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출판소 이은재 edited by 지다율
2022년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제14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마지막 날이었다. 참사 소식에 나는 어지러웠다. 행사장의 지하출판소 매대를 지키면서도 방문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거듭 바라보게 되었다. 믿기지 않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의 복판에 놓인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찌 해야 할까. 그날 이후 이어지는 참담함 가운데 제언이 있었다. 만나야 한다고.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모여서 소통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만 유일하게 위로가 가능하다는 유경근 전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언론 인터뷰가 있었다. 그 인터뷰 당시에는 10·29 참사 희생자 유가족 간의 만남이 조기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안타까운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통해 유가족들이 모일 수 있게 되었다.
모임 ‘격주로’는 예술작품 관람 경험을 이야기하는 일들을 해 오고 있다. 그중 첫 번째로 리뷰 토크가 있다. 기본적인 형식은 시각예술 작가와 기획자로 구성된 5인(익명 ㄱ, ㅅ, ㅇ, ㅡ, ㅣ)이 같은 전시를 관람하고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경로와 호흡으로 경험한 관람의 과정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눈다. 그렇게 서로 공감하고, 누락된 정보나 망각했던 것을 알아차리고, 질문하며, 작품을 오해한 채 대화하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작품 혹은 이야기 하는 상대를 더 넓은 폭으로 이해하게 된다.1리뷰 토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정기적으로 유튜브와 팟캐스트에 게시되었고 올 한 해 동안의 재정비를 거쳐 내년에 재개될 예정이다. ‘격주로’의 활동 링크는 https://linktr.ee/gyukjuro. 두 번째로 ‘격주로’는 구성원 외부의 참여자들과 만나 워크숍과 토크를 진행했다. 워크숍 〈해석의 경로: Re-mapping-Decoding-Sharing>(2020)에서는 신체적 활동으로 관람 경험을 복기하고, 재생산하며, 공유하는 방식을 실험했다. 전시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아마도예술공간, 2020)을 각자 관람한 뒤에 모인 참가자들은 기억을 더듬어 종이에 전시 공간과 작품, 그리고 관람한 동선을 그려 보며 자신만의 ‘관람 스코어’를 제작했다. 다음으로 한 명씩 돌아가며 밧줄, 색지 등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해 축소된 가상의 전시 공간을 공동으로 재현했다. 서로의 경험과 기억이 달랐기 때문에 공간의 구조는 계속해서 변경되었으며, 공동의 기억을 구성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 속에서 참가자들은 직접 몸을 움직이며 각자의 관람 행위를 재연했다. 마지막으로, 몸으로 드러낼 수 없는 경험적 층위를 함께 이야기하며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이 밖에도 ‘격주로’는 워크숍 〈걸음과 시선의 모임〉(2021), 오픈토크 〈참견하는 관객〉(2022)을 열었다. 최근에는 전시 관람 경험을 몸 밖으로 길어 올리는 관람자 인터뷰 시리즈 〈지나간 새를 본 사람들〉을 제작하고 있다.
나는 ‘격주로’의 일원으로서 위와 같은 활동들에 동참하고 있으며 관람 경험을 주로 다루고자 하는 지하출판소에서 ‘격주로’의 연구집 『관객하는 ㅁ』(2020)을 발행할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더 정확히 그 감사함은 ‘격주로’와 함께한 일들을 향한다. 예술 작품을 관람하고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는 일. 내가 온몸으로 겪었음에도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그래서 어딘가로 흩어지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일. 그 대화를 통해 경험 이후에도 지속되는 내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의미를 찾는 일. 이것은 결국 해소와 위로를 얻는 일이고, 만나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10·29 참사를 생각할 때면 나는 모임 ‘격주로’에서의 ‘만나는 일’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예술의 역할을 부정하고 하던 일을 멈추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다짐이 앞선다. 더욱더 만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편으로, 이러한 다짐이 애도의 방식 찾기를 가장한 나의 의미 찾기는 아닐지, 참사와 나 사이의 거리를 함부로 좁히는 위선적 비약은 아닐지 의심도 들지만 이미 그 거리 너머로부터 날아온 불씨는 나의 일상 사이사이를 조용히 태우고 있다. 불을 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내가 서 있는 곳, 예술 현장에서 만들어지고 보았던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일이라는 충동이 결국 앞선다. 그 충동의 명확한 이유에 대해 아직 답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왜 예술작품을 관람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을 해야 하는지. 왜 그토록 만나는 일이 필요한지.
이은재 작가/지하출판소 운영자. 시각예술 창작자이자 감상자로서 예술작품 수용의 실체가 궁금하여 ‘관람 경험’에 관한 1인 출판사를 시작했다. 출판 이외에 작은 전시 기획과 공연 홍보도 진행한 바 있으나 현재는 관람 경험에 대한 창작과 공동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 창작으로는 미적 경험이 발생하는 관람자의 몸에 대해서, 그리고 작가와 작품, 관람자가 맺는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린다. 공동연구는 모임 ‘격주로’에서 함께하고 있다. 관람 경험을 지속적으로 다룸으로써 예술의 사용가치가 가시화되길 바라며 이러한 주제와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지하출판소 홈페이지 https://www.eunjaeleestudio.com/zihachoolpanso
- 1리뷰 토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정기적으로 유튜브와 팟캐스트에 게시되었고 올 한 해 동안의 재정비를 거쳐 내년에 재개될 예정이다. ‘격주로’의 활동 링크는 https://linktr.ee/gyukju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