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edited by 김윤우·정윤
결국 살고 싶은 인생
내 방 책장 한편에는 여행의 ‘여’ 자는커녕 뉴욕이 동부인지 서부인지도 모르고 산 미국 여행 가이드북이 두 권 있다. 큰 포부를 가지고 산 두 권의 책은 언제부턴가 구석에 꽂혀 있었고, 4년 전 미국 여행을 위해 결심한 휴학도 어느새 ‘미국’을 뺀 ‘그냥 여행’을 위한 휴학이 됐다. 그렇게 미국은 내게 언젠간 가 보고 싶다는 로망과 꿈 언저리에 있는, 멀디먼 장소가 되어 버렸다. 휴학한 지 햇수로는 4년, 매번 열심히 모아 모아 혼자 여행을 떠났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미국을 향한 그리움(?)이 자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보고 싶다고 꿈꾸던 미국은 미대생인 나에겐 동경의 도시랄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여행지를 다녔지만, 복학을 이토록 미루는 이유 중 하나가 미국 여행일 것 같다는 생각은 복학 연장신청서를 낼 때마다 들었다.
결국 나는 내일, 매일을 꿈에 그리던 미국에 간다. 기다리는 매일이 마치 내가 좋아하는 오후 5시에 줄곧 머무는 듯, 여러 말을 남겨 표현하더라도 겪지 않은 이는 알지 못할 그런 기분이다. 나에겐 그런 의미인 곳을 동생과의 첫 여행으로 떠나니 시끄러운 여행이 될 것 같지만, 엄청나게 설레는 기분은 덤으로 안고 떠날 준비를 한다.
우리는 언젠가 푸른 봄을 지나,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햇살이 아름다운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에 다가갈 것이다. 뜨거웠던 우리의 여름이 어느새 다가올 가을날 한 줄기의 햇살에 담기길.
2017. 6. 19, 02:43 AM
내일을 약속할 동행자가 존재하는 일
어쩌면 우리네 삶이 버거워서 여느 20대 형제자매처럼 소통이 줄어들었고, 여느 때처럼 여행을 준비하던 날 동생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우리의 여행을 계획했고, 그렇게 거짓말처럼 정말 시작됐다.
지난해 가을쯤, 정신을 차려 보니 구매되어 있던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보고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출발 일자를 한참이나 남기고 부지런히 짐을 싸고 있었다. 어느새 내 방 침대에 엎드려 나를 관찰하던 그녀는 몇 가지 질문을 내던졌다. 정신없어 죽겠는데 왜 그렇게 질문을 하냐는 듯한 말투로 대꾸를 해 줬는데, 그녀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언니, 나도 가방에 넣어 가면 안 돼? 우리, 엄마랑 호주여행 했을 때 진짜 좋았는데. 나도 가고 싶다.”
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엄마와 그녀가 방문하여 함께 여행했던 일이 있다. 하지만 가방에 본인도 넣어 가면 안 되냐는 질문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 동생이라 내 여행에는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고, 나와 단둘의 여행은 불편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질문을 받은 순간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크게 밀려왔다. 여행하면서 마음을 울리는 것들을 보면 가족들도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내 귀로 직접 들으니 묘하게 여행 준비가 마냥 들뜨지만은 않았다. 미안했다. 내 여행은 고생이 반이라고 말하면서도 혼자만 설레는 기분이 들어서. 아마 그때인 것 같다. 머지않은 미래에 꼭 그녀와 단둘이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게.
나도 모르게 고독해지고 싶은 순간이 다가올 때면 말 걸지 말라는 의미로 이어폰을 낀 채 그녀의 눈을 피하곤 했다. 슬프지도 않은데 혼자이고 싶은 마음을 그녀는 알까. 조금은 이해가 되려나. 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에서의 나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편안해졌다. 뭘 하나 좀 덜 조심스럽게 방에 드나들 수 있는 정도로. 그녀가 조금은 여유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이 그랬으면 좋겠다.
2017. 6. 20, 00:09 AM
오늘이 마지막인 듯 빛나는 것들을 바라보며
도저히 안 되겠다며 우린 여행 3일 만에 몇 개 없어서 정말 소중한 라면을 뜯었고, 어쩜 이리 맛있냐며 새삼 탄성을 연신 외쳤다. 숙소를 나서니 쌀쌀한 바람에 둘째 날 트윈 피크스(Twin Peaks)에서 봤던 어마무시한 안개가 떠올랐다. 6월의 샌프란시스코는 한국과는 달리 아주 쌀쌀한 봄이었다. 언덕 위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샌프란시스코는 오르락내리락 언덕의 연속이었고, 우린 가방을 열어 하나뿐인 겉옷을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샌프란시스코를 발밑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도착할 때면, 힘들게 올라간 우리에게 보상이라도 해 주듯 골목 언저리의 어느 쯤이 마법처럼 그려지곤 했다.
