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1374089

정윤

‘출판계 연봉 공개’ 설문 결과를 분석하다

2019년 10월쯤부터 출판계에 익명의 설문지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출판계 연봉 공개(익명의 설문지)’라는 제목의 설문지입니다. 2020년 7월 현재, 약 500여 명이 설문에 응했습니다.

설문자는 익명의 편집자입니다. “노동자 간 연봉과 실수령액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지 않는” 현 상황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호기심에 설문을 시작했지만, 다른 출판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원한다고 덧붙입니다. 그런 만큼, 설문자는 설문지와 설문 결과를 모두 공개하고 있습니다(https://blog.naver.com/sung870918/221688601058, 2020년 7월 접속).

질문 항목은 업무 영역, 연차, 성별, 세전 연봉, 매월 실수령액, 퇴직금의 연봉 포함 여부, 연봉 외 추가 수령액입니다. 또 코멘트를 남길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설문지에서 설문자가 지적한 것처럼, 설문 결과를 참고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응답자가 자기 연봉 혹은 실수령액을 정확히 모를 수 있습니다. 직원과 제대로 연봉협상을 하지 않거나 계약서를 정상적으로 남기지 않는 출판사가 많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 탓에 응답한 연봉 및 월별 실수령액이 일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인터넷 공개설문이므로 사보타주에 취약합니다. 혹은 실수로 설문을 중복해 제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문 결과를 분석할 때에 이러한 요소가 왜곡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셋째, 설문 응답자가 출판노동자 전체를 충분히 대표하기 어렵습니다. 통계적 표본추출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 참여로 모은 데이터이므로 표본이 편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자료에 엄밀한 통계분석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더라도 이 설문지의 등장은 충분히 의미 깊습니다. 노동자는 스스로 받는 노동의 대가가 출판계 전체에 비추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정당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출판계 전체가 어떤 수준인지 알아야 함께 고민을 모으고 힘을 뭉칠 연대감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접근하기 쉬운 출판계 연봉 자료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이 설문과 설문 결과는 공유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여기서는 연봉을 연차, 성, 업무에 따라 정리해 보았습니다. 월별 실수령액은 미응답자가 많아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간단한 분석이 출판노동을 둘러싼 담론에 기여하고, 나아가 체계적 연구를 위한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합니다.

사적 수익을 위해 설문 결과 및 분석을 임의로 사용할 수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연차와 연봉 회귀분석

출판노동자는 연차에 따라 연봉을 얼마나 더 받을까요? 앞서 제기한 한계는 있지만 간단한 회귀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응답자 502명을 대상으로 연차를 x축, 연봉을 y축으로 삼아 회귀분석 하였습니다. “20년 이상”으로 응답을 주신 분들도 있지만 수가 적고 x축 설정이 어려워 제외했습니다.

결정계수 및 조정된 결정계수가 0.5 정도입니다. P-값은 상당히 작습니다. 연차에 따른 연봉 변화에 꽤 일관된 경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y절편은 23416477, 회귀계수는 1374089입니다(소수점 이하는 버림했습니다). 즉, 설문 결과에서 평균적인 연봉 상승 수준은 다음 식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연봉=23416477+(1374089×연차)

그러니까 평균적으로 1년을 더 일하면 연봉 1,374,089원을 더 받는다는 뜻입니다. 월 10만 원꼴이네요.

이것만으로는 아쉬우니 직무별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경영지원이나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답을 해 주셨지만, 회귀분석을 할 만큼 응답자가 많은 분야는 편집, 디자인이었습니다.

편집 연봉 = 23480829 + (1412548 × 연차)
디자인 연봉 = 21966235 + (1312547 × 연차)

1년 더 일하면 평균적으로 편집자는 1,412,548원, 디자이너는 1,312,547원을 더 받습니다. 연봉 상승 수준이 비슷하긴 하지만 편집자가 살짝 더 높습니다. 한편 편집 분야의 y절편, 즉 상수가 디자인 분야의 것보다 약 150만 원 더 높습니다. 즉, 연차에 따른 연봉 상승 차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편집자가 디자이너보다 그만큼 더 받는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성별로 회귀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기타 등으로 응답해 주신 분들도 있지만, 회귀분석을 할 만큼 많은 응답자는 여성, 남성이었습니다.

