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두 번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신정으로, 다음에는 구정으로. 아니, 처음에는 양력설로, 다음에는 음력설로. 이 두 개의 시간이 하나의 달력 안에서 흐르는 것을 바라보면서, 잠시 이상한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내 안에서도 ‘두 개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인가를 선택했을 때의 시간과 그렇지 않았을 때의 시간, 그 무수한 ‘두 개의 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내가 아닐까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두 개의 시간’이란 곧 ‘하나의 시작’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던 ‘시작’은 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다소 감상적인 얘기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올 초엔 새해마다 반복되던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국)문학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해는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와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발간으로도 의미를 띨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가 김금희는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다른 작가들도 이에 대해 지지 의사를 표했습니다. 이제 갓 등단한 작가들도 그 불안하고 위태한 처지에서 하나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공모전 내용도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지부동이던 출판계에서도 어떤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구인과 구직(이렇게 서로를 갈망하는데 왜 이리 만나기가 힘들까요? 힘들게 만나 놓고 만난 뒤가 더 힘든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만 활황이던 ‘북에디터’(bookeditor.org)에서 한 편집자의 용기와 실천으로 연봉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출판계의 저임금 ‘관행’은 (조사자 스스로 밝힌 설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제 청산되어야 할 가시적인 ‘적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저희도, 무언가 바뀐 것 같습니다. 일단 발행 시기가 바뀌었습니다. 기존 1월/7월에서 3월/9월로 바뀌었지요. 그리고, 제법 긴 호흡으로, ‘출판노동 트릴로지’를 시작합니다. 그동안 출판계를 둘러싼 주체(편집자, 디자이너, 그리고 독자)를 차례로 다루었다면, 이번엔 세 호(1년 반…)에 걸쳐 출판노동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시간 순으로, ‘예비 출판-출판노동-탈(脫)출판’입니다. 이번 호는 그 서막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늘 새로운 시작을 맞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요.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시작은 결국 시작된다는 것. 이 새로운 시작점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상대방이 덕담이랍시고 내뱉은 그 말이 때로 저주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지난 구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래도, 조금 늦긴 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시작합시다, 변함없이. 이 말이 저주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