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민 edited by 김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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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편지
함라 람삿, 학사, 펜낙 골재조합 _발신인
4:59:3 _발신연번
일반(3일) _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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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감학회 정회원 _수신인
엘와네 파탁, 수석석사, 믈레예 대학 _최종수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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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라 람삿 _회신
믈레예 대학의 엘와네 파탁 수석석사님, 펜낙 골재조합의 함라 람삿 학사가 가장 따뜻한 안부와 함께 따뜻한 위로도 전합니다. 다름 아니라 존경받는 연감학회에서 오랫동안 주목을 받으며 진행된 우리 결투가 제 승리로 끝났음이 비 내리는 밤 불타는 화약고처럼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지금 이번 공개적인 사슬편지로 7기 섭정 연간의 ‘구멍’에 대한 논쟁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끝내고, 동시에 이로 인해 우리 논쟁에 휘말려 전전긍긍하던 다른 회원들에게도 따뜻한 위안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지금은 코웃음을 치는 동시에 무릎을 두드리며 마지못해 편지를 펼치고 계시겠지만 곧 다른 회원들과 똑같은, 진실을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불가피한 견해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저는 가장 큰 확신을 가지고 보증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진실의 설득력은 그 무엇보다, 심지어 뛰어난 ‘현자의 유언보다’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선 이번 화제에 대해 우리만큼 익숙하지 않은 일부 학우를 위해 지금까지 맞상대해 온 우리의 견해부터 차근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저 유명한 ‘구멍’이 감가상각에 의한 것이며 다른 이론과 설명들은 대개 홍당(弘黨)의 희망사항에 불과하거나 언급할 가치도 없는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해 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회결병에 걸린 백석광부나 제충매밭에 꼬인 거름파리, 임질에 걸린 방탕한 기사처럼 자빠뜨리고 떨어뜨린 이론과 ‘잡소리’들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편지를 각인 2통씩 보내야만 하는 우리 회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만 일람하여 보겠습니다.
불미한 일로 제명된 몇 명을 제외하고도 열일곱 번의 회기 동안 스물세 명의 회장을 선출하는 사이, 선생님은 스물두 번의 질의회와 서른네 통의 반박 및 지지서한, 네 건의 소고와 여덟 건의 논문을 통해 감가상각이라는 평범하고 명확한 결론에 도전하는 모든 영감 넘치는 착상과 치기 어린 제안을 단호히 부인해 오셨습니다. 선생님의 교수대에 가장 먼저 올라간 것은 대학 변두리에서 서성거리며 도둑이 들고 쥐가 쏠듯 학위를 은근슬쩍 빼돌려 보려던 저 예비학사들과 그들의 지하실 이론, 혹은 선생님 표현대로 하자면 ‘이론적 지하실’이었습니다. 기발하고 창조적인 이론을 언제나 웃는 낯으로 환영하는 저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언급할 만한 것은 마흠 예비학사의 발상(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석회동굴과 지하호수, 학문과 안전조사원 탐험기를 섞은 듯한 그 논문 말입니다)뿐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거대한 금고와 통로로 이루어진, 벌집처럼 광대하고 복잡한 국고 어딘가에 왕조시대부터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문, 은밀한 구멍, 수상쩍은 미로가 있어서 여기를 통해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죄, 음모, 책략이 벌어졌고, 회계상의 불일치 역시 그 가운데 하나라는 이론은 얼마나 흥미진진하며 또 미성숙한 상상을 자극합니까. 우리가 이 이론을 살려 두기만 했으면 제7섭정기는 물론이고 우리 학계 논란의 절반은 저절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학회의 진지한 연구자들이 민담과 전설, 연극에서 김을 빼고 맛을 뿌리 뽑는 거세꾼이라는 오명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늘한 일웨미 월(月)마다 탐스러운 무화과가 열리던 과수원을 수석석사님이 친히 경매에 부치시고, 그 돈으로 안전조사원을 세 명이나 고용해 지하로 내려보내는 것을 학회의 그 누구도 막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진 수석석사님의 논문이 마흠 예비학사, 그리고 애호가와 학자 사이에서 어물거리는 이들을 완전히 뭉개는 것도 막지 못했지요. 