판사에서 온갖 책 만들고 있는 3년 차 편집자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