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우·지다율
세로운 시간: 2018년 3월 3일, 2019년 11월 8일, 17일, 28일, 12월 7일, 25일, 31일
가로운 공간: 각자의 집, 슬런치팩토리, 이리까페
교차한 우리들: 「영향력」의 김정애와 은미향, 편않의 김윤우와 지다율
‘밤의출항’과 각 편집인, 그리고 「영향력」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향력」 편집인 김정애입니다. 「영향력」을 만들며 (「영향력」 출간에 맞춰 겨우) 시를 쓰고 있어요. 편집인이자 한 가정의 엄마로, 아내로, 시급제 파트타임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영향력」은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 문예지입니다. 누군가 작가라고 호명해 주지 않으면, 권위 있는 상을 받지 않으면, 매일 글을 쓴다 하더라도 작품을 발표하기 어렵고, 스스로 작가라고 부르기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키친테이블라이터’라는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건넵니다. 그리고 그런 키친테이블라이터의 글을 투고받아 독립출판의 형태로 발행하는 문예지입니다.
「영향력」은 5호까지 따로 출판사 없이 출간했는데 6호부터는 ‘밤의출항’이라는 소규모 출판사를 통해 발행했어요. ‘밤의출항’이라는 이름은 은미향 님이 깜깜한 밤, 작은 선착장에서 배를 묶어 둔 밧줄을 푸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지은 이름입니다. 배를 띄우고, 배에 오르고 항해를 시작해 얼마나 멀리, 오래 머물지 잘 모르지만 그 사람의 모습이 우리가 ‘키친테이블라이터’라고 부르는 사람들처럼 느껴져서요.
2016년 2월, 「영향력」 창간호가 출간되었습니다. 유명 작가의 표절 논란, 문단 내 성폭력 문제 등이 터져 나왔고, ‘일급’ 문예지들의 폐간과 신생 문예지의 탄생, 그리고 기존 문예지의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입니다. 창간호 출간 텀블벅 스토리에서, “「영향력」은 전통 문예지를 지향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문예지를 평소에 읽으셨나요? 문예지에서 느낀 어떤 갈증이 있었나요? 혹은 어떤 저항하는 마음이 있었는지요? 「영향력」의 첫 마음이 궁금합니다.
저는 1호에 작가로 참여했고, 2호부터 편집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작가로 참여하고 독자로 읽은 처음 「영향력」은 기존 문예지와는 다르게 가깝게 느껴졌는데, 제가 작가로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아마 그렇게 느꼈을 것 같아요. 지면 가득 채운 글자들을 쏟아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요.
2017년 4월 「영향력」 5호가 발간되었고, 같은 해 7월 6호가 발간되었습니다. 3개월 만에 텀블벅 스토리의 톤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단단해졌다고 할까요? 6호 텀블벅 스토리를 “시작부터 대놓고 누적 적자를 계산해 본다”라고 시작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9호 발행 즈음 밝히셨지만, ‘밤의출항’ 출판사를 등록한 것도 이 무렵이지요. 일련의 흐름이 ‘밤의출항’ 편집진의 어떤 분기점으로 읽혔습니다. 당시의 고민과 감정이 궁금합니다.
「영향력」을 맨 처음 기획해서 미향 님과 창간호를 만드신 분이 4호까지 하고 그만두게 되었어요. 5호 준비를 시작하려던 참이었어요. 당황스럽기도 했고 걱정도 되고 여러 감정이 오갔던 것 같아요. 더 단단해져야겠다, 더 좋은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필연적으로 따라왔고요.
처음에 「영향력」을 만들 때 두 분이 ‘적어도 4호까지, 사계절은 책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일 년이라는 사이클을 돌아 발행인 한 명이 빠지는 상황에서 남은 우리 두 사람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고 설계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출판사의 형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상의 끝에 ‘밤의출항’을 출판사로 등록했어요.
미향 님과 저 둘이서 처음 만든 책은 5호지만 원고 모집부터가 책의 시작이라고 보면 본격적인 새 출발은 6호로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그런 상황을 거친 후, 저희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결연한 의지들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향력」 10호 “오늘은 사랑해”라는 글에서 은미향 선생님은 「영향력」을 만드는 선생님의 본심이 별로 싱싱하거나 신선하지 않음을 고백하셨습니다. 저희 ‘편않’도(적어도 저, 지다율은…) 그럴 때가 종종, 아니 요즘엔 자주 있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현재 투고로 만드는 마지막 「영향력」 12호를 준비 중이시고, 13호를 끝으로 「영향력」의 활동을 맺으시려는 것으로 압니다. 13호는 어떻게 이뤄질지, 살짝만이라도 알려 주세요.