진실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그 진실이 선생님처럼 완고한 분의 도움을 얻고 있다고 한다면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의 덕장에 내걸려 진실의 우풍에 바싹 마른 발상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윗사닐의 금 조성 변화라는 이론은 어땠습니까. 제가 아치지야 석사의 논문을 읽고 붉은 먹으로 지지서한을 보낼 때만 하더라도 저는 일련의 논쟁이 종결되었으며 선생님과 저 사이의 토론도 먹을 마시고 종이를 씹는 결투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 소견에는 선생님께서도 아치지야 석사의 논문이 몇몇 비난자의 논평처럼 처음부터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데에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누구인들 섭정기 관료들이 동전이 아니라 용광로에 돈을 아꼈다는 걸 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학문적 철두철미함을 갖추지 않은 자라면 말입니다. 수석석사님이 고용하신 야금조합이 복원한 반사로(反射爐)가 안개와 어스름 속에서 붉게 빛나고 조악한 윗사닐이 마침내 우리 눈앞에 드러났을 때조차, 선생님은 오직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를 목격한 사람의 모습 이외의 것을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놀라운 순간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지각에 선생님의 지성이 받아 마땅한 빛나는 기념물로 영구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섭정기 관료들은 선생님의 말씀처럼 금을 빼돌릴 만큼 부정직하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선생님께 굴복한 다른 모든 이론을 더 끄집어내서 회고하는 일이 얼마나 유익할지 모르겠습니다. 변경된 16년의 애매모호한 회계규정, 그리고 그 외에 발효, 마모, 분실, 강탈과 관련된 긴 목록이 외벨의 성문 앞처럼 줄을 지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선생님이 오른손으로 일격을 가하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져 내렸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여전히 악의, 또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밭에 뿌려지고 말았던 그 맥아포대에 대해 처음 언급한 헤겜 예비학사의 논문이 어느 정도 진실을 함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선생님께서는 꼬박꼬박 질의회에 참석한 예비학사에게 보리술 주정은 주막에나 가서 하라고 역정을 내고 호통을 치시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현명하신 석사님, 제가 다시 여쭙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난 열일곱 회기 동안 펼쳐진 선생님의 활약이 우리의 오랜 문제, 7기 섭정 연간 세입과 세출의 불일치, 선량한 학우들의 숙면을 끊임없이 괴롭혀 온 저 끈질긴 시빗거리를 드디어 일소하였습니까. 등잔 하나, 화살깃 하나까지 낱낱이 분개(分介)하던 제7섭정기의 서기들이 어째서 그들의 광적이고 강박적인 균형주의 회계법을 공공연하게 저버렸는지에 대해 드디어 완전하고 모자람 없는 진실이 밝혀져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식이 한층 두터워질 수 있었습니까.
오히려 선생님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거짓말들의 처형자를 자임해 오셨지만 위증자들을 매다는 순회처형인이 곧 진실된 자는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는 살인자에게 되갚는 자가 사람을 살리는 자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수석석사님께선 수십 편의 논문을 도배지로 만드시고 들돼지 세 마리를 하룻밤에 해골만 남길 만큼 많은 예비학사들을 승합마차에서 내던지셨지만, 틀린 것을 지목하는 것이 옳게 행하는 첩경은 아닙니다. 우리 솜저고리에는 여전히 가시굴레풀 씨앗이 단단히 박혀 주머니에 손을 넣는 자들마다 신음을 내고 얼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옷을 트고 솜을 헤집어 마침내 가시를 완전히 빼내기로 결심하였고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생머리를 쥐어뜯기고 관재인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 곤욕을 치러 왔던 것입니다.
