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팔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편집자로 일하며 늘 품었던 고민이다. 편집의 일을 기능별로 나누자면 기획, 원고 수급, 교정교열, 카피 개발, 마케팅 협업 등이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3개 이상 업무를 평균 이상으로 해내면 일을 잘하는 편집자일까? 어떤 편집자는 기획을 잘하는데 교정교열이 약하고, 어떤 편집자는 카피는 잘 뽑는데 저자한테 원고를 받아 내지 못해 늘 편집 일정이 밀리고…… 게임 속 캐릭터처럼 편집자도 ‘일’이라는 능력치를 수치로 측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수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데 그 수치란 누가 평가하는 건가? 사수? 대표? 동료 편집자? 아니면 독자? 또는 이른바 ‘출판’을 ‘평론’하는 선생님들?
대표의 잔소리 빈도는 높아지고, 반대로 초판 부수는 점차 줄어드는 현 시국에, 편집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보편적인 잣대는 ‘책의 판매량’인 것 같다. ‘저 편집자 뭔가 허술해……’라는 다른 팀 선배의 섣부른 지적에는 1도 공감하지 않지만,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떠나서 아무튼 ‘책임 편집’이 붙은 책의 출고량이 몇 자릿수인지에 따라, 맨 앞자리의 숫자가 몇인지에 따라 그 편집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던 편집자가 알고 보니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그 책을 편집한 담당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늘 자신만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개성 강한 편집자 소리를 듣던 동료가 실은 N년 동안 1만 부를 넘긴 책을 1권도 만들어 내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종종 놀라곤 한다. 역시 편집자는 책으로, 아니 숫자로 말하는 직업인가?
하지만 우리는 안다. 편집자의 모든 일이 매출과 판매 부수라는 수치로 환산될 수 없다는 것을. 타인의 남은 수명을 볼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 있다. 그 주인공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편집자의 등판에 그가 지금까지 작업한 책들의 모든 판매량이 다 합쳐진 숫자가 적혀 있다면? 2200번 버스를 기다리며 줄 서 있는 편집자들 등에 네 자리 숫자부터 N자리 숫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숫자들이 적혀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럼 그 숫자를 큰 순서대로 정렬하면 편집자의 능력을 정확히 줄 세울 수 있는 것일까? 이게 얼마나 비과학적인 ‘뻘소리’인지 다들 잘 알지만, 놀랍게도 수많은 출판사들이 연봉 협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정량적 평가 기준이 연간 총 매출액과 총 판매 부수다. 나는 그 정보가 해당 편집자의 1년 노동을 평가하는 단서 중 하나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올리기 위해 수많은 편집자가 야근을 일삼고 주말까지 반납해 가며 일하는 것을 잘 안다. 이른바 냈다 하면 팔리는 저자를 섭외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감정 노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에 대한 보상을 보장하는 시스템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마치 일 잘하는 편집자와 일 못하는 편집자, 혹은 성실하고 열정적인 편집자와 게으르고 무기력한 편집자를 가르는 만능키로 여기는 문화는 좀 어리숙한 것 같다. 책의 판매량, 즉 숫자를 연봉 협상의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는 것은, 편집자가 그만큼 더 오래 고민하고 더 많이 일했다는 증거다. 따라서 덜 오래 고민하고 덜 많이 일한 편집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의 책의 운명에 담당 편집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지만, 수만 권 이상 팔리는 책은 그 판매량만큼 예상치 못한 다양한 변수가 뒤섞여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을 타기 마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편집자가 투여한 만큼의 노동력을 쏟아부었지만, 바로 그 ‘어떤 흐름’이 삐딱하게 흘러 초판도 다 털지 못하고 사장되는 책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판매량과 노동량이 비례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판매량이 높지 않은 책을 만들어 온 편집자를 불성실하고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판단이다.
