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섭 edited by 김윤우
얼마 전, 친한 선배가 카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거기엔 ‘2점대 이하: 이상한 놈, 나쁜 놈, 반드시 피해야 할 곳, 몸과 마음이 쓰레기 되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시 열두 곳의 출판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정신과상담 다니고 싶다 하는 분만 지원하시길” “고인물 대잔치” “대표의 감정 쓰레기통이 될 수 있다” “언어폭력이 일상인 곳” “화려한 디자인을 입은 막장 드라마”라고 적힌 각 출판사의 한줄평 문장 아래에는, 안타깝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한줄평 중에 “타락”과 “연명”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순간 종이 먼지가 눈에 들어간 것처럼 눈이 따끔거렸다. 그리고 회사를 스쳐 간 많은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말들이 쌓여 저런 글이 되었겠지, 라고 생각하니 다시 눈이 따끔거렸다. 나도 기억하는 몇몇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남아 있고, 아니 남았고, 남은 사람의 자세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명이 아니라 변화가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서 출판의 기쁨을 찾아야 하지? 어느 자리에서 출판의 기쁨을 찾아야 하지?
선배가 보낸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분명한 건 책은 아니다, 분명한 건 작가는 아니다, 라고 나는 재차 다짐했다. 그것들은 내가 기쁨을 찾는 곳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하는 곳이라고, 나는 일을 더럽게 못하던 신입 시절부터 (물론 지금도 못하지만) 그렇게 다짐해 왔다. 물론, 책이 그리고 작가가 내게 기쁨이 될 때는 많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얻기 쉬운 기쁨이라서, 나는 그 기쁨을 경계한다. 내가 작가에게 잘하고 작가가 편집자에게 잘하는 건 너무 쉽다. 어려운 건 그러니까 편집자가 편집자에게 잘하는 것, 편집자가 마케터에게 잘하는 것, 편집자가 다른 동료들에게 잘하는 것, 사장이 편집자에게 잘하는 것, 편집자가 회사에 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기쁨을 찾을 곳은 내가 일주일에 마흔 시간을 넘게 보내는 내 일터여야 한다, 라고 생각하다가 나는 헛웃음이 나와서 선배와 농담 따먹기를 했다.
김준섭 | 한겨레출판 8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