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쨌든 잡지의 서문이라고 하면 결국 왜 하필 잡지씩이나 창간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역시 사람이 제각기 모인 것이니, 욕망과 소원하는 바도 제각각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잡지를 찾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출판사를 다니며 찍은 책이 ‘노잼’이라서 홧김에, 혹은 심신건강과 이고득락에 좀 도움을 줘볼까 발을 들인 사람도 있다. 어쩌면 왜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만들지 않아야 하는가를 물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욕망은 제각각이로되, 이 바람을 아우르는 틀이 하나 있다면 문자, 텍스트, 내러티브, 이야기, 책에 대한 애정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하는 책을 통해 각자의 소망을 추적하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 만들자는 것이 이 잡지를 꾸미게 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짧은 혀로나마 우리를 바꾸고, 출판을 바꾸고, 더 즐거운 독서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자 마음을 모았다.
첫 주제는 ‘편집’으로 정했다. 끝나지 않는 편집과 교정지와 페이지 사이에 가만히 숨어 있(어야 했)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편집에 관해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 달에 걸쳐 고민하고 만들고 다듬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꼬시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술을 마셨다.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무작정 녹음한 회의 녹취파일이 꼬박 사흘 분량이다.
이야기들을 모아 구성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동안 고민하던 우리는 ‘편집’을 드러내기로 했다. 난수생성기로 각자 숫자를 뽑고, 오름차순으로 정렬해 차례를 정했다. 각자의 글이 느슨하게 묶였을 때, 글과 글이 서로 거칠게 연결될 때, 편집하지 않는 편집을 마주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결과 탄생한 「편않」의 어절 사이사이에는 각자 조금씩 모은 돈이, 틈틈이 쪼갰던 시간이, 간이 프로젝터 핀을 맞출 때의 분노가, 그리고 떨림이 있다. nn개월 동안 배우고 닦았던 편집은, 결국 ‘편않’이 되었다.
이번 호는 0호, 창간 준비호이다. 미숙한 솜씨에 겸연쩍은 것도 사실이지만, 짐짓 엄숙하게 선언하듯 말해 보자면, 우리는 항상 창간하는 것처럼 매 순간을 준비할 생각이다. 그리하여 매 호가 매번 새롭게 탄생하고 출발할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모으고, 그들 덕에 또 우리가 새로워지고. 그렇게 매번 다르게 형성되는 출판공동체였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의 활동이 ‘출판’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미나를 열어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저자와 강사를 발견하겠다.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회사 다니기 싫은 사람들이 정말 회사 안 다녀도 되게 만들겠다. 꿈 같은 이야기일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쨌든 해볼 생각이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이번 호는 0호, 창간 준비호이다. 창간호를 함께 준비할 당신을 기다린다. 당신이 누구든, 우리는 당신을 편집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