12호까지 투고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만들었습니다. 작가 풀이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생각한 4호부터 기존 「영향력」 작가들에게 주제를 정해 청탁을 드려 투고+특집으로 지면을 꾸렸어요. 13호는 기존 작가들에게 청탁을 드려 만들려고 합니다. 기존 「영향력」 작가들의 작품만으로 채워질 거예요.
그리고 (지다율) 개인적으로는 13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궁금했습니다. ‘13인의 아해’가 질주하는 이미지가 떠올랐고요. 어쩌면 그것은 예정된 것이었을까요? 발행인들께서는 이를 예감하셨는지, 아니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셨(시)는지 알고 싶어요.
「영향력」은 두 사람이 만들고 있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서로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영향력」 발행인·편집인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침내 들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미향 님께 말씀을 드렸어요. 10호가 출간되고, 단행본 『우리는 우리가 읽는 만큼 기억될 것이다』가 출간되고, 11호 준비를 앞둔 시점이었어요. 마지막을 함께 고민했고 원고 모집 공고가 나간, 복간본 시리즈가 끝나는 12호를 잠정적으로 마지막 호로 정해 두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복잡한 심경과 아쉬움이 많이 크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미향 님이 13호를 제안하셨어요. 에필로그처럼 폐간호를 만들자고. 그리고 질문하신 것처럼 미향 님은 13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신 것 같아요. 저는 13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었다기보다 제가 「영향력」 ‘마지막’의 처음 문을 열었다면 미향 님이 ‘마지막’의 마지막을 기획하시는 것에 따르고 싶었어요.
그동안 마지막을 딱히 예감하거나 염두에 두며 「영향력」을 만들지는 않았어요. 막연하게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싶은 정도였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기분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분명하게 다가오는 마지막을 직감할 수 있었어요.
발행인이자 편집인으로서, 어떤 가오(각오 아니고 가오 맞습니다…)로 임해 오셨나요.
어떤 액션은 취했겠지만 가오를 드러낼 일도, 드러낼 이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균형’이에요. 「영향력」 편집인으로 책을 만들고 시를 쓰는 저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정체성이었어요. 동시에 엄마라는 정체성과 파트타이머로 노동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도 소중했어요. 여러 ‘나’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삶이 지속되길 바랐어요. 치열하게 이뤄지는 그 조화로움이 저를 행복하게 했거든요.
「영향력」은 매 호 제작 과정에 ‘편집진의 편집 및 의견 전달’과 ‘작가분과의 의견 교환 및 수정’ 단계를 둡니다. 투고를 하면 「영향력」 편집인이 함께 읽고, 그 작품을 「영향력」에 싣고 싶은지 아닌지를 고민하신다고도 하셨는데요. 이는 일종의 ‘편집’이 들어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편집을 할 때 어떤 질문을 가장 중점에 두시는지요? 「영향력」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편집 방침이나 방향이 있는지요? 「영향력」에게 편집이란 무엇일까요?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진심’이 아닐까 해요. 진심이 잘 전달된 글인가. 편집하는 내가 진심으로 이 글을 대하고 있는가. 독자에게 진심이 잘 전달될까. 제가 편집에 관해 이러저러하다는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편집자는 작품이 지면에 나오기 전 마주하는 최초의 독자인 만큼 반가운 마음으로 기쁘게 읽는 것에서 편집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는 편집자로서 관련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출하게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제가 「영향력」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초반에는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렇지만 미향 님이 계셔서 지금은 처음보다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편집해요. 정말 귀신처럼 어색한 표현이나 비문을 골라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조금 더 나은 텍스트로 변모시켜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물론 이 부분은 미향 님도 중점을 두시는 부분일 것 같은데요. 그냥 진심으로 작품을 읽고 또 읽어요. 이 ‘진심’이란 게 애매하고 다른 편집자는 진심으로 읽지 않는다는 표현은 아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읽고 고민해요. 그게 다는 아니지만 창간호 작가로 참여했을 때,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사실이 그동안 홀로 써 왔던 저 자신에게 가장 큰 격려이자 계속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편집본을 보내 드리면 그런 피드백을 많이 해 주세요. 꼼꼼하게 봐 주셔서 고맙다고, 자신의 글을 이렇게 열심히 봐 주셔서 고맙다고.
두 분께서는 꾸준히 글을 발표해 오신 작가이시기도 합니다. 앞으로 개인적인 집필에 더욱 열중하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어떤 글은 쓰기 싫으세요?
저는 태생적으로 게으른 건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시 외에는 공식적인 어떤 글도 쓰기 싫어요. … 그렇지만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이런저런 글도 써야 한다면 써야겠지요. 감사하게도 ‘고스트북스×샌드위치페이퍼’에서 발행하는 「미미매거진」에 에세이나 칼럼 등을 청탁받아 몇 번의 원고를 쓴 적이 있어요. 청탁받은 것에 너무 기쁘면서도 쓰는 게 두려웠어요. 그런데 그건 싫다기보다는 나의 한계를 아는 내가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조금 더 잘 쓰고 싶은 몸부림이란 걸 알아요. 조금 더 즐기며 글을 쓰고 싶은데 그건 욕심일까요? 만약에 정말 시를 잘 쓰게 되어서 누군가가 제가 쓴 시를 읽고 저를 궁금해한다면, 제가 쓴 시를 읽고 저를 알게 되는 때가 온다면, 정말 시만 쓰고 싶어요.
