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우
#1. 카페 안 (점심)
커피를 내리는 소리, 사람들이 작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흐른다. 큰 유리를 통해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빠르게 카페를 전체적으로 촬영한 후, 짧은 인터뷰 답변들이 이어진다. 인터뷰이 역할을 맡은 사람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목에서부터 상체까지만 잡거나 신체의 일부(손, 발 등) 혹은 인터뷰이의 소품(커피 잔, 노트와 펜, 뒤집어진 사원증 등)을 클로즈업하여 얼굴을 대신한다. 인터뷰이가 바뀔 때마다 인터뷰이의 정보가 자막으로 뜬다. ‘A, ○○출판’ 등.
A 4년 차입니다.
B 저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다) 한… 1년 조금 넘었어요.
C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이제 4개월? (웃음)
D 지금 일하는 곳은 이제 반년 정도 됐고요. 전에 회사에서는 한 2년 정도?
E 전 이제 1년 반 다녔거든요. 그동안 편집부에서만 퇴사한 사람이 10명이 넘어요. 지난달에 나간 사람은 저보다 반년 먼저 들어온 사람인데, 그러니까 2년 다니고 퇴사한 거죠. 그 사람 나가고 나니까 제가 임원급 제외하고 제일 오래 다닌 사람이 되었어요. (조금 망설이다가) 사실 저도 반년 남았다고 생각해요.
#2. 카페 안 (늦은 오후)
셔츠를 입은 저자가 어색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는 조금 줌인을 하고 초점을 저자의 눈에 맞춘다. 그동안 저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한 모금 마신다. 조금 긴장한 표정이다.
감독 목소리 (웃음) 너 뭐 자랑할 거 있다매.
저자 자랑할 건 아니고. 축하할 일이지. 나 전에 책 썼던 거 기억나?
감독이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아 짧은 침묵이 흐른다. 저자는 어느새 긴장이 풀렸다.
저자 (작게 한숨을 쉰다) 아무튼 내가 책을 썼었거든? 그게 초판이 다 팔려서 인세 준다고 연락 왔어.
감독 목소리 인세?
저자 어, 초판 다 팔리면 인세 받기로 했었거든.
저자는 셔츠 앞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몇 번 화면을 터치한 후 핸드폰 정면 화면이 보이도록 든다. 문자 메시지 말풍선이 떠 있다. ‘안녕하세요, ○○○ 선생님. ○○출판입니다. 『양장피의 침묵』 초판이 모두 판매되어 인세 지급 건으로 연락드립니다.’ 밑에 몇 개의 말풍선이 더 떠 있지만 저자는 화면을 꺼 버린다. 저자가 핸드폰을 다시 셔츠 앞주머니에 집어넣으면 감독이 묻는다.
감독 목소리 ‘침묵’? 이거 엄청 옛날 일 아닌가?
저자 굉장히 옛날 일이지. 한 3년 됐을 거야.
감독 목소리 근데 인세 이제 받는다고?
저자 초판 다 팔리면 인세 받기로 했다고.
감독 목소리 얼마나 찍었는데? 한 1만 부 정도 찍었어?
저자 요즘 누가 그렇게 많이 찍니. (잠시 생각한 뒤) 한 1천 부 정도.
#3. 카페 안 (점심)
F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어요. ‘알다시피 출판계가 불황이지 않느냐.’
#4. 카페 안 (늦은 오후)
저자는 테이블 밑에서 서류 가방을 들어 올린다. 카메라 앞에서 가방을 뒤지다가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고, 그 서류봉투 안에서 두꺼운 종이뭉치를 꺼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보기 좋게 늘어놓는다. 감독이 음료가 반쯤 남은 컵을 한쪽으로 치우다 보니 화면이 조금 흔들린다. 종이마다 여기저기에 파란색으로 교정한 흔적이 가득하다. 여백에는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저자 이게 교정지인데 엄청 꼼꼼하게 봐줬단 말이야. 그리고 여기 봐봐.
