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우
서점의 베스트셀러 매대를 문득 바라본 적이 있었다. “내가…” “나에게…” “네가…” “너에게…”로 시작하고 끝나는 제목들. 누워 있거나 책을 읽고 있는 여자들. 여행을 했거나 퇴사를 하고 아무튼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들. 그러나 나는 무언가 꼬집어서 말할 거리가 아무래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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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이 잘 안 돼, 상사가 자꾸 괴롭혀, 미래가 불안해,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워. 그러니까…
용기를 내, ‘너’로 살아, 무리하지 마, 웃으며 대처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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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은 잘 다니고 있고 괴롭히는 주변 사람도 없었고 일상은 대체로 평안했으며 인간관계도 괜찮았다. 그러니까 나는 용기를 낼 수도 ‘나’로 살 수도 무리하지 않을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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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매일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별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시간 내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 토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한 것처럼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 이 모든 것이 부조리극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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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들을 통보받았다. 이 책은 저자랑 얘기된 거니까 4도 양장으로 해. 가격은 얼마로 올랐으니까 잘 챙겨. 누구누구가 어떻게 어떻게 한다니 네가 마무리해. 내년 네 연봉은 얼마야. 이번 공휴일에는 안 쉬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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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직장은 잘 다니고 있고 괴롭히는 주변 사람도 없었고 일상은 대체로 평안했으며 인간관계도 괜찮았다. 그러니까 나는 용기를 낼 수도 ‘나’로 살 수도 무리하지 않을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 따르면 이렇게 두 번 말하는 것을 운동이라고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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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동안 독립비평 세미나에 참여했다. 이제 와 생각하건대 비평이나 독립출판보다는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게나든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비평도 독립출판도 아니고 독립비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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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세미나에서 내가 던졌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독립출판물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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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는 3주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참여자는 비평문을 써 와야 한다는 얘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으나 도전해 보기로 했고 도전하기로 마음먹는 데 며칠을 썼다. 무책임한 방법들을 최대한 생각해 보았고 어느 것도 실행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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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읽기 시작했다. 비평문도 서평도 리뷰도 써 본 적이 없었기에 좋은 시작이 될 것 같았다. 금정연의 멋진 문장들은 너무(too) 재미있었다. 힌트만 조금 얻은 뒤 완독하지 않고 비평문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완독에 이틀을 보냈고 감은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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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았다. 비평문을 쓴다면 그리고 그것이 독립출판을 다루는 비평이라면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었고 그것도 상위권이었다. 표지에는 누워 있는 여자가 그려져 있었고 저자는 프로필 사진에서 책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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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가끔 내가 만든 책을 검색해 본다. 그리고 책마다 세일즈포인트를 살펴본다. 몇백을 넘지 않는 그 작고 귀여운 숫자들. 그렇게 숫자들이 찍히기 전에 내가 저자에게 했던 이야기를 듣는다면 코미디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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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가 책으로 나와 많은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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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3개월 만에 초판 12쇄를 찍었다. 『폐쇄병동으로의 휴가』는 독립출판계(라는 게 있다면 그곳)에서는 이례적으로 중쇄를 찍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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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은 안 팔려야 하는가? 독립이 대중의 취향이나 시장의 논리로부터의 독립이라면 당연히, 안 팔려야 하는가? 독립출판물은 왜 어느 때보다도 잘 팔렸을 때 ‘찐’을 의심받는가? 그러니까, 나는 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폐쇄병동으로의 휴가』를 의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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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참여자가 준비한 발제문에는 고양이 사진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준비하든 고양이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아니 그전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여하튼 그 고양이 사진이 주는 위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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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완성한 나의 발제문은 고양이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공적으로 우울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폐쇄병동으로의 휴가』는 주목할 만한 인상을 남겼고, 독자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수용 가능한 우울을 ‘질병’으로 다룬 데에서 그 이유를 찾았으나 고양이가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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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단어를 쓰면 일반독자가 이해를 하겠어? 무슨 말인지 나는 알겠는데, 문장이 너무 어렵잖아. 이것보다는 이렇게 쓰는 게…아무튼 표현은 좀 고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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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출판과 독립출판(의 이분법), 공급률, 사회가 우울을 다루는 방식, 책이 우울을 다루는 방식, 자기 고백의 방법, 인스타그램의 이미지들과 좋아요, 정상성과 소외 혹은 배제, 공감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심,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쓰고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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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세미나가 모두 끝나고 와인을 한 잔씩 마셨다. 완성한 각자의 비평문을 반으로 접어 가방 속에 넣고 애쓰셨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인사를 나눴다. 끝나 가는 것들의 어떤 위안… 이 지나간 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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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었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가 나왔다. 『폐쇄병동으로의 휴가』는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다시 나왔다. 한편 나의 정확하지 않은 불행도 계속되었다. 이 파편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쓰면서, 정확한 불행을 정확한 언어로 말하고 정확한 위로를 받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