무엇보다 쓰면 안 되는 글과 쓰기 싫은 글을 잘 구분하며 쓰고 싶어요.
독립출판 씬에서도 문예지(또는 문학잡지)를 표방하는 시도들이 많이 보입니다. 혹시 특별히 눈여겨보시는 독립문예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다양한 문예지가 많이 나오는 게 반갑고 있는 힘을 바닥부터 끌어모아 응원해 주고 싶어요. 그런데 폐간호를 앞두고 있으니 이미 폐간 혹은 휴간한 독립지 생각이 많이 나요. 「영향력」 초기에 함께 활동했던 「더 멀리」, 「소녀문학」, 「젤리와 만년필」. 그리고 독립문예지는 아니지만 「뭐뭐링」도 꼭 챙겨 읽었던 잡지예요. 폐간호를 내고 나면 천천히 살펴볼까 해요. 투고도 해보고요.
요즘 읽는 책은 무엇인가요? 혹은 최근에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최근에 완독한 책은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 『해가 지는 곳으로』 두 권이에요. 제가 사는 지역에 있는 서점 ‘책방이층’에서 최진영 작가의 북토크가 있었는데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어요. 아쉬운 마음으로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고 짧은 숨을 몰아쉬어 가며 읽었어요. 누군가는 두 책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아주 멀리 있는 얘기라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발치까지 바짝 따라온 지금과, 저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였어요.
저는 생각하지도 못할, 쓰지 못할 글을 쓰는 작가들을 보면 예전에는 거기에 제가 낄 틈이 전혀 없어 보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글들을 읽으면 각자의 시선이 너무나 다양해서,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부딪히는 지점이 누구에게나 있어서 ‘내 시선도 던져 보아도 되겠다. 나도 열심히 써도 되겠다’는 위안 같은 게 생겨요.
열린 회의를 마치고 은미향 님을 만나기로 한 식당까지 걸었다. 상수역 4번 출구 아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하고 고요했다. 주택만 늘어선 좁은 골목을 걸으며 이런 곳에 정말 식당이 있을지 조금씩 의심스러웠을 때, 식당이 나타났다. 페스코, 락토, 오보, 비건까지 단계별로 채식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이었다. 각자 메뉴 하나와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채식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생각은 해 왔는데, 『아무튼, 비건』을 읽고 결심했어요.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더라고요.”
김윤우는 채식을 하게 될까 봐 채식을 안 한다고 했다.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 남은 음식은 먹기가 힘든데 사실 이게 비겁한 거죠.
은미향 님은 2018년 3월, ‘시시때때 특별활동’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으며 그때 다니던 회사를 여전히 다니느냐 서로 물었다.
“라디오 작가로 일했고, 이후로 이직을 자주 한 편이에요. 지금 다니는 회사가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가장 오래 다닌 회사가 되었네요.”
은미향 님의 맥주는 천천히 줄어들었다. 지다율은 이미 한 잔을 다 마셨다.
“제가 술이 센 편은 아닌데 굉장히 천천히 마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술자리에서도 늦게까지 안 취하고 남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술이 엄청 세 보일 텐데, 아니고, 천천히 마시는 편.”
그러고 보니 그때, ‘시시때때 특별활동’에서 「영향력」과 「편않」은 독립문예지로 함께 소개를 부탁받았다. 마이크를 잡은 지다율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편않」은 문예지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었다. 「영향력」은 이미 그때 창간호를 발행(2016년 2월)하고도 2년이 지난 시기였고, 「편않」은 0호를 막 발행(2018년 1월)했을 때였다. 약 4년간 「영향력」은 총 12호(2019년 11월)까지 발행되었고, 13호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런데 왜 12호, 그리고 13호인가요?
“살펴보면 12라는 숫자가 우리 주변에 굉장히 많아요. 특히, 시간에서 12진법을 많이 쓰잖아요. 시간이나 달(月)도 열둘로 나누고, 동양에 12간지가 있고 서양에는 별자리가 12개로 나뉘죠. 그래서 13호의 의미에 12까지의 사이클이 모두 마무리되고, 마지막을 한 번 더 연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12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12+1의 의미로요.”