저자는 교정지 더미 위에 교정편지를 올린다. 카메라는 교정편지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 (셔츠 주머니에서 펜을 꺼낸 후 밑줄을 그으며) “‘B’와 ‘C’의 목소리가 너무 비슷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사실 B랑 C랑 헷갈려서…. (웃음)
감독 목소리 (작은 목소리로 소리 내어 편지를 읽는다) 3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카메라를 들어 저자를 촬영한다) 3장을 제대로 안 썼니?
저자 (당황한 표정으로) 그렇다기보다는…. 그 얘기가 아니라 이렇게 잘 써서 잘 나왔다고.
감독 목소리 그리고 보통 (웃음을 참으며) 이런 걸 들고 다니니?
저자는 어색하게 카메라를 몇 초간 바라본다.
#5. 카페 안 (점심)
G 한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야, 너 대단하다, 돈 생각 안 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구나.’ 빡쳤는데 소심해서 바로는 못 하고, 두 달 있다가 걔 SNS 블락했어요.
#6. 카페 안 (늦은 오후)
저자는 느릿느릿 교정지와 교정편지를 정리한다. 정리하다가 교정지를 읽기도 한다.
저자 (눈으로 교정지를 읽느라 목소리가 다소 느리다) 그게, 핸드폰 번호를 분명 첫 메일 때 받았거든. 근데 그쪽으로 연락해 보니까 없는 번호라고 하더라. (눈을 들어 카메라 너머의 감독을 바라본다) 번호가 바뀐 모양이야.
감독 목소리 메일은?
저자 사실 이게 중간에 담당자가 한 번 바뀌었어. 근데 메일주소는 같은 주소로 보냈거든. 개인메일이 아니라 공용메일을 쓴다는 거지.
감독 목소리 누가 요즘 개인메일 안 쓰고 공용메일 쓰냐?
#7. 자료화면
H 목소리 북에디터 안 가보셨어요? 거기가 그냥… 출판계예요. (크게 웃는다)
목소리와 동시에 자료화면이 나온다. 컴퓨터 화면에 북에디터 홈페이지가 떠 있다. 마우스로 북에디터 오른쪽 위의 글자를 블록 잡는다. ‘2013년 2월 17일 기준 북에디터 회원 수 : 62,216명’. ‘2013년’을 천천히 클로즈업한다.
북에디터의 편집자 광장 탭을 누른다. 동시에 인터뷰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I 목소리 글쎄요. 출판사에서는 다들 3~4년 차 편집자를 찾는데, 모르겠어요. 다들 어디 있는지, 참.
J 목소리 북에디터 보면 다들 경력직만 찾아요. 경력 3년 이상이신 분, 5년 이상이신 분, 책임 편집 가능하신 분…. 그런데 막상 가 보면 연봉은 신입 연봉을 주거든요? 이런 데 잘 피해서 다들 어디로 잘 갔나….
‘국내 베스트셀러 동향’을 누르고, 뒤로 버튼을 누른다. 구인/구직을 누른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고, 2페이지로 넘어간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고, 3페이지로 넘어간다.
#8. 카페 안 (점심)
K와 L이 나란히 앉아 있다.
K 저희 회사에 이제 3년 차 되신 분, 딱 한 명 있어요.
L 아, ***(효과음) 씨.
K 듣기론 입사 동기가 1명 더 있었다더라고요. (사이) 사실, 어제 같이 술 한잔했거든요. 근데….
#9. 카페 안 (늦은 오후)
카페 바깥으로 분주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슬로 모션으로 담는다. 동시에 저자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자 목소리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양장피의 침묵』을 쓴 ○○○이라고 합니다. (사이) 아, 아뇨, 양장피요, 양장피. 네, 그 중국음식…. (사이) 네, 네. (사이) 아닙니다. (어색하게 웃는다) 괜찮습니다. (사이) 다름이 아니라요. 제 책 담당했던 ○○○ 편집자와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요. (사이) ○○○, ○○○ 편집자요.