엘갈교도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까. 선생님께서는 섭정 중기 경건주의 운동의 뜨겁고 미지근한 우여곡절에 익숙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우들이 많고, 또 이들 은둔자들이 공중(公衆)에게는 자신들이 만들지도 먹지도 않은 기장떡으로만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 필요한 부분만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장떡 이상을 들어본 자들도 이 사람들을 그저 우리 교회의 ‘더듬이’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기실 이 공동체의 근원은 후름 지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엘갈이라는 말 역시 산기장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후름 신앙의 ‘엘구’, 또는 ‘엘기타’라고 하는 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니만큼, 산기장을 가리키는 엘갈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이 사람들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어쨌든 엘구를 신앙하던 공동체는 이미 왕조시대부터 우리 가운데 살기 시작했고, 섭정기부터는 차차 우리 교회와 진리의 환한 빛 속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현재의 공동체 생활과 배타주의를 고수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경건주의 시기부터이기 때문에, 이 상세한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광당(廣黨)의 영향을 받은 다른 경건주의 교파와 엘갈교도를 같은 범주에 묶는 착오를 일으키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영향을 받았으되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공동체에는 여전히 후름식의 퇴폐가 우리 교회의 경건함과 뒤섞인 기묘한 습속들이 존재하여 오래도록 교회의 치리위원회와 교회법학자들을 괴롭히는 동시에 민속학 애호가들에게는 만족감을 주어 왔던 것입니다.
이 기묘한 습속들은 결혼, 주거, 장례 등 다양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지만, 특히 우리 목하의 논의에 긴요한 것은 이들의 거래 방식, 즉 ‘내기거래’입니다. 엘갈교도들은 극히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사밋을 기르면서도 자신들이 직접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향신료를 곁들이지 않은 음식이 경건한 삶과 얼마나 비례하는지, 그리고 향신료를 섭취하는 것과 재배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속된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이들의 생각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사밋 열매를 산지의 음습한 바람에 말려서 골짜기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경기장 모양의 곡물저장고에 조금씩 흩어 섞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트막한 언덕만큼 쌓인 산기장과 고작 몇 되의 사밋이 뒤섞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 공동체는 오직 현물거래만을 고집하며 현물거래의 수단은 바로 이 혼합물입니다. 낟알의 형상과 곡물의 종자에 익숙하지 않은 학우라면 귀한 사밋 열매만을 골라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사는 산지보다 낮은 곳에서는 지름병이 항상 창궐한다는 듯이 저희 구름 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을 내는 엘갈교도가 수백 말의 기장에서 사밋 낱알을 하나하나 골라내도록 허락하는가는 둘째 문제이고, 산기장과 사밋 열매는 근연종이기 때문에 눈으로는 구분할 수조차 없습니다.
제가 갑자기 떡이니 기장이니 하는 이야기로 넘어간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믈레예 지방을 손등 보듯 알고 계신 선생님이시기 때문에 엘갈교도의 거래 방식에 대해서는 오히려 저보다 잘 알고 계시며, 또 양식 있는 조합원으로서 항상 이런 불근신한 거래를 비난하는 데에 앞장서 오셨을 거라는 것을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논의에서 이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이유인즉 우리의 ‘구멍’이 발생한 이유가 바로 그 내기거래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제7섭정기 관료들은, 비록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의 인장 아래에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 여겨지지만, 큰 위험을 안고 엘갈교도와 거래를 해 재정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바로 그 손해가 세입과 세출의 불일치로 나타난 것입니다. 보다 주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거래의 책임자는 균형재정이라는 회계법상 세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재정의 대원칙을 깨뜨린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일치를 장부에 남겨둘 만큼 세칙만큼은 철저하게 지킨 것입니다.