가을과 겨울 어느 언저리에서처럼 매섭게 부는 바람에 고작 하나 가져온 쿨원단 겉옷은 도저히 못 입겠다며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산 샌프란시스코 후드티를 벌벌 떠는 그녀에서 벗어 줬다. 추운지도 모르고 이곳을 담고 있다 보니 어느 틈에 추위가 밀려왔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닭살이 돋은 내 팔을 보곤 미안했는지 그녀는 어느새 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어릴 때 이후로는 서로 팔짱을 낀 일이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은데, 팔짱을 낀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괜스레 부끄러움 반 기특함 반에 무서운 사람도 없는데 왜 갑자기 팔짱을 꼭 끼고 있냐며 물었다. 가족 중 나에게는 항상 유독 쌀쌀맞던 그녀의 입에서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따뜻하잖아”라는 낯 간지러운 소리가 나왔다. 나는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며 울먹거리는 마음을 감춰 버렸다.
그렇게 그녀가 나눠 준 조금의 온기를 느끼며 샌프란시스코의 선착장인 Pier39에 도착했다. 걸어 걸어 도착한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오후 5시의 빛이 가득했다. 어두운 골목에 들어갔다가 나와서였을까. 우리는 테라스가 즐비한 식당들, 펍 그리고 버스커들을 보며 이곳이 진짜 미국 아니냐며 연신 감탄사를 외쳤다. 사실 진짜 미국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사람들을 지나쳐 한없이 눈길이 가는, 지는 해를 벗 삼아 빛나는 바다와 마주했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그리고 세상의 틈으로 들어오는 이쁜 빛을 눈앞에 두고 그저 이 순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도, 그녀와 함께한 Pier39의 오후 5시는 그렇게나 나지막이 고요했고, 눈부셨고, 또 따뜻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빠가 좋아하겠다며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 할아버지의 영상도 찍어 보내고 사람들의 음식을 낚아채는 갈매기도 구경하다 보니 배꼽시계가 요란히도 울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인파와 걸맞게 선착장 근처에는 푸드트럭이 꽤 있었고, 오늘 저녁은 피자와 맥주로 정했으니 간단히 핫도그나 먹자며 트럭에서 파는 제일 싼 3불짜리 핫도그를 하나씩 쥐고 벤치에 앉았다. 그나마 따뜻함을 비춰 주던 해도 어느덧 꽤 져 버려 온통 그늘투성이였고, 내 팔엔 닭살이 점점 더 도드라졌다. 그래도 그녀가 추운 걸 지켜보는 것보단 내가 추운 게 훨씬 마음 편했기에 추운 내색을 하지 않았다. 3불이 참 적당했던 핫도그를 먹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내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바람이 내 등을 지고 불고 있었고, 의도치 않게 부르르 떠는 나를 보고 덩치도 훨씬 작은 그녀가 바람을 막아 주겠다며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아침은 숙소에서 커피 한 잔으로 때우고 점심은 이 3불짜리 핫도그뿐이었는데 미친 척하고 산 이 45불짜리 후드티를 참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드티를 벗어 주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이 부끄러워서 ‘고 wow’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이렇게 따뜻한 말을 두 번이나 듣다니, 앞으로 여행을 함께하는 내내 얼마나 더 내 마음을 울릴까 싶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우리가 지나친 저곳은 정말 잘 꾸며 놓은 공원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따뜻한 마음이 그곳을 그저 한없이 따뜻하게 보았던 걸까. 길게 늘어진 느지막한 햇살에 비친 큼지막한 나무, 나무의 나뭇잎이 만들어 낸 그림 같은 그림자 무늬, 무심히 놓인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그 길을 거니는 이들, 잔디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들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듯 한없이 그저 빛이 났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듯이 열심히 여행하는 나에게 ‘내일 또 보면 되지 않느냐’며 그녀가 말을 건넸다. “여기는 또 오면 되지만 오늘은 마지막이잖아”라고 대답했다. 생각지 못할 만큼 이뻤던 그녀의 마음에 이렇게나 특별한 하루를 살았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특별해지는 일, 별것 하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일은 어쩌면 생각지 못한 데에서 나오는 마음들이 아닐까.
