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을 알고 싶으면, 때때로 출판을 떠나야 한다

늘 새로운 출판을 꿈꾸지만, 그 못지않게 출판을 아주 떠나는 상상을 곧잘 합니다. 급여는 적고, 상사는 꽉 막혔고, 업계는 발전할 낌새가 없는데 내 젊음이 아깝고, 이유야 찾으려면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출판 안에서든 밖에서든 삶은 계속됩니다. 그 단맛도 쓴맛도 계속 이어집니다. 주제나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책과는 다릅니다. 어쩌면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전히 출판을 붙잡고 고민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판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책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책은 계속 변화합니다. 책이라 하면 흔히 글이나 그림을 인쇄해 제본한 종이뭉치라고 단정 짓지만,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등장해 그 경계를 흐린 지 오래입니다. 옛날이라면 책이 도맡았던 글과 그림 콘텐츠를 이제는 웹을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이 침범해 함께 아우르기에, 책이 독점하는 역할도 모호합니다.
책이 변하는 만큼 출판도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필름으로 ‘조판’을 하지 않고 컴퓨터로 ‘편집디자인’을 하면 전자출판이라고 불렀더랍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컴퓨터 없이 출판을 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디지털출판이라고 하면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 출판이나 웹 출판입니다. 웹 출판에서는 소설 등 콘텐츠를 인터넷에 게시합니다. 오래도록 ‘책’이라 불렀던 무언가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을 다시 정의해야 할까요, 출판을 재정의해야 할까요? 이미 책과 출판의 안팎은 온통 뒤섞여 칼로 가르듯 나눌 수 없습니다.
‘책’이나 ‘출판’같은 명칭에 파묻히면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우선은 출판을 떠나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싶습니다. 출판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출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무엇을 하는 누구라 여길까요? 출판을 하고 싶은 사람은 무엇을 하기 원할까요? 출판을 벗어나는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떠나는 걸까요?
1년 반 동안, 편않은 출판노동 트릴로지를 꾸렸습니다. 4호는 ‘예비출판인’을, 5호는 ‘출판노동’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6호는 탈(脫)출판, 곧 출판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앞선 두 권이 그러하듯, 출판 바깥으로 나아가는 이 이야기도 책이나 출판 이전에 사람 이야기입니다. 출판을 그만둔 사람,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출판계를 살아가는 사람, 혹은 처음부터 출판계 바깥에 있던 사람. 역설적이지만 또한 당연하게, 이들 없이는 출판이라는 세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떠나간 이들이 ‘그곳에도 삶이 있다’며 담담히 전하는 목소리는 우리를 정직하게 합니다. 세상은 출판을 중심으로 돌지 않습니다. 책 바깥에 펼쳐진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그 세계에서 본 출판은 어쩌면 기이하고 사소합니다. 이렇듯 우리를 바깥에서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출판의 미래도 그릴 수 있을 듯합니다. 언제나 외쳐 온 새로운 출판은 그 넓은 세상과 역동적으로 함께해야 하니까요.
이 책에는 그런 정직함, 스스로를 너무 작게도, 너무 크게도 보지 않을 수 있는 진실함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출판계 바깥의 목소리는 물론, 이미 떠나간 이들의 이야기를 찾는 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열매나마 달고 알차게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기획도 투고도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책에 녹아든 저희의 고민과 시도들도 발견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함께 ‘편않’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