그냥 조용히 폐간 혹은 휴간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투고로 만드는 마지막 「영향력」”이라고 마지막을 선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에 관해 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사실 현재 이 원고를 쓰고 있는 김윤우는 이런 발언을 실제로 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김정애 님이랑 정말 잘 맞았어요. 2호부터 김정애 님과 같이 「영향력」을 만들었는데, 정말 서로 편하고 잘 맞았어요. 성격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 제가 이것저것 일을 만들면 정애 님이 잘 정리해 주셨죠. 그런데 11호 준비를 앞뒀을 무렵, 정애 님이 영향력을 계속하기 어렵겠다고 먼저 말했어요. 그리고 저도 자연스럽게 「영향력」의 마지막을 생각했죠. 혼자서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계속 이어 나가기보다는, 함께 마무리를 준비해야겠다고….”
은미향 님은 김정애 님이 답변한 서면 인터뷰의 질문들이 인상적이었다고 불쑥 말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영향력」을 만들던 추억을 더듬게 되었다고.
“독립문예지를 발행하는 분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고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영향력」은 한 번도 지원금 사업에 신청한 경험 자체가 없었어요. 제작비 정도를 텀블벅 후원을 통해 마련해 왔고요. 그래서 고료는 정말 최소한의 성의 표시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독립문예지들의 고료 수준을 들어 보니 「영향력」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거예요. 고료만으로요.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나요. 물론 어딘가에서 지원금을 받아 고료를 충당했다면, 그 지원금이 끊겼을 때 같은 수준의 고료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거고 「영향력」을 지속하기도 어려웠겠죠. 차츰 고료를 올리기는 했지만 많은 고민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
“제작만큼 물류도 쉽지 않았어요. 「영향력」 발행 부수가 따로 물류창고를 마련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집에 있는 방 하나를 창고처럼 썼어요.”
「영향력」은 매호 투고를 받는다. 조심스럽게 투고로 들어오는 원고의 양을 물었을 때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라 김윤우와 지다율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편집자 그리고 발행인으로서 원고를 살피시잖아요. 이에 대한 저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불편하게 느낀 분도 한두 분 계셨던 거 같지만, 대부분 작가님들이 다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글을 오래 써 왔다고 해도 상세한 피드백을 받는 경험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았어요.”
또, 두 분은 소설과 시를 쓰는 작가기도 하시잖아요. 작가로서 편집자를 겪은 경험은 있으신가요?
“사실 많이 없어요. 제 글을 가장 깊게 읽어 주시는 분은 정애 님이시죠. 그리고 어머니. 그리고 몇몇 친구가 있어요.”
식사가 끝났다. 어느새 식당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들어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다율은 시간이 괜찮다면 근처에서 차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멋진 카페가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이리까페였다. 잡지 「월간이리」를 비치했던.
“이 동네 오면 항상 가는 코스예요. 이 식당에서 밥 먹고, 이 카페에서 차 한잔하고.”
그러나 우리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메뉴판에는 뱅쇼가 있었고, 우리는 모두 뱅쇼를 한 잔씩 주문했다. 책과 레코드가 빽빽이 꽂힌 책장이 있었다. 벽에는 예술가들의 흑백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김윤우는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많았다. 그러나 은미향 님과 지다율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윤동주, 기형도, 노무현, 랭보……(나머지는 몰라서 못 적는다). 죄다 남자였는데(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프레임을 꽉 채운 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도 안 유명한 사람이라서 저기 걸려 있는 게 의외였는데, 안토니 앤 더 존슨즈라는 뮤지션이에요. 남자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죠. 음악도 좋아요.”
지다율은 어려운 이름을 몇 번이고 확인했고, 꼭 들어 보겠다며 그 이름을 메모해 두었지만, 아직까지는 듣지 않았다. 어쩌면 영영. (나중에 검색해 보니 그 사진의 주인공이 엘리엇 스미스라는 게시물이 몇 있었는데, 음악을 잘 듣지 않는 지다율에겐 역시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역시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뱅쇼는 머그에 나왔다. 올해 첫 뱅쇼였고 아주 진했다.
“요즘에는 스쿼시를 하는데 정말 좋아요. 시간을 꼭 비워 두고 챙겨 가는 편이에요.”
저는 수영을 합니다. 김윤우는 우쭐거리는 마음을 숨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저는 골프와 클라이밍을 하는데, 한 주에 한 번씩은 하려고 노력해요. 지다율은 그러나 지키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리까페는 이상한 곳이었다. 함께 식사했던 채식 식당보다 사람이 더 많았고 대부분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나 그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음악 소리도 크지 않았다.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전달되고 전달받는 곳이었다.
“내일은 중요한 콘서트가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 중요한 콘서트에 간다는 주변의 친구 얘기와 이리까페 냅킨에 그려진 작은 그림과 이성복 시인과 오래전 학교를 다니던 때와 지나간 직장들과…….
카페를 나와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었다. 건조했고 가끔 바람이 부는 겨울날이었다. 합정역은 집에 돌아가려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사람들 틈으로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