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다율
안녕하세요, 출판공동체 편않의 지다율입니다.
저는 지금 ‘비틀비들 시리즈: 지망생이 쓰는 현직을 위한 교과서’의 편집자 편 집필을 원하시는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저 출판사에 입사하길 원하는 분이 아니라, 출판사와 출판계를 머리채 잡고 끌고 와 가르치길 원하는 분을 찾습니다. 현실도 잘 모르는 지망생이 어떻게 현직을 가르치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들에게 여러분이 가르칠 건 현실이 아니라 이상입니다.
어떤 업계든, 지망생은 현직이 되어 청운의 꿈을 펼칠 생각에 가슴이 부풉니다. 하지만 대개 그 꿈은 준비과정에서 희미해지고, 일하는 와중에 분실됩니다. 꿈과 이상을 가져야 할 건 지망생이 아니라 현직입니다. 그들의 꿈과 희망이 고작 꿈과 희망을 잃은 현직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의 꿈과 이상을 적어 주십시오. 조금 더 자세한 사항은 아래 기획안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편지는 사실 S대 미디어출판학과 재학생들께 가장 먼저 보내야 마땅한 편지입니다.
S대 미디어출판학과야말로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성공적인 취업의 길이 열리는 서울에서 유일한 출판 전문인 양성의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유일한’이라는 말은 전국에서도 ‘(거의) 유일한’ 대학교 내 출판 관련 학과라는 뜻입니다. ‘푸른 밤’의 섬에 있던 T대는 한때 출판 관련 학과가 있었던 ‘유일한’ 4년제 대학이었지만, 2004년 학과의 ‘유일한’ 전임 교수가 졸지에 국회의원이 되면서 학과 역시 졸지에 폐지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우스운 비극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의도적으로 ‘유일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대학 시스템 내에서 전문 출판인을 양성하는 국내 ‘유일한’ 학과에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 기획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롯이 저의 불찰입니다. 교수님과 조교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많이 얻으십시오. 그것이 그들과 학교의 존재 이유이기도 할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저의 제안을 고사하신 해당 학과 학생들을 책망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해당 학과 학생들께 이 기획을 제안한 제 자신을 원망합니다.
정작 비틀거리는 자는 결국 또 저였군요.
[기획안] 비틀비들 시리즈: 지망생이 쓰는 현직을 위한 교과서
기획의도
“I’d prefer not to.” 바틀비가 무수히 반복했던 그 말을 우리 편않이 이어서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하던 것을 멈추고, 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는 거부와 선언은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여전히 하던 것을 그대로 하고, 실패의 반복을 선택하는데. 아니, 선택당하는데. 비틀거리는 이들은 똑바로 걷는 이들에게 늘 멸시당할 뿐인데.
같은 식으로 시도하면 같은 식으로 실패한다. 그리고 실패를 반복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므로, 같은 식의 시도는 대체로 나쁘다. 다르게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낫게 실패해야 한다. ‘비틀비’들은 그러한 실패를 감행하려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그건 아니라고 바득바득 대들며, 자신들은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어쨌든, 비틀거리는 궤적도 하나의 길이다.
집필 방식 (예시: 편집자 편)
- 편집자 지망생 n명은 각자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모인다. 이들은 일정 기간 동안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날을 벼린다. 각자의 주제를 잡고 챕터를 하나씩 구성한다.
- 젊고 개혁적인 현직 편집자가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감수를 맡는다. 단, 같은 사실 및 현상을 두고 현직과 지망생의 의견이 상충한 경우엔 후자가 우선권을 갖는다.
- 개정은 오로지 후세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1-1, 1-2, 1-3….
시리즈 목록 (예정)
- 편집자 편
- 디자이너 편
- 마케터 편
- 인쇄인 편
- 서점인 편
특기사항
- 지망생들이 업계에 대해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 그리고 글로 풀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가져야 함.
- 출판계를 시작으로, 언론계, 학계, 정계, 재계, 스포츠계 등 각종 업계에 대한 교과서들로 목록을 확대하고 구체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