여성 연봉 = 23657027 + (1271744 × 연차)
남성 연봉 = 22080518 + (1886208 × 연차)

결과를 단순비교하면 첫 월급은 여성이 더 많이 받는 듯합니다. 하지만 연봉 상승 정도가 상당히 다릅니다. 연차에 따라 여성은 1,271,744원, 남성은 1,886,208원을 더 받습니다. 60만 원 이상 차이 납니다. 여성 연봉 상승률이 작기 때문에, 오히려 회귀식의 y절편이 더 높게 나온 듯합니다.

성별, 직무별 연봉 그래프

앞서 살펴본 결과를 다른 각도에서 확인하기 위해 그래프를 그려 보았습니다.

1~10년 차는 2년씩 묶어 연봉 평균을 구했습니다. 11년 차부터는 응답자 수가 적어 부득이하게 5년으로 묶어 평균을 냈습니다.

먼저 직무별로 따로 평균을 내 비교해 보았습니다.

회귀분석에서 보았듯, 평균적으로 디자이너의 연봉이 편집자의 연봉보다 적습니다. 연봉 상승 수준은 비슷해 보이지만, 1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꾸준하게, 편집자의 평균 연봉이 디자이너의 것보다 더 높습니다.

다음은 성별로 따로 평균을 내 비교해 보았습니다.

앞서 회귀분석에서 확인한 것처럼, 대체로 남성이 받는 연봉이 더 높습니다. 상승률도 더 높은 듯합니다. 물론 11년 차부터는 응답자가 적어 출판계 전체를 충분히 반영하기 특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매우 작은 1~4년 차 이후로 꾸준한 차이가 나타나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퇴직금을 포함한 연봉

마지막으로,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한 비율을 살펴보았습니다.

총 506건 응답 중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되었다고 응답한 수는 78건입니다(약 15%). 포함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수는 424건입니다(약 84%). 응답자 스무 명 중 세 명은 퇴직금을 포함한 연봉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기타 응답으로는 “모르겠다” 또는 “포함돼 있는데 회사가 떼어먹는다” 등이 있습니다.

회사가 연봉에 퇴직금을 포함하여 연봉액을 과장하는 일은 상황에 따라 위법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노동자가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되는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면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가며

출판노동자가 올바로 대우를 받는지 묻기 위해 살펴볼 자료는 더 많습니다.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추가근무나 특별근무에 따라 수당은 받는지, 제대로 된 연봉협상을 거치는지, 근로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고, 또 그에 따라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지 등이 떠오릅니다. 다른 산업부문과 다양하게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출판 연봉 공개’ 설문 및 그 결과와 이 짧은 분석이 이런 체계적 담론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작은 일들이 쌓여 변화를 준비하곤 하니까요.

출판인들이 설문에 남긴 몇몇 코멘트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책을 사랑하지만 책으로 고통 받는 아이러니 속에서도 여전히 열정을 바쳐 책을 만드는 모든 출판인을 응원합니다.

“사람이 책을 만든다지만, 사람 갈아서 만들지는 마세요.”

“영혼 갈아 넣어도 돌아오는 게 없는데 임원들 바라는 게 너무 많음.”

“디자이너도 편집자와 동등하게 책을 만들 때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외주, 프리랜서로 건별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직원을 두고 하세요.”

“책이 안 팔린다면서 사장들은 어떻게 그리 건물을 잘 짓던지.”

“퇴직금 포함이란 사실을 월급날 알려줬지.”

“연봉협상을 해 놓고 다음 달 월급명세서를 보니, 내 연봉이란 기본급에 각종 수당(야근, 연장 근무 등)과 교통비, 식대까지 포함한 포괄임금이더라.”

“예, 신입입니다. 그래도 최저임금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하는 만큼은 받고 싶네요.”

“다른 업계 연봉이 궁금하네요. 처음부터 이렇게 살아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출판업종사자분들화이팅띄워쓰기없이보낸게사랑인것같애”

“책 만드는 기쁨에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