그래서 어떤 중간관리자들은 판매량이나 매출을 떠나서 그냥 그 편집자가 얼마나 야근을 많이 하는지, 얼마나 일에 열성을 보이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사무실을 둘러보면 가끔 고정적으로 남아 야근을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반복하는 팀이 있다. 책 한 권, 한 권에 진심을 다 담는 것을 넘어서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게 회의를 하고, 마치 출판사에서 그 책 하나만 만드는 것마냥 유난스럽게 책을 만드는 팀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유별난 팀, 개인 중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는 팀, 개인이 더러 있긴 있다. (그러나 아닌 팀, 개인도 있다.) 이들이 실제로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일을 대하는 진정성과 태도에서, 시끌벅적한 편집자와 묵묵한 편집자 간의 차이를 느껴 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모든 편집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책을 만들고 있고, 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며 마감 직전까지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그럼에도 몇몇 간부들은 어떤 편집자가 유난히 조용하다고, 뭔가 자기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고, 맨날 정시만 되면 퇴근하고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은근히 깎아내린다. 그들은 그것이 개별 편집자를 닦달함으로써 조직의 성장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되레 피평가자의 근무 의욕을 낮출 뿐 그들이 기대하는 효과는 전혀 달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편집자를 평가할 수 있을까? 연차가 높은 편집자가 연차가 낮은 편집자보다 일을 잘할까? 물론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 정말? 우리는 그저께도, 어제도 연차가 편집자의 유능함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로 위 사수를 보며, 옆 사무실 상사를 보며, 건너 출판사의 선배를 보며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출판사 평판 조회 카톡방에는 일 못하는 상사 때문에 퇴사한다는 에피소드가 일주일에 서너 건씩은 꼭 올라온다. 숫자도, 시간도 편집자의 유능함을 측정할 수 없다는 뜻은, 달리 말하면 숫자도, 시간도 편집자의 유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력 5~6년’ 대리급 편집자가 ‘경력 1~2년’ 주니어급 편집자보다 오히려 일을 더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고, 어제 5만 부짜리 책을 기획한 편집자가 내일도 5만 부짜리 책을 기획할 확률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저 가능성만 존재할 뿐이다.
자, 그래서 바로 출판사들은 면접이라는 것을 본다. 서류에 적힌 각종 숫자와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는 구직자의 ‘유능함’을 측정할 수 없으니 직접 말을 섞어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 그 무엇보다 정확하고 오차가 발생할 여지가 없는 팩트를 놔두고, 순전히 주관이고 편견에 왜곡될 수 있는 영역인 면접으로 평가의 불완전성을 보강하겠다니? ‘두 가지 평가 방식을 동원해 객관성과 주관성을 동시에 잡겠다’는 말인데, 과연 이 완벽해 보이는 인사 평가를 통해 채용된 인원이 장기 근속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짧으면 30분 남짓, 길어 봤자 1시간 내외의 면접 과정 동안 과연 생전 처음 보는 피평가자의 유능함, 즉 ‘입사 후 6개월 안에 신규 계약을 3~4건 따내고 나머지 6개월간 그중 하나가 1만 부 정도 팔려서 인건비를 충당하고 그 후 2~3년 내에 자리를 잡아 온전히 자기 몫을 해낼 편집자(!)가 될 확률’을 판별해 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조심스럽게 단언하자면, 대다수의 면접관들은 눈앞에 앉은 구직자의 말하는 태도와 뉘앙스, 즉 비언어적 요소를 보고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지 않을까? ‘말하기’ 능력도 편집의 일부라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것이 ‘오, 이 사람 뭔가 느낌 있는데?’라며 채용을 결정하는 방식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애초에 평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가할 수 없는 것을 두고 평가하려고 하니 난처할 수밖에. 나는 요즘 유능함에 대한 압박을 자주 느낀다. ‘10년 차 편집자면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이제 내년이면 팀장인데 아직도 최종교에서 이렇게 오류가 많이 나오면 어떡하지?’ ‘내가 과연 이 연봉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췄을까? 내년 연봉 협상 때는 올해 이맘때보다 매출이 더 높아져 있으려나?’ ‘내가 만약 밖에 나가 혼자 일한다면 저자들이 여전히 나를 믿어 주고 일을 맡겨 줄까?’ ‘나는 업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일까?’ 예전에는 이 업계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이제는 자본주의 세계에 속하는 노동자이자 피고용자로서 계속해서 ‘더 높은 성과’를 조직에 안겨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옮겨 왔다. 물론 이는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게임으로 치면, 예전에는 1~2 스테이지에서 사냥하며 ‘언제 고레벨이 되나’ 초조해 했다면, 지금은 좀 더 높은 스테이지로 올라가 더 좋은 장비로 몬스터를 사냥한달까. 하지만 압박감은 더 커졌다. ‘앞으로도 이렇게 빡세게 일해야 한다고? 대체 언제까지……?’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출판인이 있다면, 아마 당신 역시 ‘나는 얼마나 일을 잘하는 편집자일까’ 혹은 ‘일을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고민을 품었거나 품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 질문에 뾰족한 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을 잘하고 더 큰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요즘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에 관심이 많다. 조금 뜬금없는 말이긴 한데,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고 스스로조차 정의 내릴 수 없는 ‘일을 잘한다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는, 적어도 나 스스로는 정확히 판단해 낼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에 무언가를 걸어 보는 편이 이 일을 더 오래 지속하고, 심지어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지 않을까 멋대로 생각 중이다. 편집자는 수많은 평가에 둘러싸여 있다. 연간 출간 종수, 계약 건수, 매출액, 판매 부수 등 수치로 드러나는 성적표부터, 기획 능력, 교정교열 능력, 업무 처리 능력, 마케팅 지원 능력 등 책을 만드는 길목마다 상사와 동료와 후배의 평가에 휩싸인다. 