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 edited by 김윤우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많이 알고 싶었다. 남들이 무슨 얘기를 할 때 나만 모르면 싫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는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 찬 한심한 사람이라 손가락질해도 할 말 없다.
나나는 아는 척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마르크 블로크가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말했다. 역사는 개인에게 위안을 준다고.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이리라. 서로 취향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막연히 재밌는 공부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뿐이다.
하지만 블로크가 뒤이어 말했듯이,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어떤 학문이 학문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많은 것을 증명해야 했다. 블로크가 저 책을 쓴 이유도 그렇다. 그러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재미있고 많이 배우면 그만이었던 거다. 대학원까지 가서 거창한 학문적 성과를 내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벽을 느낀 건 졸업논문을 쓸 때였다. 내 이름으로 된 결과물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때 결심했다. 나는 앞에 나서지 말고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을 충실히 돕는 조력자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찾을 순 없었다. 이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돈을 벌어야 했다. 내게 남은 건 논문과 책 더미, 그리고 그걸 내 걸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뿐이었다. 그렇다면 책 쓰는 사람을 돕는 일은 어떨까? 그런 사람을 편집자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사람마다 편집자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편집자라는 직업이 참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아니다’에 가깝다. 책은 단지 공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책보단 공부가 더 중요했다. 그래도 직업이 편집자라면 책을 읽어야만 하고, 그러면 자연스레 공부도 되지 않을까. 앞으로도 열심히 아는 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손을 타서 만들어진 책을 연구자들이 읽고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뿌듯했다. 연구자들이 읽기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면, 그만큼 보람찬 일도 없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편집자가 저런 일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덕분에 많이 헤매는 중이다. 결국 난 아는 척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유 | 2019년 출판사 입사, 현 1년 차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