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책부록 고예빈 edited by 지다율
안녕하세요. 별책부록 서점…… 아니, 별책부록 출판사…… 원고를 청탁 받은 후, 글을 여는 문장을 쓰는데 고쳐쓰기를 여러 번. 별책부록 출판사로서 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매체와의 서면 인터뷰나 출판사로서 여러 서점에 입고 문의 메일을 작성할 때, 대개는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위치한 서점이자 출판사, 별책부록이라고 합니다.’라고 운을 뗍니다. 그렇습니다. 별책부록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이라는 동네에 위치한 작은 서점이자, 동명의 출판사입니다. 차승현과 고예빈 두 사람이 함께 서점과 출판사의 일을 경계 없이 하고 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고예빈이라고 합니다.
2014년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처음 서점의 문을 열었고, 이듬해 현재 위치인 서울 용산구 해방촌(주소지로는 용산동2가)으로 이전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같은 이름으로 출판 활동을 시작해 영화 리뷰 매거진 『CAST』, 짧은 글과 그림을 함께 엮는 『Poetic Paper』 시리즈, 에세이 단행본들을 펴내 오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프랙티컬프레스(practical press)’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다른 결의 책들을 만들고 있는데, 여기서는 개인적인 취향과 관심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조명하고 그들의 일상에서 수집된 정보와 이야기를 모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문학과 실용 그 사이 어디쯤에서, ‘별책부록’과 ‘프랙티컬프레스’ 두 개의 출판 브랜드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로 담으며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저희는 대부분의 북페어에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며, 출판사로서 참여하는데요. 이 글의 키워드인 ‘언리미티드에디션14(이하 UE14)’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만드는 제작자가 독자들에게 직접 책을 소개하고 판매한다’는 점에서 UE14는, 출판 활동을 하는 많은 창작자들에게 커다란 축제의 장입니다. 저희에게도 그렇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이날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중요한 행사입니다. 여느 창작자처럼 직접 만든 책을 집중해서 소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이기도 해서 무척이나 즐겁고 설레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저희 서점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서점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이 있고, 월요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늘 열려 있으니 독자를 만날 기회가 많을 텐데 다른 참가팀처럼 UE14를 손꼽아 기다리며 준비한다니……, 하고 말이에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북페어에는 서점이 아닌 출판사로서 직접 만든 책들만 가지고 나가는데요.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며 외부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저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손에 꼽는 정도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부터는 일 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정도죠.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해 보자면, 웃기게도 우리의 공간에서 직접 만든 책을 소개한다는 일이 퍽 쑥스럽습니다. 서점에서 다른 창작자들이 만든 책을 공들여 소개하는 일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것이 우리의 일이니까요. 독자로서 먼저 책에 감탄하고, 이 책은 이 부분이 재미있다며 가리키고, 제작자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이렇게나 멋지고 아름다운 책을 함께 들여다보자고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서점원으로서 열심히 소개합니다. 삼자의 입장으로는 책을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소개할 수 있지만, 어쩐지 당사자의 입장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표현한다면 꼭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극성 학부모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 싶겠지만 그렇습니다. 서점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두와 같은 입장으로, 창작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직접 만든 책을 소개하는 것과 홈그라운드 같은 우리의 공간에서, 책이 잘 보이는 매대를 하나 차지하고 소개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건 마치 PB 상품을 잔뜩 깔아 둔 대형 마트처럼 느껴집니다. 색다른 재미를 찾아볼까 지적 호기심을 안고 들어온 손님의 책장 탐구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고요. 대형 서점처럼 커다란 광고판도 없고, 책장을 전부 한 책으로만 채우는 식의 진열도 없어서,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책을 발견하는 것이 별책부록 같은 작은 서점만의 매력 아니겠어요. 아무튼 이렇듯, 출판사로서의 외부 활동이 미약하다 보니 UE14 참여는 독자를 직접 만나 즉각적인 피드백을 얻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게다가 저희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만나 볼 수 없던 다양한 작업물을 감상하는 것도 무척 흥미롭고요. 이만큼 쓰고 보니, 이렇게 우리의 출판 활동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지면이 주어진 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UE14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그날 그곳을 떠올려 보자면 ‘안부와 감사’라는 두 글자로 정리가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반가운 얼굴과 새로운 얼굴들. 환하고 기쁜 표정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여기서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UE8부터 참여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람들. 꾸준한 교류가 없어도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 말이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때를 함께 떠올려 보니 그 공백이 정확하게 3년이었습니다. UE 행사가 대면으로 열리지 않은 그 시간, 3년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행사가 아니라면 평생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고 나니 반가운 마음은 곧 애틋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행사를 두고 ‘명절’과 같다고 합니다. 독립 출판계의 큰 명절이라고요. 몇 년 전에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풍성하고 즐겁기는 하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던 그 말이 이번만큼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네, 맞아요. 저에게는 아주 큰 명절이었어요. 여러 분야의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었던 지난 3년 동안 아마도 저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 쌓였던 것 같아요. 그것이 그리움인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죠. 그날 그곳에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그리워했구나 하고 말이죠. 다들 성실하게 자신들의 작업을 이어 오고 있었다는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 새삼 감사했습니다. 속으로만 되뇌었던 말을 여기에 옮겨 적어 봅니다. 잘 지내 주어 고맙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지내다 꼭 다시 만나요.
고예빈 별책부록 서점원이자 출판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