나는 이러한 평가가 우리의 일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릴 귀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의 편집자가 지닌 일에 대한 마음을 온전히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톡방을 보면 이런 종류의 질문들이 종종 올라온다. “베스트셀러 기획 도서가 없는데 xxxx 출판사 합격할 수 있을까요? ㅠㅠ” “경력이 1~2년 부족한데 지원서라도 보내 볼까요?” “올해 1만 부 넘게 팔린 책 담당 편집을 여러 권 했는데 10% 이상 연봉 인상 요구하면 무리일까요?” 나는 이런 질문들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 물론 이 질문들이 나온 근원에 위치한 절박함과 간절함의 농도를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하소연에 가까운 질문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출판사 역시 한정된 자원을 가장 적절히 분배해 최대한의 효율을 노려야 하기에 ‘가장 능력이 있을 것 같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일을 잘하는 편집자보다 일을 못하는 편집자를 찾는 게 더 쉽지 않다. 그 누구도 자기가 맡은 책을 허투루 만들지 않고, 정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진심을 쏟아붓는다. 그들 곁에 있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사무실을 나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그리고 익명의 단톡방에만 들어오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된다. 그만큼 정상적인 근무 환경의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능력을 높여야지만, 옆에 있는 편집자보다 더 많은 책을 팔고, 더 유능한 편집자로 보여야지만 그나마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할 확률이 높아지기에 더 치열하게 출판사가 정해 놓은 채용과 평가라는 구조 안에 자신을 집어넣는 것도 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위험한(?) 질문을 하고 싶다. 그런 회사에 들어가면 무엇이 달라질까? 유능한 편집자가 되어 그 유능함을 인정받아 내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입사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더 높은 연봉? 더 나은 고용 안정성? 4번의 이직을 하고 만으로 9년 정도 편집자로 일한 나로서는 솔직히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인지 잘 모르겠다. 월급이 올라 봐야 그 돈으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곤 넷플릭스에 더해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거나 금요일 저녁에 고민하지 않고 2만 원이 넘는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팀장이 되고 본부장이 되어 승진을 하며 한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다면 굳이 출판사에서 일할 필요가 있을까? 종이책 시장이 점차 해체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침몰하는 배의 선원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내가 연차가 높아지고, ‘받아야 할 연봉의 액수’가 점점 높아지면, 회사는 나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내년에 올해보다 더 높은 연매출을 기록할 수 있을까? 잘 알겠지만, 해가 갈수록 도서 판매량이 줄어드는 와중에 나 혼자만 베스트셀러를 빵빵 터뜨리겠다는 꿈은 너무 야무진 꿈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더 유능해져야 할 필요가 없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자면,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 누구도 계측할 수 없고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확인할 수 없으며, 결코 도착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물론 ‘일을 더 잘하는 편집자가 되고 싶어!’라는 기특한 다짐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와의 약속일 뿐이지 상사나 동료나 회사와의 계약이나 지켜야 할 의무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라는 편집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유능하지 않다면? 회사로부터 옆 편집자보다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래서 연봉이 더 적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나는 좀 슬플 것 같다. 무능함과 유능함을 가를 권한은 타인에게는 물론 스스로에게도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가 진짜로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사실 나는 처음 출판사에 입사한 뒤, 처음으로 원고를 배정받고 저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확신했었다. 어림없는 생각이었지.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질문을 어떻게 30년도 살지 않고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로 돌아가면 제발 그렇게 단정 짓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러므로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주니어급 편집자가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을 셀프 비평해 보기 바란다. 출판계를 떠나라는 뜻이 아니다. 글을 좋아하고 그것을 편집하는 것을 사랑하고 누군가의 삶을 책으로 옮기는 기획을 자진해서 할 수 있는 당신이라면, 굳이 출판사가 아니어도 당신의 진짜 유능함을 발휘할 영역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회사를 나가서도 한 2~3년은 돈을 벌지 못해도 약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좋아하며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 중이다. 가능하다면 그 일을 찾아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고 싶다. 돈은 그 다음이다. 그 구조는 물론 글을 다루고 무언가를 편집하는 영역 안에 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일이 꼭 종이책을 만드는 출판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푹 빠진 회사 밖 무언가에서 찾을 수도 있고, 회사 안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일에서 찾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무언가를 일로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지난 수년간 쌓아 온 ‘편집’이라는 능력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된다.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어!’란 마음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은 것 같다. 좌절하기도 쉽다. 하지만 무언가를 미칠 듯이 좋아하는 마음은 사실 유효기간 자체가 없다. 마음 그 자체이므로. 그 마음을 포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내는 성실함, 나는 그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유능함’이라고 믿는다.
삼일팔 뭐든 금방 설레고 금방 질리는 편집자.
다행히 아직은 좋아하는 일로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