지금 끝없이 아름다운 이 시간 이곳에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2017. 6. 20, 07:13 PM
훗날 나를 지탱시켜 줄 것들로 인생을 채워가는 일
투어를 떠나기 전부터 많은 일이 일어나는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관심 없던 가이드투어를 신청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
투어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 날씨 앱에 뜬 ‘흐림’이라는 단어는 바뀔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아침에 있었던 캐리어 소동으로 마음 한구석에 먹구름이 낀 채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여기는 이렇게 화창한데 두 시간 거리인 그곳은 정말로 ‘흐림’이냐며 까칠한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속으로 연신 투덜댔다. 네바다주에 들어서니 화창했던 하늘에 거짓말처럼 점점 구름이 스며들어 왔고, 후버댐을 지나 그랜드캐니언 근처 인디언 마을에 도착하니 정말 아침의 하늘과는 다르게 검은 구름이 하늘을 꽉 채웠다. 저 멀리 들판에서는 겁나도록 쏟아지는 비 기둥마저 보였다. 별을 봐야 한다던 가이드도 언제부턴가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마음을 그득 안고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했다.
광활하고 또 광활한 그곳을 앞에 두자, 별을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굴러서 바닥에 맞닿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호기심 그득한 마음으로 발밑에 그리고 머리 위에 펼쳐진 자연의 마법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멋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강렬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림 같았다. 바람은 거세었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도 아니었지만, 조금은 날카롭게 펼쳐진 저 하늘 도화지 위 어둑하게, 제멋대로 펼쳐져 있는 구름이 어쩌면 오늘과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처럼 비가 쏟아졌고, 그랜드캐니언 구경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비를 피하기 바빴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같은 투어팀 사람들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더러 꼭 뭔가 될 것 같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괜시레 용기가 났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화가 난 듯 내리던 비가 그쳤다. 날씨는 조금 심통이 풀린 듯했지만 아름답기 그지없을 것 같았던 그랜드캐니언의 일몰도, 너무 눈이 부셔 잠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미서부의 밤하늘도 볼 수 없었다. 깨끗한 공기와 먹구름 새로 보이는 빨간 노을 그리고 가방에 든 맥주 4병을 위로 삼아 캠핑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져 버린 해를 뒤로하고 그래도 조금은 떴으면 하며 별들을 기다렸다. 흥겨운 음악에 백 년 만에 먹는 듯한 삼겹살과 된장찌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맥주인 ‘블루문’(Blue Moon) 그리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투어팀 사람들까지, 조금밖에 뜨지 않은 별을 제외한 모두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조금의 취기를 빌려 하늘에 별을 그려 보았다.
오늘을 되돌아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캐니언과 너무 잘 어울렸던 거친 하늘도, 차만 타면 잠이 드는 그녀마저 잠들지 못하게 한 먹구름과 그 새로 보였던 새빨간 빛들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멍 때리고 바라보던 그녀에게는 그저 신기한 세상이었을지 아니면 그녀가 그렸던 도시의 모습이 아닌, 광활하게 끝없이 펼쳐진 것들이 그녀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을 어떠한 것이 됐을지.
뜻밖의 멋진 인연들이 건네준 응원의 메시지도, 가이드와 나눈 모든 이야기도 지나 버린 후회를 내려놓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1박 2일 투어의 하루가 흘러갔다. 듣기 좋은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다. 숨 막히게 더운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맡는 이곳의 차가운 공기가 고마울 따름이다. 바다 멀리서부터 기대했던 그랜드캐니언의 빛나는 밤하늘을 보지 못한 밤, 끝내주게 멋진 사진 한 장보다 훗날 나를 지탱시켜 줄 마음의 근육을 얻었다.
2017. 7. 7, 11:58 PM
제일 잘한 여행
문득 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서 있는 야자수를 보거나,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 다가오거나, 이쁘게 칠해 놓은 하늘과 그 아래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볼 때면, 이렇게나 낭만적인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나의 마음은 「라라랜드」에 나오는 눈부신 언덕 어디쯤 날아가곤 했다. 이곳에서 남은 시간이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일수가 되니 흔하게 보이던 야자수가 이제는 제주도까지 날아가야 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나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 흔하디흔하던 야자수가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이곳을 떠나기 하루 전날, 한국에서부터 노래를 불렀던 팬케이크를 먹고 이 여행이 끝나가는 일이 하나도 아쉽지 않은 듯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베니스 비치를 향해 떠났다. 그날 아무 생각 없이 베니스 비치에 간 일이 정말 잘한 일인지도 모른 채. 베니스 비치가 처음인 양 떠났지만, 사실 LA를 여행하면서 벌써 세 번째였다. 평소와 같이 1불이 아까웠던 우리는 K타운에서 40분 정도 걸어 베니스 대로에 도착하고서야 버스를 탔다. 이상하리만치 모든 게 설렜다. 마지막이라는 느낌도 없이.
