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규
1.
우리 집 작은 소파에서 애매하게 접힌 몸으로 안쓰러운 잠을 자는 저 사람은 연말까지는 나와야 하는 책의 저자였다. 그 책은 작년에도 연말까지 나와야 했고, 그 작년에도, 그 작년의 작년에도 연말까지는 나와야 하는 책이었다. 벌써 5년째 그는 여기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자기 집이 폭격으로 무너졌음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그 설명 그대로 이 소파에 무너져서 곧 잠이 들었다. 그는 무례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게 무척 허락을 받고 싶었음을 나는 안다. 그의 얼굴에 남은 주름과 불편하게 계속 움찔거리는 저 손이 아직도 ‘잠깐만 무너져 있어도 괜찮을까요?’ 하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집이 무너진 사실을 설명하고, 그 설명이 끝날 때까지 잠들지 않도록 버티는 데 모든 힘을 써버렸다. 힘을 다 써버린 그는 소파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모두의 머리 위에 푸른 하늘뿐인 세상이었다. 육중한 미사일이 굉음을 뱉으며 날아가도 푸른 하늘뿐이었다. 그 굉음을 공상에서 현실로 옮겨 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를 떠올렸다.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로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차 없는 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든가, 화성에 있는 은행을 턴다든가, 장난감 권총으로 독재자를 암살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로 말이다. 나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원고를 쓰기 위해 그가 어떤 일을 했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굳이 설명하려는 그의 마음도 말이다.
그는 가끔씩 잠꼬대를 했다. 원고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이제 그만 깨어나고 싶어. 그 박봉 쪼개서 소파를 새로 사게 만들 수는 없잖아. 그가 하는 잠꼬대는 내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아프지 않음을,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구급차나 운구차를 부르지 않고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차를 마실 수 있었다.
가끔은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듯이 잠에서 깨지 못하는 그를 위해 온갖 옛이야기 따위를 해 보기도 했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말 대여비 포함 일당 50만 원에 빌려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깊은 잠은 깨어지질 않았다. 자정이 지나자 왕자님은 말을 반납하러 떠나 버렸고, 나는 그날도 혼자 그 사람 옆에서 어깨를 조용히 흔들었다. 그는 여린 흔들림을 토닥임 삼아 잠꼬대를 했다. 요람, 해먹, 안락의자의 엷은 흔들림에 잠긴 것처럼 기분 좋은 잠꼬대를 했다. 한번은 너무 절망적인 기분이었던 나머지 그걸 그대로 원고지에 옮겨 적었지만, 이내 찢어 버렸다. 그건 원고지에 적은 글일 뿐이지 원고가 아니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고 잠꼬대도 끝나지 않았다.
2.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커다란 바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양이 멋진 것도 색깔이 예쁜 것도 아니었지만 크기 하나만큼은 무지막지했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버릴 것과 남길 것 두 가지로만 나눠 보았고 그게 내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버릴 것을 너무 많이 품은 그 바위를 굳이 낑낑대며 굴려서 집으로 가져왔다. 몇 달 동안 정을 맞은 바위는 러시아 병정의 모습이 되어 내 책상 위에 놓였다. 모양도 멋지고 색깔도 예뻤지만 크기는 더 이상 크지 않았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때 그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단단했다. 불순물이 섞인 그 원석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고, 나는 쐐기와 망치로 산산조각 내어 불순물을 긁어냈다. 가공이 끝난 다이아몬드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보석이었고, 여전히 단단했다. 하지만 그 작은 다이아몬드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다이아몬드가 얼마인지를 물었다. 나는 다이아몬드를 팔아 묵은 빚을 갚았다. 갚고 남은 돈으로 작고 푹신한 소파를 샀다.
어느 화창한 휴일 낮에 나는 그를 세 번째로 만났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자 수수한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예전에는 부서지고 깨어져도 괜찮은 부분이 많았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그래서 나 대신 깨어지고 부서질 것을 가져왔어. 그가 내민 서류봉투 속에는 원고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러시아 병정과 다이아몬드를 만들 때처럼 교정기호로 원고지를 새빨갛게 채웠다. 교정지를 돌려받은 그는 현관에서 구둣주걱을 손에 든 채로 말했다. 올해 안으로는 책으로 만들고 싶어.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는 그날 이후로 자기 집이 무너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연말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선물하려고 했던 사람이 죽었어.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해. 원고를 다시 쓰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그가 전화를 끊을 때면 카운트다운도 끝났고 TV 속의 사람들이 보신각에서 타종을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불행한 친구를 더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독촉 전화를 하는 대신 집을 청소했다. 그를 세 번 만나는 동안 집은 파편으로 가득 차 엉망이었다. 그의 집이 무너질 무렵이 돼서야 청소가 끝났고 나는 비로소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너무 많은 파편으로 흩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내가 했던 일은 온전한 것을 파괴해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 불과했다는 것을.
3.
길고 낮은 목소리가 남은 빛을 기워 밤을 만들어 갔다. 여기는 견디기 어려운 말들만 비석으로 새겨져 오래오래 남는 세상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견디기 쉬운 말이었다. 그 쉬운 말을 가볍고 훼손되기 쉬운 종이 위에 늘어놓고 책으로 엮고 싶었다. 나는 넝마주이로 쓰레기통을 뒤져 그의 파편들을 다시 모았다. 집은 다시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찼다. 원고 독촉을 받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다만 잠이 좀 부족했을 뿐이야. 그러니 이 집을 다시 좀 치워 주지 않을래? 그는 견디기 쉬운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잠꼬대만 계속했다.
그래도 오늘 저녁이 지나면, 아마 그가 깨어날지도 몰랐다. 여태까지 안 깨어났으니까, 내일은 깨어날 것이다. 아니면 모레나 일주일 뒤, 그것도 아니라면 다음 연말에라도. 여기도 어쩌다 한 번씩은 비도 오고 개도 짖으니까.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복권 번호도 맨 끝자리 하나는 맞았으니까. 매일 저녁마다 이 집 앞을 지나는 주정뱅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술주정 대신 진짜 옛날 노래를 불러 주니까.
그가 잠에서 깨었을 때 내가 잠들어 있으면 어쩌나 두려워서, 나는 빨리 자고 일어나야 해, 와 잠들면 안 돼, 사이에서 서성였다. 나는 그가 얼마나 심하게 산산조각 났는지 스스로 알기를 원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내 방을 가득 채운 것이 쓰레기가 아니라 자신의 파편들임을 바로 알아볼 것이다. 그제서야 내 얼굴에 괜찮지 않다는 말을, 견디기 쉬운 솔직한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집을 가득 채운 쏟아진 말들을 주워 담아 종이 위에 얹고 싶다. 파편을 아무리 모아도 한 번 생겨난 금은 지울 수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