#10. 카페 안 (점심)
L (놀라며) 네? 퇴사요? 진짜요?
K 퇴산지 이직인지, 아무튼.
#11. 카페 안 (늦은 오후)
저자 목소리 아, 그렇군요. 혹시, 언제쯤 퇴사했는…. (사이) 아, 안녕하세요! (전화기 마이크를 막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인다) 사장, 사장. (다시 통화에 집중하며) 아, 네네. ○○○입니다. (어색하게 웃는다) (사이) 네?
#12. 카페 안 (점심)
M 보통 서점을 많이 차린다던데요? 독립출판 하는 사람도 있고. 텀**(효과음) 꾸준히 출판 관련 뭐 올라오는 거 보면 다 저기 갔나, 싶기도 하고.
N (소근) 여기 카페 사장님도 원래 출판사 다니셨다는데 그만두고 카페 차린 거래요.
#13. ○○출판사 안 (오전)
사무실 안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책상에 앉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우스와 키보드를 움직이고 있다. 저자와 감독이 들어왔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분주히 타자를 치는 소리만 가득하다. 저자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다가간다.
저자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전화로 약속 잡았던 ○○○인데요.
화면 오른쪽에서 갑자기 사장이 등장한다. 정장을 입고 웃음을 짓고 있다.
사장 아이고~, 어서 오세요.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껄껄 웃으며) 축하드립니다.
저자와 사장은 지나치게 큰 동작으로 악수를 한다.
사장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왼쪽을 보며 한 편집자에게) ○○○ 씨, 커피 두 잔만 부탁해.
#14. 자료화면
영화 속 책 읽는 장면들이 소리 없이 지나간다. 〈펄프픽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노팅 힐〉, 〈미녀와 야수〉…. 동시에 인터뷰 답변들이 들린다.
O 목소리 딱히 갈 곳이 없어요. 옮긴 곳도 비슷비슷하고요. 처음 이직했을 때 그나마 전 직장보다는 좋은 곳이다, 월급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더 받는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냥 각자의 뭣 같음이 있더라고요.
P 목소리 연봉협상 중에 제가 조금만 더 올려 달라고 했거든요. 너무 쪽팔려서 얼마에서 얼마 올려달라고 했는지는 말 못 하겠네요. 근데 ****(효과음)가 그러는 거예요. ‘너 돈 벌려고 이 일 하는 거 아니잖아.’ 다음날 그만뒀어요.
Q 목소리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고 나왔어요. 지긋지긋하고 진 빠져서 제대로 정리를 못 했죠. 여유도 없었고. 잘 몰랐고.
#15. 카페 안 (점심)
카메라는 테이블 위에 놓여 카페 문 쪽을 촬영하고 있다. 저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감독이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저자의 얼굴을 담는다.
감독 목소리 왔어? 어떻게 됐어?
저자 그냥, 뭐. (사이) 증쇄하기로 했어.
#16. 자료화면
R 목소리 찾기 힘들걸요. 과연 그분이 아직 출판계에 있을까요?
S 목소리 ○○출판? 거기도 사람 되게 자주 뽑지 않아요?
목소리와 동시에 북에디터의 구인/구직 페이지에서 ○○출판을 검색하는 모니터 화면이 등장한다. 약 3개월 단위로 편집자를 구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고, 2페이지로 넘어간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고, 3페이지로 넘어간다.
#17. 카페 안 (점심)
누군가를 찾는 듯 이리저리 회전한다.
T 목소리 『양장피의 침묵』이요? 그거 제가 아는 분이 한 건데?
T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를 찾은 듯 줌인한다. 동시에 화면이 어두워진다(디졸브).
#18. 자료화면
큰 모니터 화면에 문서 작성 프로그램이 빈 문서를 띄우고 있다. 타자를 치는 소리와 함께 타이틀이 작성된다. ‘○○출판에서 편집자를 모십니다.’ 배경음악으로 Clairy Browne & The Bangin’ Rachettes의 I’ll Be Fine이 흐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