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질서 그 후 edited by 지다율
‘새로운 질서 그 후’(이하 ‘그 후’)는 UE14에서 두 종류의 책을 팔았다. 지난해 발행한 무슨일 선집 1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와 신간인 2호 『투명한 장벽, 플랫폼을 배반하기』가 그것이다. 매대 위에는 책 2종과 모니터 1대를 두었다. 모니터에서는 거대 플랫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와 사례로서 ‘그 후’가 구축한 웹사이트, ‘양띠 클럽’을 선보였다.
그중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단연 ‘양띠 클럽’이었다. ‘양띠 클럽’은 웹사이트 기반의 커뮤니티로 ‘그 후’의 일원인 윤충근과 이지수가 기획했다. 어쩌면 사용자 자율성이나 웹 생태계와 같은 이야기보다, 귀엽고 재미있는 ‘양띠 클럽’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두 권의 책으로부터 관심을 앗아 간 ‘양띠 클럽’에 관한 질문과 답이다.
Q. ‘양띠 클럽’에 대해 소개해 달라.
충근, 지수: 양의 해에 태어난 사람들의 모임이다. 1907년생부터 2015년생까지, 양띠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웹사이트를 통해 구성원들의 소식을 전하고 때때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기도 한다.
Q. ‘양띠 클럽’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충근: 누군가의 나이를 묻는 일은 조심스럽다. 숫자는 때때로 불필요한 권력관계를 만들기도 하며 자칫 불쾌함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띠를 묻는 것은 조금 다르다.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간접적이며 십이지라는 배경지식을 전제로 한 일종의 암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끔은 나이 대신 띠에 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우연히 양띠를 만날 때마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언젠가 양띠들의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농담에서 ‘양띠 클럽’을 시작했다.
지수: 그렇다. 띠는 나이보다 아리송하다. 자신과 몇 살 차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자신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헷갈리게끔 한다. 띠는 사람에 대해 알아 갈 때 꼭 필요한 정보는 아닌데, 그 사실만으로도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Q. UE14에서 반응은 어땠는가?
“어머 어머, 우리 남편이 양띠인데. 호호.”
“저는 빠른 91이라 말띠예요. 흑흑.”
“뱀띠 클럽 만드실 생각은 없나요?”
Q. UE14에서 반응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충근: 어떤 집단에 속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특정 분야에 관심을 둔다거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등. 그에 반해 ‘양띠 클럽’에 속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띠란 태어나는 순간 부여받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더 쉽게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한다.
지수: 귀여운 양 사진을 모아 둔 사이트는 누구라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Q. ‘양띠 클럽’의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가?
충근: 2022년 12월 현재, 총 11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에서부터, 몇 주 전 지인의 오픈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분까지. 친밀한 정도도 다르고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인 것도 아니다.
다만, 개인이 맺을 수 있는 관계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데서 오는 특징이 있다. 먼저, 현재 구성원의 대부분이 디자인 또는 미술을 전공한 창작자이다. 또한 나이가 같은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12살 차이가 나는 관계를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양띠 클럽’은 직업 또는 나이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다양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 중이다.
Q. ‘양띠 클럽’은 어떤 활동을 하는가?
지수: 임영웅 팬클럽이나 주짓수 동호회 등 여타 커뮤니티가 하는 활동들과 비슷하다.
충근: 지난 12월 17일(토) ‘양띠 마켓’을 열었다. ‘양띠 마켓’은 ‘양띠 클럽’의 구성원이 판매자로 참여하는 플리마켓이다. 마켓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행사라기보다는 사교 모임에 더 가까웠다. ‘양띠 클럽’의 구성원이 한데 모여서 실제로 만나고 인사를 나누기 위한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지수: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가 가져온 물건을 구경하고, 이를 사고파는 형식이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으로 적합했다.
Q. ‘양띠 마켓’에서는 어떤 것들을 판매했나?
지수: 애초에 이걸 왜 샀는지 의문이 드는 물건들부터 쿨한 편집샵에 있을 법한 물건까지 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코끼리 인형, 뻐꾸기를 부르는 피리, 점성술 관련 서적, 스모 선수가 그려진 젓가락 받침, 원목 스케이트보드, 꼼데가르송 스커트, 비트라 트레이 등.
충근: 다른 플리마켓과 차이를 두고자 양 컵케이크를 만들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방문해 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행운 추첨을 진행해 선물을 드렸다. 토이 스토리 탁구채, 해피밀 장난감, ‘아무래도’ 엽서 등.
Q. ‘양띠 마켓’ 후기가 궁금하다.
충근: 마켓을 마친 뒤, 판매자들끼리 다소 지친 기색으로 물물 교환의 시간을 가진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수: 그동안 의미 있는, 또는 의미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하는 것에 지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양띠 마켓’이 그저 재미를 위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다. 방문자 중 몇몇은 진짜 플리마켓일 줄은 몰랐다며 플리마켓을 가장한 예술 행사로 오해한 경우도 있었다.
Q. ‘양띠 클럽’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지수: ‘양띠 클럽’이 서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나누거나 자신의 사업 혹은 행사 홍보 등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 정도가 되면 좋겠다. 또는 사람이 필요할 때, 예를 들면 생필품을 공동 구매하거나 같이 전시를 볼 사람을 구하거나 하루 아르바이트를 대신 해 주거나 여행 가는 동안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돌봐 주는 등 서로의 믿을 구석이 되어 주는 것도 낭만적이겠다. 다만 서로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부분의 플랫폼과는 달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게시물들처럼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공지나 광고물을 게시하는 정도의 느슨한 커뮤니티로 남고 싶다.
충근: 개인적으로는 구성원들의 소식을 전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고, 양띠 유머와 양띠 운세를 모아 보고 싶다. 클럽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활동을 제안하고 때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한편, ‘양띠 클럽’의 규모가 커질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섣불리 걱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때마다 『투명한 장벽, 플랫폼을 배반하기』에 실린 글 「나만의 소셜 네트워크 운영하기」의 내용을 떠올린다. 글에서는 ‘작은 규모를 유지하라’라고 말하며 수천 대의 소규모 서버가 공존하는 모습을 제안한다. 양띠 기반의 모임이 이미 곳곳에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목초지가 다른 양 무리가 군데군데 있는 방식이 알맞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한 마디
충근, 지수: 당신이 양띠이고 가입을 원한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cgyoon91@gmail.com 또는 leejiisuu@gmail.com로 메일을 달라. 양띠가 아니더라도 양띠 클럽 웹사이트에서 우리의 소식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처럼 작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무슨일 선집 2호 『투명한 장벽, 플랫폼을 배반하기』를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윤충근 변화하는 매체 환경을 통시적으로 바라보며 평면, 공간, 시간 위의 시각 요소와 사용자 경험 사이의 상호 작용을 탐구한다. 사물의 기원이나 유래를 살피며 신화를 해체하고 탈학습하는 일을 즐긴다. 젖과 꿀이 흐르는 환상의 도시 충시티(choong.city)를 건설 중이다.
이지수 글쓰기로서의 코딩과 학습 도구로서의 웹에 관심을 두며 2020년부터 컴퓨터 언어 연습장으로 기능하는 웹사이트사이트(websitesite.xyz)에 그 결과를 게재한다. 또한 독일어 학습자와 비학습자를 위한 커뮤니티 ‘어풀 랭귀지(Awful Language)’와 어린이 교육 콘텐츠 브랜드 ‘인스턴트 라이팅(Instant Writing)’을 운영한다.