대담한 주장을 펼치는 데에는 더욱 대담한 근거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여기에서 그 증거도 함께 공개하겠습니다. 그 증거는 공공연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 수석석사님께는 서믈레예 도서관이 될, 가장 가까운 서고를 학우들께서 직접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직 색인기(索引器)가 도입되기 이전 사료이기 때문에 도서관의 간사들이 질색을 하고 삼대가 한집에서 앓는 소리를 내겠지만 진실의 갑주에는 얼굴을 가리기에 넉넉한 면갑도 딸려 온다는 것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섭정기의 회계연도 헤아리는 방식이 지금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7기 34년 미스예나 월 1,774권을 찾도록 하십시오. 이틀이나 사흘 정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여비를, 그리고 사서들에게 줄 사례금을 지참하십시오. 그리고 부분 10의 203행부터 211행에 걸친 거래명세를 확인해 보십시오. 소제목에 섭정기 장식문자 노델이 선명히 가해져 있으니 찾는 이들의 양 눈에 경련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셨다면 그 명세의 사닐을 원장의 차변, 그리고 대변과 비교해 보십시오. 눈앞에 명백한 회계부정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이 발견의 전모, 연감학적 해석, 기여자를 포함하여 보다 자세한 사항은 올해 안으로 출간될 대논문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뤄질 것입니다. 위의 사항을 충실하게 확인해 주신 학우들이 따뜻한 격려와 함께 지지서한을 기꺼이 보내 주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며, 가장 큰 기쁨이 담긴 지지서한은 바로 수석석사님으로부터 전해질 것이라는 점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파탁 수석석사님. 저는 이상과 같은 발견 및 사실을 선생님 그리고 학우들과 공유함으로써 오랫동안 이어진 우리의 결투에 합리적인 매듭을 짓고 연감학에서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어 왔던 한 문제를 정오의 햇빛과 같은 진실 아래에 끌어내고자 합니다. 이 외에 제게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은 선생님께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등 뒤에서 말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더러 광당에 대한 선생님의 오랜 헌신과 홍당에서의 제 입장을 거론하며 트집을 잡고 불순한 암시를 의도하지 않은 양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저만은 진실, 오직 명백하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찾기 위한 목적 한 가지를 위해 고된 결투를 이어온 것이 아닙니까. 다만 이 진실의 멧부리를 등정하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회의의 등산로를 오르셨던 것이고, 저는 상상력의 사면에 밧줄을 걸치고 기어 올라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봉우리에 먼저 올랐다고 한들 그곳을 제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수석석사님, 부디 다음 달에 무아윗 발행사를 통해 간행될 대논문을 읽어 주십시오. 승복의 뜻을 밝히는 사슬편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결투를 위해 공증하셨던 대로 차기 총회에서 회장선거에 출마하시고 단일화나 사퇴 없이 결선투표까지 완주하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학회에서 직임을, 그리고 그에 따르는 소란과 이목을 피해 오셨고, 선생님의 관심은 오직 연감과 새롭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옛 진실들만을 좇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상한 선생님의 본성에 맞지 않는 일을 요청드리는 것은 이것이 광당이나 홍당의 당파적 입장을 거슬러 학회, 그리고 우리 건전한 시민들이 이룬 모든 공동체의 지식과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선거에 누가 지지하는 어떤 인사가 입후보를 하더라도 선생님이 연단에 서시는 것만으로도 우리 학회에 오랫동안 부족했던 청신한 기운이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편지를 받으시는 대로 믈례에 공회당에서 수령 처리를 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대논문을 읽으신 후 저와 함께 바힘 공증인을 방문해 주십시오. 우리가 처음 결투를 시작했을 때엔 4급 공증인이었지만 그는 지금 3급 공증인입니다. 어쩌면 이번에 밝혀진 사실로 크게 덕을 보는 것은 공증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진실 외에는 얻은 것이 없고, 섭정기 서기들은 복식부기 사이에 천연덕스럽게 끼워 둔 과오가 탄로 났으니 말입니다. 진액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수지조합의 농부처럼 다시 뵐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함라 람삿, 펜낙 골재조합
타미아세가 7
4:59:3-1 _수신연번
사슬편지의 표준서식을 사용하십시오. 공화국 서간지와 먹을 사용하십시오.
내용을 임의로 변경하지 마십시오. 2부 이상 작성하지 마십시오.
최종수신인을 변경하지 마십시오.
연번을 반드시 기록해 주십시오. 장식문자를 사용할 때 인용표를 첨부해 주십시오.
등급에 따른 발송 기한을 넘겨 발송하지 마십시오. 최종수신자는 공회당에 접수해 주십시오. 다음 수신자를 위해 읽을 수 있는 필체를 사용해 주십시오.
봉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사슬편지를 이용한 광고는 사문 및 기소의 대상이 됩니다.
조합적이지 않은 문란하고 해괴한 내용을 작성하지 마십시오. 습기에 유의해 주십시오.
첨부된 각 문서는 공증과 서명 후에 효력을 가집니다. 촛불에 주의하십시오.
사슬이 끊기거나 부득이한 이유로 수발신이 불가능한 경우 대리인 선임을 위해 가까운 공회당에 알려 주십시오.
종이를 절약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