버스를 타고 10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머릿속에 생각나무가 자랐다. 오후 5시를 좋아하는, 또 어둠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림자는 좋아하는 나의 모순을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또 많은 생각을 안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고,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바라보니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수많은 생각을 해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글벙글 또 아이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선탠된 창문 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이 저 앞에 앉은 이쁘장한 백인 아이의 머리카락을 더 반짝이게 하더니 이내 눈이 부셨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을 온통 담은 채 덜컹거리는 이 버스를 잊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애정하는 이 시간은 낮과 밤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그렇게 짧은 순간이기에 유난히 더 찬란하다.
소리, 공기, 빛 모두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은 720번 버스를 보내고 베니스 비치에 도착했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빛을 지닌 버스가 떠났다. 카메라를 꺼내기 위해 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모든 것이 거짓말같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역으로 들어오는 빛을 등진 어둑한 건물 사이 저편에 보이는 보랏빛 하늘과 ‘나 없으면 섭섭할걸’ 하듯 서 있는 야자수들. 홀리듯 신호등을 한 번 놓쳤고, 그렇게 우리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엄마에게 안겨 수영복을 갈아입는 흑인 아기도, 뒤편 잔디에 보기 좋게 누워 자신의 ‘sweetie’를 찾는 사랑스러운 여자도, 엄마·아빠를 따라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보드를 들고 가는 저 꼬마들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이 길 위를 거니는 모든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었다.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는 이들도, 춤을 추는 이들도,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스쳐 가는 이들도, 그리고 우리도 모두 이 시간의 베니스를 사랑했으리라. 생각 없이 그곳에 빠져 걷고 있는데, 우리 뒤편에 자리한 그림 같은 하늘과 내 앞에 자리한 노을도 다 져 어둑한 하늘을 보니, 왠지 밤을 향해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을 돌리면 보이는 분홍색 장밋빛을 한 하늘과 내 앞에 놓인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는 이 신비로운 시선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그녀와 3번째 그림이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우연히 봤던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의 여자 주인공 앤을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사진을 찍는 그녀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는데, 베니스 비치에서의 나도 앤처럼 그렇게나 행복해 보였으려나.
2017. 8. 3, 10:21 PM
결국은 우리의 인생
살다 보면 깨닫는 사실들이 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많은 것에서 노력과 능력보다는 운이 잘 따라야 하며, 그 운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겐 절대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내가 정해 놓은 목적지가 너무나 멀어 보여도 걷고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도착한다는 것. 한참을 돌고 돌아 달리고 달려 그렇게 멀디멀었던 꿈을 이뤘고, 그래서 꿈을 잃었다.
다시 이 기억을 가지고 똑같이 4년 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하루하루에 마음 깊이 머물며, 지금 이 순간처럼 글을 쓰고, 늦은 저녁 침대에 배를 대고 여행잡지를 읽으며 또 여행지를 그리고, 여행지에서 별것도 아닌 일에 또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살아가겠지. 아니 그럴 거다. 매일을 꿈 위에서 그렇게. 슬럼프 아닌 슬럼프 속에서도 이렇게 또다시 미래가 찾아와도 지금처럼 살아간다고 다짐하는 나를 보면 조금은 잘 살아왔음을 느낀다.
가슴 뛰도록 설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 왔다. 정해진 직장 없이 돈을 벌어 여행하며 사는 인생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쩌면 점점 무덤덤해졌을지도 모른다, 포기에 대해. 그래서 조금은 두렵다. 나는 여행의 끝자락에 서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기에 한국에 도착하면 늦지 않게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고 또 무언가를 포기해야겠지.
텁텁하고 뻣뻣하게 살고 싶진 않다. 멈췄으면 하는 순간이 많은 인생,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인가. 샌디에이고를 떠나는 오늘, 오랫동안 간직한 꿈을 이루는 일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봤다. 그렇게나 그리던 곳에 결국 오게 돼 내 꿈이 끝나버릴까 두려웠는데, 이곳에서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이렇게나 다니곤 결국 내가 누군지 알아차리게 되는 거였다. 순간 느꼈던 많은 감정, 생각, 눈물, 추억을 차곡차곡 모아서,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나를 알아가는 것.
이번 생은 평범하긴 글렀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이 바라는 보통의 여자 사람으로 대학교에 입학해 곧바로 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청춘을 소비해 겨우 취업한 뒤 적당한 나이에 시집을 가서 또 적당한 나이에 적당히 어울리는 모든 것을 해내는 그런 생은 아니라는 걸, 밥쯤은 대충 커피로 때우고 그저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랑하는 시간에 사랑하는 일들을 하며 보내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그런 행복을 느껴 주는 내게 고마워서, 또 그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평범하지 않은 나를 적지 않게 사랑해서, 이렇게 살기로 했다. 평범하긴 그른 김에 그냥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며, 대충.
2017. 8. 29, 11:22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