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과 1000 사이에서

오래된 대형서점이 사라져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겁니다. 받아야 할 돈이라거나 책, 또는 한 조각의 추억 같은 것이 없다면 말이지요. 혹은 새로운 동네서점이 들어서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겁니다. 동선이라거나 소비 행태, 또는 삶의 방식 등이 무관하다면 말이지요.

무언가 사라지든 또는 나타나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그 무언가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아니 의미 이전에 존재 자체도 인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무언가는 그런 사람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한 번도 보지 않고 한 번도 오지 않은 그 사람이, 언젠가 돌아보고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이번 호 주제는 ‘서점’입니다. 누구보다 독자-구매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책과 사람이 모두 그곳에 있습니다. 각자의 역사를 때론 치열하고 때론 무심하게 관통하면서,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확장하는 세계가 그곳에 있습니다. 휴일엔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각자만의 지도를 지니고 탐방해 보시기를.

부디 궁금하셨기를 바라며, 저희 소식 하나. 출판공동체 편않이 지난 11월 출판사 신고와 사업자 등록을 마쳤습니다. 이 글을 보실 때쯤이면(일정이 더 늦어지지 않은 한) 저희의 첫 단행본(무가지가 아니라 유가지)이 나왔겠군요. 편않이 100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확인해 주세요.

어느덧 100년이라니, 참으로 기나긴 세월이었습니다. 0호부터 시작해서 111호까지,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서툴군요. 그러나 이 시행착오가 결코 무망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0은 절대 무의미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한 번 더, 어떻게든 나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또 1000호를 준비할게요.

무엇이든 (한 번쯤은) 명멸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역병도 그렇겠지요. 그때까지 모두 무탈하시기를.

(* 이 글 안의 숫자는 모두 이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